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굿플레이스로 파리지앵은 배드플레이스로
새벽 4시 반, 캐리어 하나를 끌고 밤베르크의 중세 벽돌길을 덜덜거리며 걸어 밤베르크역에 도착했다. 할슈타트 여행일에 이어 유레일패스를 이용하는 두 번째 날이다. 유레일 앱에서 미리 검색해 둔 바로는 총 8시간 20분짜리 경로로, 뉘른베르크에서 환승해 프랑크푸르트까지 지역열차를 탄 후, 그곳에서부턴 미리 소정의 금액을 내고 자리 예약을 마친 프랑스 고속열차 떼제베TGV를 타고 파리까지 직행한다.
이틀 전 밤 늦게서야 할슈타트에서 돌아오고 전날 저녁엔 영문학 강의 수강자를 위한 영어실력 테스트를 치고 짐을 싸느라 고작 두어 시간 눈을 붙인 게 다였던 나는 기차 안에서 꾸벅꾸벅 졸다가 떼제베로 환승하고서야 그나마 정신을 차렸다. 아침으로 먹으려 챙겨둔 바나나를 꺼내 먹고 다시 잠들려 노력하는데, 독일 외곽의 한 역에서 스무 명 내외의 초등학생들이 내 앞자리에 우르르 탔다. 왁자지껄하게 떠들다가 큰 소리로 유행하는 팝송을 틀더니 따라부르기 시작한다. 다 모르겠고 일단... 잠자기는 글렀다. 다른 독일인이 와서 아이들에게 조용히 좀 하라고 몇 번 주의를 줬지만 어린 학생들은 굴하지 않고 시아의 샹들리에를 열창했다. 마지막에 가서는 무슨 로고송 같은 걸 흥얼거리기 시작하는데 가사가 이런 식이었다.
셍큐 포 트래블링 위스 도이체반~
Senk yu for traveling wis Deutsche Bahn
뭐지...? 이 무지막지한 독일 억양은? DB 홍보송인가...? 아따맘마 오프닝곡 ("안녕하세요 감사해요 잘있어요 다시 만나요") 수준으로 멜로디가 쉽고 중독성 있어서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나도 같은 가사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덧붙이자면 이 가사는 이후로 여행을 시작할 때면 꼬박꼬박 듣는 최애곡이 되었다. 제목은 정직하게 "Deutsche Bahn"으로, 애들 동요인지 CM송인진 모르겠는데, 일단 독일어 A1 수준도 안 되는 내가 알아들을 정도로 단어와 문법이 쉽고, 가사도 딱 도이체반의 고속열차 ICE를 타면 나오는 안내멘트로 구성되어 있어 재밌다. 한번 들으면 수능금지곡처럼 내내 흥얼거리게 된다. 덧붙여 왜 독일어로는 대중가요를 만들어선 안 되는지도 알 수 있다. 링크는 이쪽 https://youtu.be/BLkj7Xxc3Ko)
소음에 익숙해질 무렵 훤칠한 키의 백인 청년이 옆자리에 탔다. 타자마자 슬쩍 좌석의 휴지통을 열어보더니, 내가 먹은 바나나 껍질이 있는 걸 보고 안심한 얼굴로 자신의 바나나를 꺼내 먹었다. 일단 저 조심성을 봐서 유럽인은 아닌 게 분명했고 키와 반비례하는 소심함이 좀 웃겼다. 그가 옆에 걸어둔 가방에 성조기 와펜이 붙어있는 게 보였다. 미국인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랜덤재생으로 설정해놓은 애플뮤직이 이어폰으로 Melody Federer의 An American in Paris를 흘려보냈다. 아 진짜 타이밍이... 온 우주가 내게 저 자가 미국인임을 알려주고 싶어하는 건가 싶어서 (아니면 저 사람이 온몸으로 미국인 바이브를 뿜어내고 있어 세상이 화답하는 거거나) 대놓고 웃지 않으려 애썼다.
