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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물장어 Sep 22. 2021

[시네마톡]오징어 게임 - 무한경쟁 사회에 바치는 동화

오징어 게임은 근래 본 넷플릭스 시리즈 중 가장 수작이다. 데스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이전에도 여러 편을 봤기에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았지만 생각보다 너무 훌륭하게 잘 만들어졌다.   

데스 게임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이전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대표적인 예로 일본의 “배틀로얄”이 있으며, 헐리웃에서 만든 “헝거게임”이 있다. 또 이 작품과 표절 논란의 중심에 있는 “신이 말하는 대로”라는 작품도 있다. 즉, 이 작품의 소재는 신선하지 않으며, 그래서 표절 논란도 다수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을 비교해보면 각각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전혀 다르다. 배틀로얄은 지독한 입시전쟁에 시달리는 고등학생들의 경쟁을 은유하는 학원물이며, 헝거게임은 체제유지를 위해 데스 게임을 이용하는 독재 권력의 이야기이다. “신이 말하는 대로”는 신으로 표상되는 악마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데스게임과 관련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데스게임이 주는 자극적인 부분에만 집중한 작품으로 사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거의 없다.     


오징어 게임은 데스 게임이 가지고 있는 본질인 '경쟁'에 집중해 현대 경쟁사회 속의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데스 게임은 같이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이 죽어야 내가 승자가 되는 잔인한 게임으로 경쟁의 가장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오징어 게임은 이 극단적인 경쟁 게임을 소재로 고도 경쟁사회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설적으로 은유하고 있다. 황동혁 감독은 2008년 즈음에서 썼던 이 작품의 시나리오가 지금 현 상황에 보여주기에 너무 시의적절하다고 느꼈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2021년 대한민국은 경쟁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이다. 경쟁 시스템 그 자체에 대한 대안을 고민하기 보다, 이러한 경쟁 체제속에서 공정한 룰만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게임은 공정한 경쟁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 편법을 쓰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러한 인물은 가차없이 응징을 당한다. 게임 주최자는 공정한 룰을 바탕으로 경쟁해 승자와 패자만을 나눌 뿐이다. 문제는 패자는 가차없이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사회 안전망 없이 내달리고 있는 우리사회의 경쟁 시스템과 무척이나 닮아 보인다.


우리는 초등학생 때부터 은퇴하기 직전까지 강도 높은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모두가 발버둥을 치며 살아가고 있다. 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선순환의 구조 속에서 그가 노력한 것 이상의 보상을 받을 수 있으며, 한번 바닥으로 추락한 사람은 악순환의 굴레에서 허우적대다가 생을 마감한다. 우리나라가 자살율 1위의 오명을 수년째 벗어나고 있지 못하는 것은 현재 이 사회의 경쟁 시스템이 이 영화에 등장하는 데스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징어 게임은 현재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을 극단적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속에는 돈이 너무 많아 왠만한 일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위너들과 수많은 빚을 지고 나락 속에서 허우적대는 루저들이 모두 등장한다. 루저들은 위너들의 유희를 위해 동원되는 일종의 경주마와 다르지 않다. 루저들의 목숨은 고작 1억원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는데, 이 돈은 위너들이 장난처럼 쓸 수 있는 돈에 지나지 않는다. 이 데스게임 자체가 승자와 패자를 나누는 이 거대한 경쟁시스템의 산물인 것이다.      

이 작품은 총 6개의 게임을 통해 상황을 설정하여 각 게임에 임하는 인간들의 다양한 관계와 선택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협력하고 누군가는 배신한다. 누군가는 속임수를 쓰고 누군가는 타인에게 승리를 양보한다. 고도의 경쟁사회에서도 인간은 저마다 다양한 선택을 하고 본인의 행동에 따른 결과를 받아들인다. 감독은 이러한 다양한 인간군상을 통해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특히 구슬치기 시퀀스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관계와 각자의 선택들은 경쟁에 임하는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여러 데스게임 소재의 영화가 존재하지만 이 작품처럼 다양한 관계와 인간 군상을 보여준 작품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상당히 입체적으로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은 또 한가지는 미술이다. 데스게임이 이루어지는 공간과 이들을 통제하는 보안 요원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예쁘다. 마치 웨스 앤더슨의 작품을 보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예쁘게 구성한 미장셴은 근래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는 잔인무도한 게임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며 우리가 느끼는 충격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미지가 단순히 시각적 효과만을 위해 동원된 것이 아닌 것 같다.      


이 데스게임은 잃어버린 유년기의 순수한 즐거움을 동경하던 이가 만들어낸 게임이다. 이 지독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승자가 되었지만 순수한 동심을 잃은 이가 과거 자신이 순수했던 시절을 복원하고자 하는 희망이 투영되어 있는 게임이다. 그래서 게임들 대부분이 어릴적 우리가 동네 친구들과 하던 놀이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게임이 이루어지는 공간은 동화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렇게 알록달록한 역설적인 미장셴이 스토리와 조화를 이룬다.     


신해철 2집의 수록곡 “길 위에서” 는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었지”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소년의 순수함을 간직하고 살고 싶었던 신해철이 어른이 되고 마주한 세상이 자신이 어릴적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쓴 구절이다. 이 지독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우리 인간들. 자식이 경쟁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에 서게 하기위해 초등학교 친구마저 그 부모의 재력과 아이의 학교 성적으로 나누어 가려 사귀게 하는 인간들의 모습. 황동혁 감독은 순수함을 상실한 채 고도 경쟁사회로 이행하고 있는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에 대해 많이 안타까웠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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