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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dy Sep 22. 2018

검사 내전/김웅

화해 강요하는 사회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검사는 주로 근엄하거나 혹은 신데렐라를 구원해주는 왕자님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곤 한다.(심지어 검사가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현란한 발차기로 조폭들을 때려잡는 모습까지 나온다) 김웅 검사의 표현에 따르면 그런 모습과 실제 검사의 모습은 “항공모함 서너 개는 교행 할 수 있을”만 한 간격이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20여 년 동안 직업인으로 만났던 사건들과 그 사건들을 겪는 나와 다르지 않은 


생활인들의 이야기이다.



책 제목도 <검사 내전>이라 집어 들 때까지만 해도 근엄한 한자/라틴어로 뒤덮인 법조문들이 난무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책 어디에도 엘리트 의식이나 선민의식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으며


의외로 풍자와 해학이 있는 저잣거리의 언어로 넘친다.


    



책에는 각종 사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이야기부터부터 법의 역할까지 문체는 가볍지만 꽤 묵직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데 ‘아이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마라’라는 꼭지가 가장 인상 깊었다. 




나 역시도 학창 시절 왕따를 비롯한 수많은  수많은 폭력들을 목격해왔고 비단 학교 폭력뿐만 아니라 최근 미투 운동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던 갑질, 성희롱/성폭력 문제도 마찬라고 생각한다.


때문에 유난히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많다.




우리나라 학교 선생님들과 학부모


나아가 군대의 간부님들도 꼭 한번 읽어 보시길 바란다.



"소년 검사를 할 때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보람이 시시각각 교차했다. 그중에서 나는 특히 학교폭력에 관심을 가졌다. 그 무렵 검찰은 학교폭력 문제에 아주 적극적이었다. 물론 검찰은 20년 전부터 학교폭력과 소년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검찰이 학교나 소년들에게 개입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폭넓게 퍼져 있었다. 이러한 인식은 꼭 비극적인 사건이 터져야 깨지게 된다."



"2011년 12월, 대구에서 두 명의 친구들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하던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그 아이는 온갖 폭력과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그 아이의 마지막 시간은 CCTV에 남았다. 세상 끝으로 가는 승강기 안에서 섧게 눈물을 훔치던 모습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나뿐 아니라 많은 검사들에게 깊은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좀처럼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고통이었다."





 그전까지는 기사화되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은폐하여 밝혀지지 않았을 뿐 사실 학교 폭력 문제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아이들의 자살 소식이 연일 언론에 터져 나왔다. 국민들은 갑자기 쏟아지는 학생들의 자살소식에 경악했다. 갑자기 학교 폭력 문제가 터져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2012년에 학교폭력이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전까지는 기사화되지 않았고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은폐하여 밝혀지지 않았을 뿐 사실 학교 폭력 문제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 소름 끼치도록 슬픈 영상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그동안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외면했던 학교 폭력 문제를 더 이상 모른 체 할 수 없게 된 것뿐이다."





학교폭력의 원인을 일방적으로 사회에 돌리고 피해자의 탓으로 모는 것은 비과학적인 무지의 소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경쟁 위주의 교육을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또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조심스럽지만 일관되게 피해자의 유별난 성격도 한몫을 했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학교폭력의 원인을 일방적으로 사회에 돌리고 피해자의 탓으로 모는 것은 비과학적인 무지의 소산이다."



"‘일반 긴장 이론’은 기대와 열망 간의 괴리와 같은 긴장상태가 사회적 계층이나 빈부격차와는 무관하게 부정적 감정을 증가시키고 이것이 반사회적 폭력적 행위를 증가시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에 반해 ‘범죄의 일반이론’은 범죄나 그와 유사한 일탈행위가 모두 자아통제를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아 통제 부족’을 모든 범죄의’ 일반적인 원인’으로 꼽기 때문에 일반이론이라고 불린다. 자아통제가 낮은 원인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는데, 흔히 말하는 사회적인 원이나 제도 때문이 아니라 어린 시절 부모나 보호자가 자녀의 행위를 주위 깊게 감독하지 않고, 그 행위에 대해 처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 범죄나 청소년 범죄를 사회 탓으로 돌린다. 경쟁 위주의 입시 등으로 원인을 돌리는 것은 여러모로 편리하고 저항도 덜 받는다. 모두에게 책임을 돌리게 되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라는 피상적인 말잔치로 포장되는 것이다."



