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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Mar 10. 2021

지금까지의 이야기

2020 하반기를 취업공백기로 흘려보낸 회고

    

지금 나는 모 대기업 자회사 전환형 인턴십 1차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중.

그렇다. 이 매거진에 첫 글을 적고 반 년만에 취준으로 마음을 반쯤 굳힌 상태다.



    인턴십에 지원서를 처음 넣은 건 1월 중순 무렵이니, 한 학기를 휴학한 것치고는 너무 늦은 시점이긴 하다. 그렇다고 그동안 딱히 무슨 자격증을 따 둔 건 아니고, 공부를 한 것도 아니다. 그러니 그동안 뭘 했느냐고 하면? 나도 모르겠다. 그냥 매일같이 근로장학 근무지에 출근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건물 열람실에서 사람들이 공부하는 걸 지켜봤고, 책을 잔뜩 빌려 읽었고, 브런치에 여행기를 정리해 올렸고, 심심하면 읽은 책들 중 마음에 드는 대목을 골라 노션에 정리해두었다. 맞아, 작년 여름부턴 폰게임에 빠져서 폰을 붙들고 살기도 했다.


    그렇게 대책 없이 살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취준이라는 게 무서웠다. 아직도 새내기 시절 정신머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매듭짓지 못한 것도 많고 해보지 못한 것도 많은데 이렇게 허무하게 대학생활을 끝내고 직장인의 세계로 끼어 들어가기 싫었다. 내가 아는 어른의 세계가 한정된 탓도 컸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몸과 정신이 갈리며 월급이 쥐꼬리만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갈려나가지만 그나마 월급이 전자의 세 배거나, 내가 아는 건 이 둘 중 하나였으니까. 후자를 택하기엔 내게 인내심이 부족했고 전자를 택하기엔 세상에 무서운 게 많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후자가 나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앞서 이 길을 택한 이들이 살아가는 지루하고 안정적인 정상성의 세계를 영영 내 삶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았다.


    코로나 이전의 언젠가, 아마 2019년 여름이었던 것 같다. 서울시청에서 열린 대학생 아르바이트 사전교육을 받으러 갔던 날일 텐데, 교육이 끝나고 시청 밖으로 나오니 마침 날씨가 좋아서 잠깐 산책을 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왠지 모르겠지만 그냥 가보고 싶었던) 조계사. 시청에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는데, 하필 중구와 종로구를 가로지르는 경로였던 데다가 시각도 평일 12시 반을 조금 넘긴 때라서 근처 빌딩에서 근무하는 사원들이 밥을 먹곤 길거리에 우르르 쏟아져 나와서 길을 빼곡하게 메우고, 여기저기서 담배를 피우고, 무리지어 몰려다니다가 조금이라도 기댈 수 있는 곳이 나오면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연신 홀짝이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점심 무렵의 대학 캠퍼스가 생각났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그리 좁은 편도 아닌데, 점심시간만 되면 (특히 인문캠의 모 광장은) 테이블이며 벤치며 테이블이 놓인 데크 층마다 테이크아웃한 점심과 커피를 싸들고 앉은 학생들로 끔찍하게 붐비곤 했다. 나 역시 그 인파 속 눈에 띄지 않는 한 명이 되어 샌드위치니 김밥이니 하는 것들을 거기서 순식간에 해치우고 공강 시간을 때울 곳을 찾아 헤매고 다녔는데. 그러니까 음, 캠퍼스의 그 비둘기떼가 졸업하면… 여기로 와서 종로 길바닥의 비둘기떼가 되는 거구나…… 그것도 성공적으로 취업했을 때에나… 이쪽의 비둘기떼가 될 수 있는 거구나…….


    이게 우리에게 가능한 최선의, 성공한 삶인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정말로, 누가 시켜준대도 취직하기 싫었다. (지금은 어디서 불러만 주시면 어이쿠 쇤네야 감사합죠 정도의 마음이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그럭저럭 성공한 중산층의 삶이라는 걸 생각해본다. 지방의 38평 아파트, 고층이라 엘리베이터는 자주 만원이고, 거실에는 카펫이 깔려있고 소파가 놓여져 있으며, 카펫 위론 아기 장난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출근하는 남편과 밥 차려주는 아내와 칭얼거리는 아이가 있는 삶. 절대 내 것으로 삼고 싶지도 않고, 원한다 한들 내 것으로 가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러기에 나는 너무 멀리까지 왔으며 이성애는 내 체질이 아닌 듯싶다).


