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광주 안에서 차로 30분 거리로 나가 살지만, 할머니는 그래도 외지에서 고생한다며 금요일에 퇴근 후할머니 집으로 가면 항상 뜨거운 새 밥을 짓고 몸에 좋다며 생선을 구워서 상을 차려주셨다.할머니 힘드시니 내가 차려먹겠다 했지만, 되려 역정을 내시며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한데 쉬어야지 하시며 날 앉히셨다.
할머니 눈에 나는 항상 고생하고, 배고픈 자식이었다.
할머니 덕에 평생 배곯으며 살아온 적 없었는데도 할머니 눈 밖에서 일하며 혼자 사는 게 짠하신지 날 볼 때마다 안쓰러워 하나하나 다 챙겨주셨다.
항상 내가 올 때쯤 맞춰서 밥이 되도록 안쳐놓으셨고, 돼지고기는 몸에 해롭다며 항상 생선을 구워주셨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니 돼지 앞다리살을 사다가 양념에 재워두셨다.
그렇게 밥을 차려주시곤 먼발치에 앉아서 날 지켜보신다.
내가 무엇은 먹나, 안 먹나.
그렇게 관찰하시고는 내가 뭐 안 먹는 게 있다, 하면 그다음 주에 오면 다른 반찬으로 바뀌어있고, 내가 잘 먹는 것은 한솥 만들어 놓으셨다.
난 고기보다 버섯을 좋아하는데, 언젠가 새벽시장에 갔다 오시더니 새송이버섯을 한 가마니 사 오신 것이다.
정말 가마니로 하나 가득 이었다.그게 오천 원어치라며, 싸다며 그렇게 많이 사 오셨더란다.어차피 내가 주말 내내 먹어도 다 못 먹을 양이니, 신문지에 곱게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시고 내가 올 때마다 먹을 만큼 손질해서 꺼내 주셨다.
손에 묻히지 마라고.그대로 꺼내서 먹고 싶은 대로 요리해서 먹으라고.
언젠가는 집에서 생라면을 부숴서 먹었는데, 정말 먹고 싶어서 먹은 거였는데 할머니께서 안쓰럽다고 나가서 맛있는 과자 사 오라고 성질을 내시는 거다.돈이 없으면 주겠다, 뭐 먹고 싶냐 사다주랴 하시면서 말이다.
나가기 귀찮아서도 있었지만, 정말 그게 먹고 싶어서 먹은 것일 뿐인데 할머니는 믿지 않으셨다.그 뒤로 할머니 집에 갈 땐 과자를 잔뜩 사서 쟁여놓고 먹고 싶을 때마다 하나씩 꺼내서 먹었다.생라면을 먹는 게 그렇게 걱정 끼쳐 드릴 일일 줄이야.
할머니는 내 입에 뭐든 먹을걸 물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시다.
그 마음은 치매에 걸린 지금도 똑같으신데, 지금도 주말마다 할머니 간병하러 오지만, 할머니는 날 보자마자하시는 말씀은 똑같으시다.
얼른 뭐 좀 먹어라
계속 먹었다고 해도 직접 보질 못하셨으니 믿지를 않으신다.
그래서 이젠 아예 내가 밥 먹을 땐 할머니를 휠체어에 앉혀서 식탁까지 모셔온 다음에 내 밥을 먹고, 간식 과자 과일 항상 할머니 눈앞에서 먹는다.
할머니는 아직도 내가 먹는 음식에 신경 쓰신다.
퀄리티가 아니라 양을.
내가 밥 먹는걸 내 평생 지켜보셨으니, 내가 어느 정도 먹어야 양이 차는지 아신다.
그 양보다 더 먹고 있으면 살찌니까 그만 먹어라,덜먹었는데 상을 치우면 더 먹으라고 하시는데, 그때가 진짜 내가 양이 덜 찼을 때라 할머니는 내 위장까지 꿰뚤어 보시는 것 같다.
최근에 식구들끼리 고기를 구워 먹는데, 식구들 기다릴까 끊기지 않게 굽느라 몇 점만 주섬주섬 싸 먹고 안 먹고 있었는데, 할머니는 내 입만 쳐다보고 계시다가 한 말씀하시더라.
우리 애기 하나도 안 묵었다!
식구들은 안 굽고 나만 굽고 있으면서 일하고 있는 것도 분한데, 먹지도 않고 있으니 할머니가 화를 버럭 내셨다.
난 식구들 다 먹이고 나서 내가 먹는 게 편한데, 나도 음식을 해서 먹이는 입장이다 보니 식구들이 배불리 먹고 나서 먹는 게 마음이 편하다.
식구들이 다 먹고 나서 나는 남은 고기를 구워다가 혼자서 다 먹었는데 할머니는 그마저도 내가 얼마나 먹나 계속 보고 계신다.할머니의 정직한 시선은 내 얼굴도 젓가락도 아닌 입에 있었고, 내가 얼마나 먹나 양이 차게 먹나 눈에 불을 켜고 보고 계셨다.
할머니의 사랑이 내편이어서 다행인 건, 할머니가 내가 편하게끔 신경 써주시는 것도 있지만, 할머니가 나만 보면 기분이 좋아서 치매 증세가 완화되는 것이다.
둘이서 이것저것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하고, 점점 할머니의 기억이 좋아지시고 웃고 계시니 할머니가 이리 살아계시는 게 너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