"학교 폭력은 고등학교보다 중학교에서 더 심하고 중학교에서도 3학년이 아닌 2학년 때 극성을 부린다는 사실은 그 주장의 신뢰성을 무너뜨린다."





바로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른들이 보인 행태 때문이다




"학교 폭력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나, 그 정도가 심해진 원인은 단순하고 명확하다. 바로 학교 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른들이 보인 행태 때문이다.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 편을 들어 조용히 끝내기를 강요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학생들은 어느 편에 서야 하는지를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학교 폭력 문제는 강요된 피해자의 용서나 전학으로 해결되었다. 피해자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가장 간단히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해자들은 사라졌고, 가해자들은 승리해졌으며 학교폭력은 더욱 악랄해지고 한층 은밀해졌다. 아이들은 이제 남을 괴롭히지 않으면 언제 그 먹이사슬의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가장 약하고 낮은 학생들을 경쟁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피해를 입으면 입을 다무는 것이 더 큰 피해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폭력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학교를 떠나는 것이었다. 학교도 사회도 인권전문가들도 모두 그것을 원했다."




"피해자가 떠나면 학교는 평온을 찾았다고 믿지만, 그것은 피해자가 평생에 걸쳐지고 가야 하는 정신적 외상의 대가일 뿐이다."



"아이들은 죽기 전에 이미 여러 차례 신호를 보내며 그 사실을 드러냈을 것이다. 그러나 달라지기는커녕 상황이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수없이 신호를 보내고 아우성을 쳐도 무신경한 절벽 앞에서 아이들은 절망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한 가지 진실을 깨달은 것. 피해를 입었다고 말하는 것은 더 큰 피해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아무도 피해자의 편에 서지 않는다.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고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지만, 피해자는 더 큰 보복과 따돌림을 당한다. 가 해자를 지원하는 사람들과 보호하는 절차는 겹겹이 쌓여 있지만, 피해자를 위한 관심과 보호의 손길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들은 더 심한 보복에 시달리게 되고 점차 고립된다."





자신들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 문제를 조용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학교 폭력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을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학교와 가해자 부모들의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학교 폭력이란 어려서 누구나 한 번씩 겪는 일이고, 유난 떨지 않는다면 그냥 학창 시절의 추억으로 남는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폭력을 가 했다기보다는 쌍방 과실인 것이고, 피해자의 유별난 기행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말이 나오면 일부 교사들은 반색을 하고 기뻐한다. 자신들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고 또 문제를 조용히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기보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화해와 용서를 강요한다."



"우리 아이들은 그 과정을 모두 본다. 그리고 폭력과 잘못에 침묵하는 생존법을 배우게 된다. 일부 언론에서 말하는 화해와 용서의 실상을 이런 것이다. 여전히 윽박지르는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무릎 꿇으며 용서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존엄한 것은 함부로 대할 수 없고, 훼손될 경우 반드시 응분의 대가가 따라야 한다




"인권 의식은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존엄성이란 눈물 흘리기 좋은 감성적인 소재가 아니다.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냉철하고 엄중한 과제이자 요구이다. 존엄한 것은 함부로 대할 수 없고, 훼손될 경우 반드시 응분의 대가가 따라야 한다. 마음대로 짓밟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짓밟힌 것이 오히려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간청해야 한다면 그건 존엄한 것이 아니다. 존엄한 것은 두려운 것이고 원시적인 것이다. 지켜지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이 존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소년 전담 검사를 하면서 나는 늘 피해자들에게 너는 소중하고 무엇보다 존엄하다고 말해주곤 했다. 그리고 가해자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고, 화해하거나 용서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출처: 

http://movingcastle.tistory.com/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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