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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E Jul 17. 2021

할머니와 둘이서 여행

해바라기

고창 가는 버스안


할머니가 아프시기 전에, 난 할머니와 둘이서 여행을 자주 다녔다.

버스로 한 시간 거리로 가기도 하고, 택시 타고 10여분 걸리는 유채꽃밭에 가기도 했다.

그중 2년 전 여름에 갔던 고창은 오직 할머니를 위해 내 월급날 맞춰서 간 여행이다.

할머니께 뭐 드시고 싶으시냐,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으시냐 여쭤봐도 다 좋다시며 아무 데나 가자고 하셨다.

아무래도 여행을 간 적도, 맛있는 음식을 접한 적도 많이 없으시다 보니 아시는 것이 없어 뭐든 다 좋다고 하시는 것 같았다.

친한 언니에게 여행지 추천을 받던 중, 고창의 온천이 좋다고 해서 그곳으로 결정되었는데,

광주에서 버스로 넉넉잡아 한 시간이니, 할머니 다리가 아파도 갈 수 있는 거리에, 온천에 고창은 널찍한 청보리밭이 유명하니 할머니 모시고 가기 딱 좋았다.

할머니와 전날부터 필요한 짐을 챙기고, 설레는 마음에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아침밥을 챙겨 먹고 버스시간만 기다렸다.

버스는 30분 전부터 기다려서 10분 전에 타고 있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급한 마음은 이날도 변함없었고, 난 택시 타고 20분 거리의 터미널을 집에서 한 시간 전에 나왔다.

터미널에서 고창까지는 제법 빨리 도착해서, 점심 예약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할머니가 처음 앉아보신 카페

고창 터미널에 카페가 하나 있었는데, 할머니와 카페 들어가서 시원한 차 한잔씩 마시며 사진도 찍고, 가족들께 도착했다며 통화도 했는데, 할머니는 생전 두 번째 가보시는 카페였다. 처음 보는 분위기와 음악, 처음 맛보는 카페의 시원하고 달달한 캐러멜 마끼아또는 "역시 돈이 최고다" 하는 소감을 남기셨다.

점심은 질이 좋은 소고기집에서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버섯 한가득, 맛있는 소고기를 구워드렸는데 할머니는 잘 드시지 않으셨다.. 비싼 거 말고 싼 걸 사 드려야 잘 드셨으려나. 손녀 일해서 번 돈 아깝다며 걱정에 잘 못 드셨다. 김치와 청양고추에다 식사를 하셔서, 다음엔 풀밭에서 풀 뜯어먹을 거라고 핀잔을 드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그게 더 맛있어서 드신 것 같다. 고추도 좋아하시고, 김치도 시원하니 맛있는 김치였다.

차가 없던 나는 그곳에서 택시로 이동했는데 콜택시도 빨리 잡히고 택시비도 얼마 들지 않아서 가볍게 돌아다녔다.


 지나가신 분이 찍어주신 할머니와 나

점심 먹고 청보리밭으로 갔는데, 넓은 흙밭이 할머니는 그리우셨는지, 옛날 생각이 났는지 먼발치를 보시며 생각을 많이 하셨다.

할머니 성격에 눈물 흘리실 것 같아 할머니께 신나게 말을 걸었다.

"할니! 옛날에 이런 풀밭에서 냉이 캤던 거 기억나?"

"저거 쑥이다! 맞지?"

"할무니 저거는 무슨 풀이야? 먹을 수 이써?"

할머니는 내가 풀이름을 물어보면 다 대답해주셨다.

이건 먹을 수 있는지 못 먹는 건지 위주로 대답해 주셨는데, 순전히 할머니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답변이어서, 이름은 자세히 모르셨고 할머니들끼리 부르는 이름을 말씀해주셨다.

청보리는 철이 지나서 없었고, 멀리 해바라기 밭이 보여서 할머니와 사목사목 걸어서 갔다.

그곳은 관광객이 많았는데, 지나가는 한 아주머니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셔서 찍어드렸는데 저희도 찍어 주시겠다며 해주셨다.

덕분에 할머니와 둘이서 찍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사실 둘이서 가는 여행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 보니 함께 찍은 사진을 찍기가 힘든데, 이것도 찍어주는 사람의 스킬에 따라서 사진의 퀄리티가 달라진다.

내가 찍어드릴 땐 인물과 각도 맞춰서 안정감 있게 찍는 반면, 할머니가 나를 찍어주실 땐 흔들리고 뒤집어지고 비스듬해서 난리가 난다.

할머니가 사진을 찍어주시면, 스마트폰의 셔터 버튼을 누르시라고 알려드렸는데 항상 셔터를 때리신다. 누르는 게 아니라 탁 하고.

그 힘을 못 이겨서 스마트폰이 휘청 하니 찍힌 사진이 흔들릴 수밖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해바라기 밭, 청명하게 떠오른 파란 하늘 속의 할머니는 환하게 웃고 계셨고, 여행의 생경한 풍경을 즐기고 계시는 듯했다.


사진찍으시면서 웃으시는게 오랜만이다

청보리밭에서 온천으로 가는 길은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께서 여행의 정점을 찍어주셨다.

딸이냐, 손녀냐, 여기 사시냐, 놀러 오셨냐 등등 여러 가지 물어보시더니, 놀러 왔다고 하니 이것저것 로컬만 알 수 있는 사실을 들려주셨다.

넓은 청보리밭을 돌아가는 길에는 예쁜 길을 골라서 가주셨는데, 여긴 누구의 사유지이며, 이러저러한 이야기가 있고, 이 동네는 어떤 동네이며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데 세상 더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더워서 그만둔다는 둥 여러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할머니와의 여행에 부족했던 스토리텔링을 그 기사님이 해주셨다.

고창의 고인돌유적지는 가보셨냐며, 가지 않았다고 하니 고인돌에 대한 이야기도 약간 들려주셨다.

마지막으로 간 온천은 할머니의 무릎 건강과 휴식을 위해 간 곳이었는데, 할머니는 물속에서 구명조끼를 입으시고 자유롭게 걸어 다니시고 스파에서 물거품을 맞으며 제일 열심히 즐기셨다.

가끔 다이소를 가면 사람 키만 한 해바라기 조화가 한편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고창 여행이 떠오른다.

한송이 사서 가면 할머니도 그때의 여행을 기억해 내실까.

할머니에게 그땐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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