    엄마도 한번 말씀하신 적 있다. 평생 내 진로에 관여하기는 커녕, 관심도 가진 적 없는 분이신데, 한번은 나를 앞에 두고 "너는 한국에서 회사 다니기는 힘들 텐데"라고 하셨다. 날 대체 뭘로 보고? 하는 생각도 잠시 들긴 했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긴 하다. 이쯤되면 그냥 내가 생존에 적합하지 못한 건 아닐까? 일단 적어도 한국사회에는 부적합한 개체라는 건 확실하다.





    여하튼 그러한 사유로 나는 직업인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지도 그런 마음이 상당히 남아있다. 취업과 관련된 정보들을 알아보고 싶지도 않았던 것은 당연했다. 거기에 내가 모르는 게 워낙 많다 보니까 어디서부터 알아보기 시작해야 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고, 어떤 자격증부터 준비해야 할 지도 몰랐으며, 안다 해도 그것을 공부하기도 싫었으니 시간을 흘려보내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 절실하지 않아서 그랬던 거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매일 퇴근해서 밤늦게 돌아온 언니오빠와 야식을 시켜먹고 술이나 마시면서 폰게임을 하다가 결국 새벽에 잠들어선 한두 시간 자고 7시 반까지 출근. 그런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피곤함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핑계가 되어 주고, 아무것도 안 하니까 더욱 잠에 들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고 만다.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허전하다. 그리하여 한 학기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낸 어느 날, 나는 새벽에 깨어 숙취로 쓰린 속에 물을 부어넣다가 궁금해졌다. 나 이렇게 쓰레기처럼 살아도 되나?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지?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한 시절을 함께 태평하게 산 다른 친구들이 하나 둘 진로를 찾아가는 것이 보였다. 모두들 어딘가의 인턴십에 지원서를 넣고 있었고, 직무교육을 받고 있었고, 어느새 공모전 수상내역과 자격증을 쌓아두고 있었고, 당장 취업에 뜻이 없는 사람들도 매일매일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CPA를 준비하거나 행시와 리트와 면접을 준비했다. 근무하는 건물 내 열람실은 언제나 사람들로 가득했고, 한 학기 동안 함께 근무한 같은 학번 여자애들도 다들 수료하고 졸업하면서 인턴 근무지로, 로스쿨로, 또 어딘가로 떠나게 되었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건 나뿐인 것 같았다.


    이전까지 나는 언제나 무리의 앞쪽에 위치한 사람이었다. 정보도 잘 찾았고 일도 빠르게 배우는 편이었고, 접착력 약한 포스트잇처럼 애살이 없어 무리에서 스르륵 떨어져나갈 뿐이지 주변 사람 중에서 가장 생활력이 좋았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독립해서 손 벌리지 않고 내 집, 내 영역을 마련해나가면서 남들보다 앞서나간다는 은근한 자부심도 가졌다. 주위 사람들이 철없게 보일 때가 많았고, 그들을 보며 딱히 뒤쳐지는 기분은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더이상은 아니다. 또다시 졸업시즌이 다가왔고, 졸업하는 동기들 옆에 서서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으면서도 나는 점점 더 초조해지기만 했다. 이제 세상물정을 모르는 건 내쪽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취업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그다지 신경쓰지 않던 나이도 압박감으로 느껴졌다. 벌써 나는 스물 다섯. 유럽에서라면 별 가치판단 없이 받아들였을 나이가 한국에선, "우리 뭘 했다고 벌써 20대 중반이야" "이제 조금있으면 서른" 어쩌고 하는 말들과 뒤섞여서 이미 한참 늦은 것처럼 느껴졌다. 무엇이든 한 번 선택하면 그쪽 테크에서 벗어나기 어려우니 돌이키기 어려울 것이 무서워서 모든 결정을 미뤄왔지만, 그런 생각으로 한 학기를 허비하고 나니… 이제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번 학기 걍 취업공백기 아닌가? 해놓은 게 없는데 이거 소명 어떻게 하지?


