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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Sep 03. 2020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아카이빙: 장혁주의 '이민족 남편'을 읽고


            장혁주는 굳이 한 마디로 표현해야 한다면 "매국노 작가"이다. 그의 생애에도 그렇게 불렸을 것이며, 아직까지도 종종 그렇게 불린다. 1905년 한국, 고위 장교의 첩이 부하와 바람을 피워 태어난 그는 부유한 기녀인 어머니 아래에서, 이후에는 친아버지네 부인 밑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작가가 된다. 하지만 이 시기의 남자들은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장혁주 또한 멀쩡한 가정을 버리고 여성작가 백신애와 바람을 피우고, 그 남편까지 얽힌 소송 끝에 부인과 자녀를 버리고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간다.


           "이민족 남편"은 그렇게 도착한 일본에서, 한국인의 뿌리를 가진 그가 일본 여성의 이민족 남편으로 살아가며 느낀 바를 적은 전기적 소설이다. 그는 일본어로 글을 쓰며 처음 그의 민족적 개성, 보편적인 일본어와 다른 글쓰기 방식이 참신하다는 이유로 주목받지만 그 개성을 버리고 일본에 동화되고자 애쓴다.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말도 걸지 않고 아이가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가만히 관찰한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일본이 패망해도 조선인으로서 권세를 잡는 편한 길을 버리고 자신의 일본어와 일본어 문학의 완성을 추구한다.


            그의  처절할 정도의 동화 노력은 과연 성공을 거두었을까. 일본어라고는 애니메이션 주제가에 나오는 단어  개밖에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도저히 판단할  없다.  구질구질하고 자기 변명으로 가득  글을 다 보면 일본어를 완성한다고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의 습관을 간직한  일본을 지향하는 그를, 스스로가 밉다가도 아내가 밉고 민족이 밉다가도 버릴  없는 그를, 아시안 여성인 나로서는 도저히 싫어할 수만은 없다.


           아래는 그런 마음으로  텍스트를 읽고서 수업 과제로  에세이이다.

 



          “그 웃음이 특별히 나를 비웃는 것은 아니었을 텐데 나는 ‘민족적인’ 모멸을 느꼈다” (138), 고 장혁주는 “이민족 남편”에 쓴다. ‘나,’ 장혁주는 조선 출신의 아나키스트이면서 일본제국에서 살고 일본어로 소설을 쓰며 “식민지인의 감정”과 개인의 감정 (141)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아무리 뒤틀림을 쫓아내려 해도 ‘나’의 개인성에서 오는 차이가 ‘이민족 남편’으로서 갖는 부족함으로 진단될 때마다 ‘나’는 혼란스럽다 (146). ‘나’에게 일본은 동화되어야 할 모범이면서 개인인 ‘나’가 진작 극복한 전근대성, 원시종교를 떨치지 못한 국가이며 (145-146), ‘나’에게 뿌리 깊은 관습을 안겨준 조선은 망국. 일본보다도 더한 “낡은 전통의 나라” (151)이다. 개인과 민족,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장혁주의 마음을 나는 어쩐지 알 것 같다.


           교환학생으로 독일에 머무는 동안 나는 자주 불안해졌다. 타국에서 느끼는 불안 이전에 어디에서나 내가 ‘아시안 여자애’로 보일 것이라는 데서 오는 불안이었다. 그건 런던 리젠트 파크를 거닐 때 “Come on, China girl”, 하고 와서 안기라는 자세를 취하던 무례한 백인 남자, 내 이웃의 친구이면서도 내 인사에 니하오, 라고 답해 시비가 붙었던 백인 남자와 그걸 묵인한 (역시 백인 남성인) 내 옆 방 사람에게 느끼는 분노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교환학생으로 가득 찬 파티장 안에서, 또는 토론이 활발한 세미나 안에서 유독 말수가 적은 내가 문득, 실제로 스테레오타입에 맞아 떨어지는 존재일지 모른다고 실감할 때 오는 불안이었고, 한국에서 손님일 때조차 서비스 제공자에게 지나치게 저자세로 쩔쩔매거나 손해를 볼 때 문득 느끼던 그 익숙한 불안이었다.


