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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Sep 03. 2020

진로는 아직 고민 중

취준이라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였다니

        내가 돈 걱정 없이 공부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하고 이를 악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대학교 1학년이 지나고 상당한 액수의 장학금을 거듭 수령하면서 여유자금이 생긴 후로는 오랫동안 하지 않아 본 생각이다. 집은 가난하고 가끔 언니와 엄마가 돈을 빌려가긴 해도 (그리고 돌려받지 못하긴 해도) 가족에게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선택이었고, 끊임없는 장학금 신청과 쉰 적 없는 아르바이트, 그리고 취직할 때까지 이자조차 발생하지 않는 생활비 대출 덕에 대학에 들어온 지 한 해가 흐른 후부터 나는 또래 대학생들에 비해서는 꽤 여유있게 살아 왔다. 


        내 인생은 나만 꾸려가면 되는데, 지금까지는 '나만'의 기준이 꽤나 널널했다. 월세 10-15만원, LH에서 내어 준(빌려 준) 보증금의 이자가 매월 15만원에서 20만원. 가스비, 전기요금, 휴대폰요금, 내 고양이 사료와 모래, 간식. 부담되는 건 그보다는 식비와 술값. 3학년이 된 이후로는 옷도 어지간하면 구제로 입었고 책도 중고로 사니 이정도야 나름 감당하겠네, 싶었다. 문제는 내 삶이 어디까지나 나의 것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나의 삶을 누군가와 공유하지 않았다. 언니와 언니 남친과 한 지붕 아래 사는 지금까지도 그렇다. 내 인생은 오롯이 나의 것이었다.


        공부도 혼자했고 (그러니까 고등학교는 나갔지만 학교 수업도 인강도 안 듣고 교과서와 문제집만 보며 독학하다시피 공부했다) 혼자 대학을 정했고 혼자 원서를 넣었고 혼자 집을 구했고 혼자 생활했다. 타인의 삶이 어떤 모양인지 알기 위해서, 필요할 때 정상성을 흉내내기 위해서는 늘 실눈을 뜨고 옆을 흘깃흘깃 훔쳐볼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시력이 좋지 않고 얼굴에 철판을 깔 넉살도 없으니 모르는 것도 뚝딱 시치미 떼고 아는 척 하는 데에만 익숙한 셈이다. 그래도 위장이 익숙해지니 나름대로 나도 어른의 삶을 안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 나는 아는 게 없었다. 나름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그저 환상에 불과했음을 24세 여름, 처음으로 취준을 고려하며 깨달았다.


        취준, 취준 말은 들었지만 이런 수준의 준비가 필요한 줄은 몰랐다. 내가 고시란 고시는 다 패스하고 학점과 전공을 고려한다면 꽤 가능성 있는 로스쿨마저 패스한 것도 수험생활이 싫어서인데 취준도 수험생활의 연장선이라니, 그것도 두세 달 해치우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거절에 거절을 이마에 달고서 8개월이고 1년이고 비참하게 매달리는 거라니. 대학 졸업 후 자금을 모아두려 나름 노력하긴 했지만 내가 생각한 건 월세 보증금 500만원에 여유금 300만원 정도만 있으면 되겠지, 수준이었지 수입 없이 (또는 거의 없는 채) 1년을 허덕이는 게 아니었다. 


        취업에 대해서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심지어는 어떤 직무가 있고 공기업 사기업이 무슨 차이인지도 몰라서 우선 휴학부터 한 나는 여전히 인턴을 구해야 할지, 그런데 아무 자리나 구하는 게 맞는 선택인지, 차라리 한 학기 더 휴학을 하더라도 근로장학을 하며 좀 더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딴 후에나 제대로 인턴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아니, 애초에 정답이라는 게 있기나 한 것인지 모르겠다. 고작 하루 눈팅한 고파스 취업게시판의 사람들은 마치 그런 양 이야기를 하지만... 정말로? 살아가는 모양새에 정답이 없다고는 생각하지만, 뒷받쳐줄 경제적 지원도 없는 주제에 혼자 모난 돌처럼 살다가 굴러 떨어질 저임금 고용 (극)불안정의 나날을 내가 견뎌낼 수 있을지 나는 의심스럽다.