    차라리 내키지 않는 곳이든 중소기업 아무 직무든 무슨 인턴십이라도 했다면 "아 해봤는데 이 길이 제 길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네요" "사회생활을 배웠습니다" 하고 얼버무리기라도 될 텐데, 선택을 미루고 나니 수중엔 공백기밖에 남는 게 없었다.


    선택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나는 그냥 막연히 선택을 언제까지고 유예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은 그게 아니라 연애시뮬레이션 게임의 선지처럼 어떤 선택창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근데 심지어 게임처럼 리플레이를 할 수조차 없다. 그냥 그 선택창은 사라져있다. (너무 한국인적으로 좁은 사고방식인가요? 저도 그렇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해외생활 포기하고 한국에서 살아가기로 마음먹고 나니까 자꾸 이렇게 생각하게 됨...)

 



    이렇게 살다간 망하겠단 생각을 확실하게 하게 해준 건, 내가 일하는 열람실에서 마주친 수많은 빌런들이었다. 코로나가 처음 시작되었을 무렵, 학교 법학도서관에서 근무하던 나는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아마도 술에 취해서) 며칠이고 자꾸만 비틀거리며 찾아와서 자기가 학생증을 두고 왔다고, 자긴 여기 학생이라며 들여보내달라고 애원하는 젊은 여자를 보았고 (몇 번 확인해봤는데 실제 학생은 아니었다. 무엇이 저 사람을 그렇게까지 이곳에 집착하게 만든 걸까?) 최근에는 모 대학 로스쿨을 다니다가 자퇴를 했는지 아니면 변시에 5번 연속 광탈했는지 어쩐지 공시로 마음을 돌리고 모교 열람실로 돌아온 마흔두 살 남자가(어케 알았냐면 지 입으로 떠벌리고 다녔음) 피해의식으로 완전무장해선 마스크를 몇 개월 째 제대로 안 쓰다가 (본인 피셜 마스크 쓰라는 지적이 어린 학생들의 텃세라고 느껴졌다고 함) 결국 꾸준히 지적하던 근로장학생을 폭행한 사건이 있었는데…… 앗,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로스쿨이 문제였던 걸까? 여하튼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려니까 나도 저렇게 될까 무서워졌다.


    그러니까, 나는 잘났으니까 뭐든 어떻게든 될 거야, 하고 만만하게 아무 데나 달려들었는데 잘 풀리지 않아서 몇 년이고 붙들고 있다가 돌아보니까 나이는 많은데 특별한 스펙도 없고 받아주는 데는 없는 사람이 되어 있고, 그런데 막연히 가진 것으론 만족하지 못해 나날이 깎여나가는 자존감을 응시하는 사람. 응달에 고인 물처럼 흐를 곳 없이 조용히 망해있는 사람.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내린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어디였는지 어디서부터 고쳐야할지도 모르겠고 지나간 그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의 (미)선택이었으며 그것들 역시 어느 순간 자신의 일부가 되어있는 탓으로 지나간 일을 원망하고 저주하고 후회하는 동안 자신을 향한 혐오만 더욱 커져서 저주의 말 외에는 안이 텅 비어있는 사람. 실제론 조금만 고개를 돌려 보면 새로운 가능성이 무궁무진한데도, 남은 거라곤 자존심밖에 없어서 “그런” 일은 줘도 안 할 거라고 외면해 두고서 손 안에 쥔 단 하나의 선택지만 눈알 빠지도록 노려보는 사람. 자긴 무얼 해도 안 되는 사람이라고, 운조차 날 따라주지 않는다고 세상을 원망하고 증오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될까 봐.


    이 기형적인 한국 사회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으므로, 열람실에서 만난 수많은 또라이들은 나와는 먼 남의 얘기가 아니라 나도 저렇게 될까 봐 등골 오싹해지는 모습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근황 보고이니만큼 최근 몇 달 간의 일을 적어두어야겠다.






