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잔병이 많았다.감기는 환절기마다 초봄, 늦가을 매년 두 번씩 꼬박꼬박 걸렸고, 배앓이며 치과며 자주 다녀서 나한테 들어간 병원비만 빌딩 한 채 값이라고 할 정도로 많이 다녔다.
어릴 때 살던 곳이 시골이라, 병원은 없었고 마을에 보건소 한 개만 있어서 보건소에서 진료가 안 되는 치과나 피부과 등등은 읍내로 나가야 했는데, 할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30분 넘게 차를 타고 가야 겨우 읍내의 입구가 있을 정도로 먼 곳이었다.
할머니는 내가 아플 때마다 예민하게 반응하셨다.감기라도 걸렸으면 화를 내시며 왜 아프냐, 뭐하러 감기 걸려서 왔냐 등등 격하게 화를 내셨는데, 다 아픈 게 걱정돼서 속상하신 거라는 것을 안다.항상 격하게 걱정하셔서 그렇지..
할머니는 30년 전, 내가 아주 어릴 때에도 배탈에 좋다며 매실청을 진하게 만들어서 부엌에 숨겨두시고는 내가 배앓이할 때마다 한 스푼씩 원액을 주셨는데 신기하게 그걸 먹으면 아픈 배가 금방 나았다.
어릴 때부터 아프면 할머니가 속상해하시고 화를 내셨던 게 생각나서, 난 아픔을 숨기고 사는 어른이 되었는데, 그렇게 병을 키워서 할머니께 더 혼나는 경우도 많았다.
아니 아파도 혼나고 아프다고 말 안 했다고 혼나면 나는 대체 어찌해야 할까. 그렇지, 건강해야지만 혼이 안 난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등의 꽤 넓은 면적에 까맣게 색소침착이 되었는데, 피부과에선 2~30대 여성들에게 흔한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할머니에겐 통하지 않았고, 할머니는 매일매일 저녁마다 안경을 끼고 내 등을 보시면서 경과를 살피셨고, 매일 세심히 연고를 발라주셨다.그렇게 몇 년을 주말마다 피부과를 가고, 매일 연고를 바르니 어느 순간부터 옅어지더니 없어졌다.
내가 독립하고 난 후에도 아픈 일이 제법 많았지만, 할머니께는 티를 안 내려고 애썼다.아파서 쉬어도 항상 퇴근시간 되면 퇴근했다고 전화를 걸고, 아픈 거 티 안 내려 한껏 텐션을 높여서 평소와 다름없이 통화를 한다.
"할무니~ 나 퇴근해따"
"... 목소리가 왜 그래!"
"목소리? 멀쩡한디?"
"머시 그래! 아프구만! "
들켰다.
목소리 한마디 듣고 아픈 걸 들켜버렸다.
할머니가 꿰뚫어 보시는 건 내 위장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내가 몸이 안 좋다, 어디가 아프다 하면 할머니는 그때부터 나을 수 있는 온갖 방법과 앞으로 안 아플 원인까지 고민하시는데, 감기에 걸리면 한동안은 계속 홍삼을 먹으라며 홍삼 살 때까지 매일 말씀하시고, 위염이나 장염이 생기면 프로바이오틱스가 좋다며 아예 제일 큰 약국에서 제일 좋은 거 한 박스를 사 오셔서 주시면서 매일 먹으라고 당부를 하셨다.
사람이 어떻게 안 아플 수 있겠냐마는, 할머니는 내가 아프면 세상이 무너진 듯 걱정을 하신다.
몇 년 전 주말에 할머니 집에서 자다가 새벽에 갑자기 어지러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가만히 누워서 자고 있었는데 세상이 빙빙 어마어마한 속도로 돌고, 어지러움에 구토까지 했다.
할머니는 주무시다가 깜짝 놀라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셨는데, 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괜찮다고, 병원 가서 약 지어 오겠다고 나가서 택시를 불러서 근처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에서도 누워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도 못 하고 누워서 빈속에 위액만 토하고 있었는데, 의사 선생님은 술 마신 건지 어디가 어떻게 아픈 건지 물으셨지만 난 대답하지 못하고 누워서 정신 못 차리고 있었다.
그렇게 20분쯤 지났을까..
할머니가 계신 게 아닌가!
새벽에 갑자기 병원 간다고 나간 손녀가 많이 아픈 게 분명 하니 이 시간에 열었을 응급실을 찾아온 것이다.
어디 병원 간다고 말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무작정 가장 가까운 병원부터 새벽에 걸어서 찾아오셨다.
할머니를 보고 난 강박관념이 일어났다.
괜찮다고, 많이 아픈 거 아니라고 얘기해야 한다.
아무 말 못 하고 있으면 분명 할머니는 큰 병인 줄 알고 어쩔 줄 몰라하시며 울고만 계실 것이다.
"어... 지.. 러... 요..."
정신을 꼭 부여잡고 이 한마디만 겨우 남긴 채 난 다시 어지러움에 몸부림쳤다.간호사분들은 옆에서 휴지와 종이타월을 가져다주시며 내 입과 주변을 닦아주셨고, 할머니는 내가 수액을 맞으며 안정될 때까지 옆에 꼭 붙어서 날 쓰다듬어 주시고 닦아주셨다.
그 새벽에 얼마나 놀라셨을까.
다행히 입원하지 않고 수액 맞고 약을 지어 왔지만, 할머니는 한동안 동네 어르신들께 어디 병원이 좋은지 수소문하셔서 나에게 매일 알려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