숙소로 잡은 곳은 파리 13구 아래쪽에 자리한 한인민박. 여행 중 한국인은 가능한 피하고 싶었지만 파리의 숙소는 비싸며 호스텔도 얼마 없고, 무엇보다 밤베르크 대학에서 같이 교환학생 생활을 하는 다른 한국인 및 러시아인 친구들이 먼저 그곳에 머물고 있어서 예약하게 되었다. 파리 동역Gare de l'Est에서 까르네Carnet 10개(*편도 1회 이용권, 10개 묶어 구매 시 약간 저렴함)을 구매해 곧장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다시 뛸르히 정원Jardin des Tuileries으로 향했다. 루브르 박물관 역에서 내려 정원을 쭉 통과해서 오랑주리 뮤지엄을 관람할 예정이었다. 정원은 따지고 보면 오스트리아의 정원처럼 화려하게 꾸며진 것도 아니었는데 곧게 뻗은 길을 따라 이어진 초록의 수목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비록 관광객들은 숨막히게 많았지만.
한창 주위를 둘러보며 걷고 있는데, 앞에 안절부절하며 지도를 들고 서성거리는 키 큰 백인 할아버지가 보였다. 딱 굿플레이스의 마이클 같은 비주얼에, 도움이 필요한 눈치였다. 어... 이런 데서 친절은 안 베푸는 게 낫다던데. 그냥 통과해야 하나, 소매치기 신종 수법 아닌가 고민하다 지나치려는데 하필 나를 붙들고 영어를 할 줄 아냐고 절박하게 물었다. 머뭇거리다가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잠깐 정신 팔면 목에 걸린 목걸이도 슬쩍해놓고 나한테 팔아먹을 파리이지만 그의 얼굴에서 jinjungsung이 느껴졌으므로. 나보고 샤틀레 역에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냐고 묻기에 열심히 구글 지도를 열어서 방향을 봐주고 있는데, 그가 불쑥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이요.
한국! 정말? 정말 한국이라고? 이렇게 반가울 데가! 나는 미국인인데 사실 나의 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자시거든!
??? 아어 예......
뭐라고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아버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나는 처음 말을 걸 때의 그가 너무 급해 보였었기에 얼른 길을 설명해주고 바이바이 하려고 하는데, 그는 대뜸 나를 붙잡고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사실 너한테 말을 걸고 싶었던 건 네가 남들과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너한테는 그런 바이브가 있어. ('...유럽의 도믿인가?') 다른 사람들은 관광객으로 온 게 훤히 보이지만 너는 유독 이곳의 공기와 공명하는 것 같구나. 너는 이곳을 즐기고, 이곳의 분위기를 즐기고 만끽하고 있어. 특히나 그 모자가 마음에 든다(뉘른베르크 리사이클샵에서 산 플로피햇을 쓰고 있었다), 그래 그 모자를 그렇게 살짝 올리니 더 낫네! (쏟아지는 칭찬폭격에 "너는 특별한 아이란다, 해리"를 듣는 기분이 되었다. 아니 근데 누구시냐고요...)
수다는 끝없이 이어졌다. 여기 지나치는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옷을 못 입는다 (그러는 본인은 빈말로도 어울린다곤 하기 어려운 헐렁한 청바지에 빨간 줄무늬 긴양말을 신고 있었다). 파리 사람들은 하나같이 멋지게 차려입었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을 봐라 아 그러고 보니 저기 오는 저 사람들은 한국인 같은데? 그렇지 않니? 저 사람들은 일본인! 저기는 중국인! 어떻게 구분하냐고? 나도 모르겠다 나한테 갑자기 왜 이런 능력이 생겼지? 잘 보면 한국 여자들은 하나같이 잘 꾸몄다. 저 머리카락을 봐 잔머리 하나 없이 완벽한 모양에 염색도 물이 예쁘게 들어있어. 대체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거지? (아니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좀전에 저한테 길 물어보지 않으셨어요? 그거 이젠 안 중요하신지...?)
