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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물장어 Feb 07. 2021

[시네마 톡] 승리호를 둘러싼 논란에 관해

명작인가? 망작인가?

며칠 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승리호에 대해 여러 가지 논란이 많다. CG가 훌륭한 건 알겠는데 스토리가 너무 엉성하고 진부한 장면들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고질병인 신파가 어김없이 등장한다는 점도 혹평의 근거다. 앞서 내가 작성한 승리호 리뷰에서도 이를 지적한 바 있다. 나는 이 작품이 CG가 훌륭하지만 스토리의 개연성이 부족하고 클리셰로 범벅이 되어 있다고 평하면서도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몇몇 사람들이 승리호를 혹평하는 것은 지금까지 본 헐리웃 영화와 스토리텔링을 은 수준에서 비교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잣대로 보면 승리호는 분명히 부족한 작품이다. 그러나, 나는 승리호가 우리 영화의 지평을 넓히는 최초의 시도치고는 훌륭한 시도였다는 점에서 좋은 평을 하고 싶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서양에 비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이 한참 부족하다. 서구권에서는 미지의 세계를 그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시도해왔고 단순히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 우리 인간과 사회의 모습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아왔다. 조르주 멜리아스는 인류가 달에 발을 내딛기도 전인 1902년에 이미 "달세계 여행"이라는 영화를 만들며 달의 이미지를 영화를 통해 구현해냈다. 프리츠 랑은 이념전쟁이 한창이던 1927년에 "메트로폴리스"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대립을 다루며 당시 한창 논쟁적이던 사회 이념인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윌리엄 깁슨과 필립 K딕은 사이퍼 펑크 장르의 소설을 통해 암울한 미래 세계를 그리고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철학적 고민들을 풀어냈다. 이런 상상의 산물들은 엄청난 헐리웃의 CG 기술을 통해 영화화되었고 수많은 SF와 판타지 명작의 기반이 되었다. 거의 완벽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세계관을 계속해서 확장해가는 마블은 이미 1940년대부터 만들어진 코믹스의 방대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디즈니의 마블 스튜디오는 방대한 스토리들을 취사선택하여 각색해 영화화하고 있는 것이다.

조르주 멜리아스, 달세계 여행(1902년)                                               프리츠 랑, 메트로폴리스(1927년)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기반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 SF작품은 그 수가 상당히 적고 쓰여졌다하더라도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 못하고 오랫동안 마이너 취급을 받아왔다. 특히, 우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내 기억에 하나도 없다. 이는 우주 사 기술에서 한참 소외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력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서구권에 비해 SF 레퍼런스가 부족한 국내에서 상상력의 한계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승리호는 국내 최초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액션 활극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만들어진 적 없는 콘텐츠이다. 각본을 쓴 조성희 감독은 헐리웃 영화에서 본 이미지와 스토리를 참고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디서 본듯한 설정과 장면이 계속해서 등장하는 것은 획기적인 상상력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미 헐리웃에서 검증받은 설정들을 차용해 안정적인 반응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다는 점도 완전히 신선한 시도를 하기에 부담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다. 승리호는 우리가 이야기만 제대로 갖추면 충분히 헐리웃 수준의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증명한 영화다. 승리호를 시작으로 레퍼런스가 쌓이면 우리도 충분히 헐리웃 수준의 SF 명작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문을 연것 만으로도 승리호는 충분히 호평받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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