           그러니까, 나와 연 없는 타인을 대할 때 나오는 나의 친절함, 반사적으로 꾸며낸 웃는 얼굴과 상냥한 톤, 맞서지 못하는 조용한 성격은 나의 시민성civility에서 온 것인가, 나의 약자성—혹은 소수자성에서 온 것인가?[1] 다시 말하자면, 내 안의 약자됨은 나를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규정하는가? 나는 자그마한 체구의 아시안 여성으로 태어났고. 내 본성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상냥한 말투와, 화장 없이 편의점도 가지 못하는 낮은 자존감과, 한국에서 타인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 ‘나대지’ 않는 태도를 익혔다.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쉽게 벗어 던질 수는 없는데, 이것을 과연 나로부터 떼어서 생각할 수 있을까. 고작 틀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을 체화하게 되면 그 ‘고작’은 나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장혁주는 한국어를 버리고 순수한 일본어를 지향하지만, 나는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제임스 조이스는 그의 자전적 소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 스티븐의 입을 빌려 말한다. “민족성, 언어, 종교” 따위가 쳐놓은 “그물들을 넘어서 날아가려고 할 거”라고 (조이스 274). 부당하게 공격당하고 몰리고 마는 나의 약자성, 잊을 만하면 번번이 억울하게 호명되는 그 허상의 꼬리표와 실제로 내게 뒤집어 씌워진 민족과 성별의 그물 속에서 나는 ‘나’라는 게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조이스처럼 국경을 넘어 휙 떠나버리는 것은 이미 식민지 언어부터 체화해 버리고 만 장혁주에게도, 나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장혁주는 묻는다: “어느 정도 언어의 기초는 닦았다고 해도 좋다. 그런데 내가 쓰는 문장이 서툴고 이국적인 것은 왜 그런가” (144). 대학에 들어와—그것도 삼 학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한 나는 그럭저럭 영어를 쓰면서도 문득 나의 유성음 발음에서, 잘못 발음하고 만 단어의 강세에서, 마음 가는 대로 써낸 문장더미 속 한국어의 뚜렷한 자취에서 그 서툶을 발견한다.


            영어로 대화를 나눌 때면 나는 습관적으로 “나는 영어를 너무 못해,” 하고 말하고, 나의 친절한 (백인) 친구들은 짜기라도 한 양 늘 “아니야, 내가 본 아시안 중에 네가 제일 영어를 잘해” 하고 위로한다. 그 말을 예상했음에도 선명하게 느끼는 모멸감. 네덜란드 여행 중 안면 없는 나를 환대해준, 모로칸 이주민과 네덜란드 선주민 간 갈등에 대해서도 진보적인 입장을 취하던 중년 백인 남성은 함께 아침을 먹다가 내 영어를 칭찬하며 이전에 다녀간 아시안 게스트들의 영어가 알아듣기 힘들었다고 농담을 던진다. 나는 네 영어실력이 나빠서 그랬던 건 아니냐고 받아치지만, 독일로 돌아가 문득, 한국, 중국, 대만, 일본 친구들의 억양에서 그들 모국어의 흔적과 익숙한 문법적 실수를 발견할 때, 그들의 보수성을 확인할 때마다 그들보다 앞서 수치심을 느낀다. 영문법을 자주 틀리는 프랑스인 친구를 볼 때면, 멍청한 백인들을 볼 때면 느끼지 않는, 그게 고쳐야만 하는 열등함의 증거가 아니란 걸 알면서도 내 것인 양 느끼고 마는 수치심. 내 안에 깊이 새겨진 식민성.