이런 얘기들을 한 20분쯤 듣고 있었다. 뛸르히의 그 수많은 인파는 길에 멈춰선 우리를 보고는 수상해하면서 쓱 갈라져서 지나갔다. 내가 슬슬 눈치를 보며 나 이제 좀 가봐야겠다고 말할라 치면 갑자기 화제가 전환되어 어느새 맞장구를 치고 있게 되었다. 이러다 오랑주리 미술관 폐관할 때까지 수다를 듣는 거 아닌가 슬슬 걱정이 될 때쯤 멀리서 나를 향해 걸어오는 남녀가 보였다. 파리에 와있는 줄도 몰랐던 다른 밤베르크 교환학생들이었다. 그들을 발견하고 막 인사를 건네니 할아버지가 당황하며 내가 널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구나 미안하다 하곤 쌩 사라져 버렸다. 아아니 이게 뭐지 대체 뭐가 지나간 거지... 아니 왜 퇴장까지 이렇게 수상하지... 근데 사기나 소매치기 같은 건 전혀 아닌 것 같고, 그냥 혼자 여행하려니 외로웠던 건가. 그러고 보니 그렇게 오래 수다를 떨었(들었)는데 통성명조차 안 한 상태였다. 엄청 독특한 캐릭터였어서 그때 연락처를 주고받지 않은 게 뒤늦게 후회된다.
날 구원해준 친구들이랑은 서로 어디에 숙소를 잡았는지 정도만 확인하고 헤어졌다. 그러고서야 도착한 오랑주리 미술관은 다른 미술관에 비해 상당히 협소한 건물로, 총 3개의 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관은 모두 가로로 길고 거대한 모네 수련 연작을 벽에 두르고 있다. 관람객들은 각 관 한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서 천천히, 오래, 자세하게 각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철저하게 수련 연작에 바쳐진 미술관이다. 그리고 내가 파리에서 가장 사랑한 미술관이기도 하다. 입장료는 약 13유로 정도인 것 같은데, 나름 밤베르크 대학 소속인 나는 (*교환학생이든 뭐든 일단 EU 내 대학 학생증 소지자는 파리의 거의 모든 미술관을 프리패스 할 수 있다) 학생증을 꺼내 잠시 보여주고 바로 통과. 사람들은 바글거렸고 그림 앞에서 셀카를 찍는 사람들 때문에 감상이 방해받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들를 가치가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천천히 그림을 보다가 마그넷만 하나 사서 나오니 밖은 그리 어둡지 않지만 비가 내리고 있었다. 갑작스런 소나기를 피하러 몰려든 사람들과 더불어 로비에서 서성거리는데 거기서 처음 만난 듯한 중동계 여성과 프랑스인 할머니가 영어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식으로 만나서 저렇게까지 딥톡을 하기도 하는구나. 신기했다. 나와 조금 전의 할아버지처럼 일방적인 수다도 아니고. 예술에 관한 열정적인 교류. 멍하게 대화 소리를 들으며 파리가 조금 더 좋아졌다.
우산을 숙소에 두고 온 참이라 망설이다가 모자의 챙이 매우 길다는 점을 믿고 밖으로 나섰다. 다시 뛸르히 정원을 가로질러 걷는데,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북적거리던 정원이 텅 비어 있었고, 비를 흩뿌리는 구름 사이로는 햇빛이 비쳐 환했다. 빗줄기는 꽤 굵었지만 크고 두꺼운 플로피햇이 비를 완벽하게 막아주었다. 센 강으로 통하는 입구, 비가 그친 듯해 뒤돌아보니 커다란 무지개가 떠 있었다.
어쩌면 내가 평생 눈에 담을 경치 중 가장 아름다울지도 모르는 풍경.
이곳에서 나는 혼자라는 사실이 사무치게 좋았다.