1. 작년 12월쯤 2주간 바짝 참여한 관광공사 주최 공모전에서 입상했다

이때는 결국 정신을 차리게 될 언젠가의 나에게 모든 일을 떠맡기고 책만 읽을 때인데, 고맙게도 친구가 먼저 제안해줬다. 처음엔 기한이 촉박해 망설였지만 역시 나는 뭐든 제대로 된 일을 해야 생활에 활력이 돈다. 밤 늦게까지 이것저것 하다가 아침 7시 반까지 출근하는 삶은 피곤했지만 프로젝트 자체는 즐거웠고 더 좋은 퀄리티를 충분히 낼 수 있음에도 시간이 부족해 건드리지 못한다는 게 아쉬웠다.


2. 1월 말쯤 아무 인턴십에나 지원서를 넣어보았다

직무도 잘 모르겠어서 일단 지원 가능한 직무, 대기업 및 중견 위주로 넣어보았다. 두 군데 넣었는데 둘 다 연락이 없었다. 그 중 다른 한 곳은 직원들의 미친 인싸력과 인권의제에 앞장서는 행보로 유명했던 모 코스메틱 브랜드 (지원 직후인가 전날인가 모 지점 성희롱 이슈 등등이 터졌음)


3. 2월 첫째 주, 오픽 점수를 땄다.

뜬금없이 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나중에 공부 더 하고 쳐야지~ 하고 미루다간 영영 안 치게 될 것 같았다. 시험 구성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일단 나흘 후 열리는 시험에 지원했고, 벼락치기를 해 갔지만 관심사 설정부터 질문까지 주르륵 다 지뢰밟아서 IH가 떴다. (메모) 다음 번엔 관심사 뭐뭐 있는지 꼭 알아보고 경험 하나씩 생각해 가기... 관심사(12개 이상 선택 필수)로 뭘 고를지도 생각해 가기...


4. 2월 중순엔 컴활 1급 필기를 땄다.

엑셀까지는 그래도 평소에 써 본 경험이 있어서 근무하면서 3일 정도 조금씩 공부해서 90/50/50 턱걸이로 붙었다. 예전에 ITQ 따놓은 건 의미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비슷한 내용을 공부했던 경험이 있으니 도움이 아예 안 되진 않았다. 이제 실기를 딸 차례인데, 각잡고 공부하기엔 면접 결과 기다리는 중이라 걸리는 게 많아서 잠시 보류 중. 시간 나는 대로 GAIQ와 검광마 1급도 따둘까 싶다 (그렇다고 퍼포먼스 마케팅 쪽으로 마음을 완전히 정했느냐 하면 그건 또 모르겠음... 협문 뼈문대생은 뭘 하며 살아야 하죠?)


5. 대기업 및 그 계열사 세 군데에 인턴을 넣어보았다.

그중 둘은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 곳이었다. 두 곳은 서류떨, 마지막에 넣은 한 곳은 평소 관심과 애정을 두루 갖추고 있던 산업인지라 덕심과 정성 어필로 서류합. 전환형 인턴인데 얼마 전 최종 면접을 말아먹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1차 면접 중에야 알게 된 건데 공고로 나온 업무 범위랑 실제 업무 범위(상대적으로 관심 없는 편)가 달라서 붙어도 애매하고, 면접을 워낙 말아먹어서 애초에 붙을 것 같지도 않음,, 






    아직도 나는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은 암만 생각해봐도 인생 망하는 루트밖에 없고, 나는 구식 인간이라 요즘 필수로 활용해야 한다는 영상매체보다 텍스트가 편하다. 취직 안 되는 거 뻔히 알면서도 대학원이 가고 싶을 만큼 문학을 좋아하고, 뭐든 두루두루 잘하는 편이지만 남들보다 뚜렷하게 내세울 만한 장점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까지 쓰다가 1차 면접 합격 소식을 들었다!


    합격해서 즐거운 마음과 또다시 2차 면접을 준비해야 해서 불안한 마음이 공존 중인데 일단은 춤 추고 싶은 쪽에 가깝다. 너무 애매한 곳에서 끊는 것 같지만 이제 면접준비를 해야 하니 나머지 이야기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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