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를 통해 본 애플의 생각: 애플TV+는 왜 파친코를 만들었을까?
2. 애플TV+는 왜 파친코를 만들었을까?
다음 질문이다. 애플은 왜 한국 이민자의 대하드라마를 만들었을까? 파친코는 제작비가 약 1000억 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회당으로 나누면 125억에 달한다. 오징어 게임이 9부작 제작에 총 250억을 들인것과 비교하면 이는 정말 막대한 금액이다. HBO의 대작 왕좌의 게임 8개 시즌의 시즌당 평균 제작비는 $1억으로 추정되는데, 이와도 견줄만한 금액이다. 애플이 현금 부자이기는 하지만 이처럼 막대한 금액을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시리즈에 무턱대고 투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 글로벌 OTT 시대, 헐리우드의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의 연장선
영화 산업에 있어 전통적인 글로벌 강자 미국은 과거부터 타국의 역사와 문화 등을 소재로 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제작하는 노력을 해왔다. 특히, 디즈니가 이런 노력을 가장 적극적으로 해왔다. 뮬란, 라따뚜이, 모아나, 코코, 루카와 같은 작품들은 각각 중국, 프랑스, 마우이족, 멕시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다. 디즈니 작품 외에도 중국의 마지막 황제인 푸이의 일생을 소재로 한<마지막 황제>, 일본의 기생 게이샤를 소재로 한 <게이샤의 추억>도 헐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진 타국 배경의 영화이다. 이를 글로벌화와 현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전략이라 부를 수 있는데, 헐리우드가 이런 시도를 하는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세계시장이 공유할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을 담아내어 각국에 진출했을 때 문화할인율(cultural discount)을 최저화하고자 함이다. 이를 통해 세계시장에서 흥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이미 콘텐츠 유통의 세계화가 이루어진 영화시장에서는 미국자본의 이러한 시도가 계속해서 있어왔다.
반면, 방송용 극 형태인 시리즈물의 경우는 영화에서처럼 타국의 문화나 역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려는 시도가 많지 않았다. 특정 에피소드에서 다른 나라의 문화를 다루거나 여러 캐릭터 중 타국의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타국의 문화와 역사 등을 담은 내용으로 극 전체를 만드는 일은 거의 없었다. 주파수를 바탕으로 송출되는 방송 콘텐츠는 주파수의 한계로 인해 자국 중심으로 유통을 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시리즈 물에서는 자국의 수용자들만 고려하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OTT 시대에 이르러서 넷플릭스를 필두로 홈미디어의 배급망이 세계화되기 시작하며, 시리즈물에서도 타국의 수용자들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는 시리즈 물에서도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이 적극적으로 나타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넷플릭스는 타국의 제작사를 통해 해당 국가의 제작진과 배우로 그 나라의 이야기를 담은 시리즈를 계속해서 제작하고 있다. OTT의 글로벌 확산이 만들어낸 새로운 풍경이다.
OTT가 주도하는 글로컬라이제이션 시대에 가장 도드라지는 국가가 바로 우리나라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의 콘텐츠가 전세계로 유통되며 작품의 우수성을 세계시장에서 인정받았고 이는 전과는 다른 차원의 한류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과거 동양하면 중국과 일본을 떠올리던 서양 콘텐츠 제작자들의 시선을 한국으로 돌리게 했다. 애플은 애플TV+를 미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하는 OTT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한국의 콘텐츠가 필요했고 그 중 미국과 전세계에서 충분히 검증받은 원작을 믿고 과감한 투자를 한 것으로 보인다.
2) 미국 이민 역사와의 동질성
파친코는 한국의 이민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본질은 미국의 이민자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애플이 아무리 글로벌 시장을 신경쓴다고 하지만, 애플TV+는 글로벌 시장에서는 비주류이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 시장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는 시도는 할 수가 없다. 파친코는 미국인들이 충분히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미 이와 유사한 이야기들이 미국에서 검증받은 적도 있다.
일본에서 파친코 사업은 재일 한국인인 자이니치들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사업이다. 일종의 도박에 해당하는 파친코 산업에 자이니치들이 주로 진출하게 된 것은 이들이 일본 사회 내에서 구조적으로 차별과 배제를 당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재일한국인들은 공공기관이나 민간기업에 쉽게 취업을 할 수 없었는데 그 결과 이들이 파친코와 같은 지하경제 산업에 몰려들게 하였다. 즉, 파친코는 자이니치들이 이민자로서 겪은 차별의 산물이다. 이민진 작가가 자이니치의 이야기를 쓰며 제목을 파친코로 정한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미국의 영화들이 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대부>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아이리시맨>이 그것이다. 대부는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이야기이며, 아이리시맨은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이야기이다. 두 영화의 감독 모두 이탈리아계 이민자 출신으로 각각 자기만의 시각으로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이민자들의 마피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의 국가이다. 그러나 이민자들 간에도 차별이 존재했다. 주류인 영국계 이민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게 들어온 이탈리아계와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은 구조적인 차별에 시달려야했다. 취업도 어려웠고 경찰의 보호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들은 구조적 차별에 대응하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마피아를 조직했다.
이렇게 주류 집단에 의해 철저히 배제된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법과 먼 곳에 있는 시스템에 의지한 역사가 존재하는 곳이 미국이다. 미국은 이미 차별과 배제의 역사를 충분히 경함한 국가이고, 이를 소재로 한 영화가 대중과 평단에서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국가이다. 드라마 <파친코>의 총괄 제작을 맡은 테레사 강 로우는 기획 초반부터 <대부>시리즈를 많이 참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민자 차별의 역사를 경험하고 그러한 콘텐츠를 수용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파친코가 보여주는 이민자 차별의 역사는 미국의 아픈 역사를 재현하는 것으로서 충분히 미국에 소구할 수 있는 콘텐츠인 것이다. 이것이 소설 <파친코>가 미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마치며
미국의 거대 글로벌 기업 애플이 제작한 <파친코>는 작품 내적이나 외적으로 상당히 많은 이야깃거리들을 품고 있다. 과거 공영방송사가 민족문화 창달 등의 이유로 제작하던 대하드라마가 다른 나라의 빅테크 기업의 손에서 제작되어 전세계로 배급되고 있다. 이는 미디어 환경 변화의 결과물이다. 방송 콘텐츠가 다른 산업과 연계되어 전체 생태계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변모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사업자들이 영상 콘텐츠를 제작하며, 소재가 빠르게 고갈되고 있고 이 빈틈을 우리나라의 콘텐츠가 파고 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겪은 아픔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역사와 맞물려 하나의 좋은 소재가 되었고 그것이 다른 국가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공감을 이끌어냈다. 우리의 이야기 중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낼 콘텐츠는 아직도 많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거대 사업자들이 세계를 무대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시대, 우리나라 국민들이 겪어왔던 희로애락들이 해외 자본에 의해 만들어져 글로벌 OTT를 통해 시청하는 경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글은 지식협동 좋은나라와 프레시안에 실린 본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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