공원을 한 바퀴 돌고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입이 닳도록 추천받은 마리아쥬 프레르Mariage Freres의 홍차를 사러 샤틀레역 북쪽으로 걸었다. 가는 길에 빈티지샵 몇 군데를 들렀지만 그다지 마음에 드는 옷은 보이지 않았고. 마리아쥬 프레르에서는 노엘Noel을 샀다. 살짝 사과향과 계피향이 나는 독특한 가향 홍차. 100g짜리 봉투를 가득 채웠는데 12유로 정도밖에 하지 않아 놀랐다. 한국에서는 카페에서 이 브랜드 차 한 잔에 8000원이고 찻잎만 사려 해도 몇 만원은 기본으로 드는데. 이후로는 발길 닿는 대로 걷는데, 파리는 어딜 보아도 아름답다 (비록 골목 구석에선 약에 취한 사람이 노상방뇨를 하고 있어도).
해질 무렵 생 루이 섬 인근으로 향하는데 아마도 기후 문제 관련 시위인지 청소년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현수막을 펼쳐들었으며, 마이크 없이 큰 소리로 사람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사람도 보였고, 누군가는 큰 카메라를 들고 그 현장을 기록하고 있었다 (전문 기자 같아 보이진 않았다). 길이 막혀서 섬까지 진입하지는 못해 미련을 버리고 빙 둘러 역으로 돌아갔다. 한인민박에서는 아침과 저녁을 제공한다고 하였으므로, 밥을 먹으려면 제때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민박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남자가 하이 콘니치와~ 하고 어설픈 일본어로 인사를 한다. 뭐지 미친놈인가 하고 피해서 반지하 출입문 안으로 들어가니 민박 주인 할머니가 맞아주었다. 할머니의 컨셉은 따뜻한 욕쟁이로, 막말을 마구 쏟아낸 끝에 내가 머문 첫날, 며칠째 머무르던 한 여자분을 울리기도 하셨다 (다음 날 다른 사람한테서 들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그날 지베흐니를 방문하고 비바람을 맞으며 돌아온 밤베르크의 친구들이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나는 그들의 방을 통과하면 나오는 옆방의 2층 침대를 사용했다.
수다를 좀 떨고 안부를 묻다가 할머니의 재촉에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건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숙소의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몇 명의 얼굴이 생각난다. 한 명은 스웨덴에서 교환학생 생활 중인 언니였고, 다른 한 명은 간호사였던가 포니테일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남자도 서넛 정도 있었다. 밤베르크의 친구들은 그날 지치기도 했고 한 명이 감기기운이 있어 참여하지 않았다. 술을 많이 마시진 않았고, 자정 언저리에 자리가 마무리되었는데, 교환학생 언니와 잠시 동네나 한 바퀴 돌까. 싶어 나가자마자 불 꺼진 차 안에서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두 명의 남자가 보여 길 끝에서 곧장 유턴해서 돌아왔다.
그러고도 술이 아쉬워 친구가 마시려 사둔 데스페라도스를 양도받아 한 캔 더 마셨던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어떻게 잠들었는지조차 기억이 흐릿하다.
이틀차에는 다함께 아침을 먹고 에펠탑을 보러 갔다. 이 날이 내가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카밀라 (동행한 러시아인 친구)가 빡쳤던 날인 것 같다. 카밀라는 미성년자 시절 한 무용단에서 직업 무용수로도 일한 적 있는 작고 선 고운 친구로, 밤베르크의 기숙사에선 내 옆 방을 쓴다 (처음에 내가 방에서 혼자 노래부르는 걸 들은 적 있다며 말을 걸었을 때 엄청 기겁했다). 나보다 나이는 두어 살 어렸던 것 같은데,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서 둘이 함께 여행을 할 때면 주로 내가 바보짓을 하고 카밀라가 그런 나를 꾹 참아주곤 했다.
