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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UE Jul 26. 2021

할머니의 레시피

내 입맛의 조물주

나는 어릴 때부터 음식 하는 많은 방법을 할머니께 배웠다.

계란 프라이부터, 명절에 전 부치는 법, 각종 국을 끓이는 것까지. 그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레시피는 미역국을 끓이는 방법이다. 요즘은 들깻가루 등을 넣은 레시피가 많지만, 할머니는 항상 쌀뜨물을 넣으셨다.

할머니의 미역국 끓이는 법

1. 미역을 불려놓고, 쌀뜨물을 받아놓는다.

2. 불린 미역을 씻어서 썰고, 냄비를 달궈 참기름 휘익 두르고 소고기, 불린 미역, 마늘 한 숟갈, 간장 한 숟갈을 넣고 미역이 익을 때까지 볶는다.

3. 미역이 어느 정도 익으면 쌀뜨물을 붓고 한소끔 팔팔 끓인다.

4. 소금으로 간을 하고 미원을 탁탁 털어 넣는다.


쌀뜨물을 넣은 미역국은 고소한 맛에 항상 뽀얀 연두색 국물을 띄고 있었는데, 난 미역국은 원래 이런 줄 알았다.

초등학교 가서 급식을 먹으면 가끔 미역국이 나오는데, 국물이 투명해서 이거 미역국 맞나.. 싶었던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할머니의 미역국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영 국물이 밍밍해서 미역만 건져먹었다.

어릴 때부터 건더기를 건져먹는 걸 좋아하다 보니, 난 항상 국물을 남겼고, 할머니는 어느샌가 내가 먹는 국엔 국물은 조금, 건더기는 많이 끓이시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 집 미역국은 항상 물이 조금 들어갔고, 미역이 냄비 한가득 들어가고 물은 빈 공간만 채우는 정도였다.

몇 년쯤 전에 할머니께서 미역국을 끓이겠다고 하시는데, 나에게 뭐뭐 들어가냐고 물어보시는 거다. 평생을 해온 음식 만드는 법을 하나하나 잊어가기 시작하신 것이다.

나는 가스레인지 옆에 할머니를 모셔와서, 잘 보라고,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하면서 할머니가 어릴 적 나에게 알려주셨던 그 방법 그대로를 알려드렸다.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실 테지만, 그때 난 슬프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할머니에게 많은 것을 배워둬야지. 나라도 기억해야지.

레시피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어릴 때, 처녀 적은 어땠는지도 많이 물어보면서 할머니의 기억을 상기시켰다.

어떤 삶을 사셨는지, 할아버지 친구는 어땠는지 모두 나의 기억 속에 담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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