        간만에 나는 다시 고아가 된 기분으로 인터넷 창을 응시한다. 고3, 처음으로 오르비에 접속해봤을 때의 마음이다. 그때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보잘것 없는 지방의 고등학교를 나와서 딱히 스펙도 없고 입시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이 동네에서는 공부를 잘 한다지만 객관적으로 이게 잘 하는 것이 맞는지, 대학에 가서 적응이나 할 수 있을지, 담임선생님은 오히려 나보다도 입시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은데, 손해 보지 않고 내 수준에 맞는 괜찮은 대학에 입학할 수 있을지, 그런 걱정에 가득 차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학벌과 학점은 좋다지만 하필이면 국문과생. 취직과 직장생활에 대해 아는 게 하나 없고 그런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친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삶은 너무나도 나의 것이다. 누군가 책임을 함께 져주지 않는다. 도움을 제공할, 기댈 어른 없이 나는 내 삶에 대해서 스스로 알아보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도움 받길 거부하는 건 그냥 나의 선택이긴 하다. 내 어머니는 멀쩡하게 살아 계시고 어머니의 형제자매도 멀쩡하게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 결정을 철회할 생각은 없으므로) 나는 그게 무섭다. 한 번 결정을 내리면 그 결정을 함께 부담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내가 나를 짊어지고 가는 온전하고 유일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게. 내 삶이 나의 그릇에밖에 담기지 않는다는 게. 그런 생각이 커지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나 혼자 먹을 점심 메뉴 하나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아직도 그렇다. 


        하지만 어쩌겠어. 나는 그냥 이 모양으로 살아가는 사람이고, 결국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결정은 내리게 되어 있으니. 그저 그게 그래도 덜 후회할 선택이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 결정은 아무리 늦어도 반 년 안으로는 내려야겠고.


        나는 종종 웃는 낯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곤 했다. 언제나 TPO를 어떻게 맞출지 몰라 쭈뼛거리는 내가, 그늘진 얼굴로 손사레 치며 호의어린 제안을 거부하는 내가, 웃을 때조차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함을 담아두는 내가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닌지, 미국드라마 "Crazy Ex Girlfriend"의 주인공 레베카가 Tell me I'm okay patrick을 부르는 마음으로 생각했다. 


Seriously, Patrick, was I sick the day in school they taught you how to be a normal person?
It just feels like there's something fundamental I'm missing out on.
Like, is there an instruction manual?

아니 정말요 패트릭, 내가 아파서 결석한 하필 그 날에 학교에서 어떻게 하면 멀쩡한 사람이 되는지 가르쳐줬던 거예요? 꼭 내가 빠뜨린 결정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무슨 매뉴얼 같은 거라도 있는 거예요?



           하지만 뭐,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같은 가정에서 났어도 나는 자매보다 유난히도 내성적이고 비밀이 많은 아이였지만, 그런 점까지 포함해서 다 차치하더라도 그냥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내가 나를 온전히 떠안고 가는데 무게가 없을 수 있나. 나는 살아가면서 남들은 대체로 받은 매뉴얼을 받지 못한 채 살았고 하지만 그런 대로 나름 잘 살아온 셈이고 그 대신에 얻은 것들도 상당하다. 매뉴얼이 없는 탓인지 나는 재미없는 사람이고 매뉴얼이 없는 탓인지 어른의 삶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지만 지금까진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 이대로 살아야겠다. 재미없으면 없는 대로, 어른이 뭔지 모르면 네이버와 구글에 열심히 두드려 검색해 보면서. 지금 당장은 그게 내 결론이다. 내가 무사히 매뉴얼을 습득하게 될 때까지 그게 티나지 않도록 애써보는 수밖에.


        이 포스트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회적응희망자의 취업 준비 글이다. 아직도 나는 내가 결국 로스쿨에 들어가서 내 20대의 3년을 우는 얼굴로 공부만 하며 보내게 될 것인지, 아니면 눈 딱 감고 원하는 교수님 아래 들어가서 문학 공부나 더 할 것인지, 알바조차 못 하게 하는 교수님 아래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딸 것인지, 포기한다 말했지만 아직 포기 신청은 해두지 않은 교직이수를 마치고 임용고시나 준비할 것인지, 적당히 아무데나 취업할 것인지, 그냥 모든 걸 놓고 출판사에 취직할 것인지 잘 모르겠다. 포스트를 써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고민에 그럴 듯한 답을 내릴 수 있게 되길 바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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