카밀라는 처음부터 사람 하나 없는 아침 이른 시각에 가서 에펠탑을 배경으로 가볍게 춤을 추는 영상을 찍고 싶어했는데, 내가 늦잠 자고 씻고 화장하고 준비하느라 나가는 걸 자꾸 미루고 미루다가 이렇게 된 김에 아침까지 먹고 갈까, 했더니 화난 기색이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하긴 했다. 카밀라와 다닐 때면 꼭 미안한 일을 한둘씩 만들고 만다.) 결국 카밀라를 먼저 보낸 후 밥을 먹고 느긋하게 출발했더니 에펠탑 앞에 도착했을 땐 10시가 다 되어 있었고, 다행히 아직 사람이 얼마 없을 때 도착해서 원하는 대로 영상을 찍은 카밀라는 기분이 나아져 있었다.
평생 에펠탑이 예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보이는 조잡한 에펠탑 모양 기념품도 구리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앞에서 마주한 탑은 거대하고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친구들과 사진을 몇 장 찍다가 흩어져서 또 찍기 시작하는데, 카밀라가 전형적인 소매치기 수법 (한 사람이 설문조사를 핑계로 주의를 끌어놓고 다른 한 사람이 소지품을 슬쩍하는)에 당할 뻔해서 후다닥 가서 빼내오기도 했다.
그 후에는 다같이 오르세 미술관으로 향했다. 평일 점심 때라 한산한 거리를 걷는데 어깨가 아파 잠시 뒤로 맨 슬링백에 누군가 손을 넣는 것이 느껴져 몸을 흔들어 탁 쳐냈다. 뭐 하는 거냐고 묻자 남자 하나가 워워, 내가 뭘 했다고 그래, 하면서 두 손을 올리고 물러섰다. 그냥 길 가다가 틈이 보여서 시도한 게 다였는지 그의 옆엔 멀뚱하게 쳐다보는 그의 동행도 보였다. 개빡쳤지만 그가 연 가방 지퍼 틈으로 물건이 쏟아졌으므로 줍느라 바빠 그냥 보내야 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여행 중 적당한 크기의 슬링백을 매는 것이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유럽 여행은 가볍게 에코백 하나만 매고 돌아다녀야 한다. 싸매면 더 만만하게 보일 뿐. 틈을 보이는 순간 이미 털려있는 파리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오르세 미술관은 거대하다. 아직 점심을 먹지 않은 터라 후딱 보고 나올 생각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 아니야 배는 고프지만 견딜 수 있으니 30분만 더... 1시간만 더... 하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소장한 작품들도 하나같이 아름답다. 나는 철저하게 인상파 화풍만이 취향이므로 사실 크게 관심 없는 다른 작품들은 건너 뛰고 모네와 고흐 앞에서만 두 시간을 보내는 게 나았을 텐데, 한 점 한 점 빼놓지 않고 열심히 보다 보니 나와서 일행과 만나기로 한 시간을 20분 남겨두고 고흐는 코빼기도 못 본 채였다.
고흐의 자화상(들)과 "Starry Sky" 앞에는 역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서있다. 그냥 평면적인 스캔본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물감이 두텁게 발려 있다 보니 그 물성이 느껴지는 원본은 충격적일 정도로 좋다 (액자 유리를 두드려 부수고 꺼내 보고 싶을 정도로). 이제 이 자리를 떠나면 이런 경험은 다시 못 하겠지. 앞으로 보는 고흐는 이 질감이 사라진 매끈한 종이와 스크린뿐이겠지. 그때가 되면 더 오래 보고 더 많이 기억에 남기지 못한 게 아쉬울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 사이에 끼어 정말 늦었다 싶을 때까지 서성거렸다. 나오는 길에도 마음에 드는 작품을 여럿 봤는데 만족할 만큼 충분히 오래 보진 못했다.