            그럴 때 생각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초월주의자들이 주창한 oversoul이다. 에머슨은 그의, 모든 자기계발서의 원형에 가까운 “자기신뢰Self-Reliance”에서 말한다. 오버소울—너를 넘어 모두의 기저에 위치한 그 보편적인 초영혼을 우리 모두 공유하고 있다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평등하며, 평등할 것이라고. 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막연한 내일이 아닌 지금 당장, 오늘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라고. 하지만 나는 나의 153cm, 최근 몸무게가 4kg 찌기까지 한 이 아시안 여성의 육신을 버리고 보편 정신으로 화할 수 없다. 나의 민족성, 나의 모국어가 자꾸만 나의 발목을 붙잡고 이 초라한 육체에 나를 단단히 매어버린다. 나는 결코 그들과 같이—일견 자유로워 보이는 조건에서 시작할 수 없다. 태생부터 주어진 나의 자그맣고 연약한 육신과 이 육신이 가진 피부색과 낮은 코 안에서, 그물처럼 나를 옥죄는 한국어의 단어, 문장, 표현, 구조를 쉽게 떨쳐낼 수 없다. 내 식민성에 침식된 정신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국에서 백인 남성으로 살아간 에머슨은 물론이고, 영국 식민 하 아일랜드인이었던 조이스에게도 그것은 영영 불가능한 숙원은 아니었다. 조이스가 앞서 배운 것이 민족언어가 아니라 영어였고, 그가 백인 남성이었으며, 게일어를 멸종위기에 몰아넣을 만큼의 오랜 식민 역사 속에서 역으로 기회를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일 테다. 그는 모국에서 처절한 가망없음만을 목격하고 코스모폴리탄 대도시로 떠났다. 하지만 조선어-한국어를 영혼의 뿌리에 박아 둔 장혁주는—나는, 끝없는 후려침 속에서 약자성을 내면화하고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인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떨쳐낼 수 없다. 정말로 나는 열등한 것이 아닌가? 유럽과 미국 중심의 질서를 부정하면서도 너무도 강력하게 내면화해 버린 나는, 한국을 누구보다 싫어하면서도 한국을 얕보는 발언을 들을 때면 화부터 치미는 나는, 누구보다 앞장서 내가 아시안 여성임을 뼈저리게 의식하고 마는 나는, 내가 스스로 나의 가능성을 제약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떨칠 수 있다는 보편정신이 환상인 것인지 명료하게 선 그을 수 없다.


            ll: 내가 잘못된 것인가-잘못되지 않은 것인가-내가 아니라 나의 식민지적 정체성이 잘못된 것인가—혹은 게이코가 말하는 대로 “완전히 동화될 리도 없고, 동화해버리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 (165) 것에 집착하고 만 것일까 :ll. 남성 지식인의 창녀 타령만큼이나 자주 반복되는 의문 속에서 나는 어디선가 굴러 나와 내 영혼에 박혀버린 한국어 밈을 읊조린다. 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나는 내 육신의 국경을 의식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1]

특히나 한국의 보편적 시민성, ‘예의바름’과 ‘겸손’이 해외에서 그곳 도시의 시민성 규범과 충돌하여 그저 ‘아시안 여성’의 특성으로 비쳐질 때, 즉 약자성으로 화할 때 이 의문은 더 커진다.




과제를 제출한 후 교수님이 평을 달아주셨다. 일부만 떼오자면,


"‘아시아 여성’이라는 인종과 젠더의 그물에 꼼짝없이 갇힌 느낌이, 읽으면서 확 되새겨집니다. 그렇지만 ‘내 글을 뗏목 삼아 타고 세계를 오가면서’ 점점 커지는 나(우리) 자신에 대한 신뢰도 있어요. 당신들은 끝끝내 이 감각을 모를 것이다, 자기 자신의 보편을 믿는 한 당신들은 달라질 수 없을 것이다, 새로운 가능성은 늘 외부-주변에서 올 것이다… 등등의."


교수님은 대체 어떻게 쓰지 않은 것까지 읽어내시는 것인지? 어쩌면 이것이 나의 마음이라기보다는, 글을 읽으며 투사된 교수님의 마음을 읽어내신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깊숙한 속내는 나 또한 그렇기에, 늘 그렇듯이 읽혀버렸다는 마음으로 평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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