미술관 기념품샵에서 엽서 몇 개와 Starry Sky를 표지로 한 작은 노트를 샀다. 여행을 다니는 동안 기차나 비행기에 멍하게 앉아있는 시간이 긴 만큼 일기나 쓸까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참, 오르세 미술관 역시 유럽 내 대학 학생증 소지자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점심은 근방의 카페에서 먹었다. 미술관 근처의 음식점은 비싸고 맛이 없을 게 뻔했지만 그래도 배가 고팠고, 일행이 두 명 늘어난 까닭에 (전날 뛸르히 공원에서 마주쳤던 두 명과 미술관 앞에서 합류했다) 의견을 모으기도 어려웠으므로. 음식은 파리 물가 및 입지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지만 대체로 맛이 없었다. 나는 좀 비싼 가격의 오믈렛과 커피 한 잔을 주문했는데 위치로 장사하는 곳답게 맛은 짜고 그저 그런 편이었던 것 같다. 일행이 주문한 브런치 메뉴들은 더 형편없었다. 점심을 먹고는 강변을 좀 걷고 싶은 마음에 일행과 헤어져 센 강변으로 향했다.
파리에 있는 내내 (전날 잠시 흩뿌린 비까지 포함해서) 날씨는 환상적이었다. 구름 몇 조각 깔린 하늘 아래 화창한 햇볕을 쬐며 강변을 걷고 있자니 행복이란 이런 거군, 하는 마음이 들었다. 다음 행선지는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강변 산책로가 끝나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노점상들이 상당한 퀄리티의 기념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오래된 음반과 고서적도 있다. 하나같이 질이 좋고, 상당수가 겹치는 품목이긴 하지만 모두 아름답다. 독일어권 도시(혹은 한국)를 여행할 때 발견하는 절망적인 감각의 기념품과는 차원이 다르다. 마그넷 몇 개와 빈티지 쿠키트레이를 샀다.
화재를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가 온통 봉쇄된 노트르담을 센 강을 사이에 두고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출입을 통제하는 판막 사이로, 난간 위로 올라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아름다운 쌍둥이 종탑을 눈에 담으려 애쓰고 있었다 (물론 그보다는 어떻게든 이 종탑을 배경으로 셀피를 찍으려 애썼다는 편이 더 정확할 테지만).
노천카페 몇 개를 지나 대로 안쪽으로 들어오니 관광객이 우르르 몰린 서점이 보인다. 앞에는 염가에 내놓은 중고서적 매대가 있고, 귀여운 엽서 몇 장. 서점 안쪽은 촬영 금지라고 한다. 하긴 좁은 서점 안에서 이만한 관광객들이 하나같이 셀피나 기념 사진을 찍고 있었다간 책 사는 손님들이 다 달아나겠다. 내가 머무는 동안에도 한 무리의 관광객이 서점 입구에서 (정확히 말하자면 서점에 들어오자마자) 기념사진을 찍으려다가 제지당하기도 했다.
서점에 들어서면 정면에 놓인 쿠션 위에 서점 마스코트인 고양이 한 마리가 지루한 듯 드러누워있다. 간만에 고양이를 좀 쓰다듬어 보고 싶었는데 옆을 보니 "Aggie는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아요 :( 건드리지 마세요" 라고 적혀 있었다 (고양이 이름은 까먹어서 이 글을 쓰다 서치해 찾았다). 서가 배치는 지금쯤 달라졌겠지만, 왼쪽 입구로 들어서면 왼편에는 스콧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 등 재즈시대 작가들의 책들이, 조금 더 들어가면 현대문학서들이 나왔다. 그 부근에 한글이 보인다 싶더니 눈에 띄는 곳에 "흰"을 비롯한 한강의 책 몇 권이 진열되어 있었다.
SF서적과 페미니즘서가 또 한 켠씩 자리를 차지했던 것 같고, 인문학 교양서들도 따로 자리가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계단 두어 개를 올라 따로 딸린 방 안에 시집 코너가 있다. "Women of Resistance"라고, 첫 시부터 마음에 드는 페미니스트 시집을 발견해 살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도로 놓아두었다. 서점 이름에 걸맞게 셰익스피어 전집도 여러 버전으로 잔뜩 있다. 방안에 깔린 음악까지 사랑스러웠다. 1층을 더 구경하고 있으려니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직원에게 전공 관련 서적 하나를 문의하는 모습이 보였다. 직원은 친절한 말투로 한 권이라도 주문하면 오더를 넣겠다며, 예상 비용과 소요 기간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한 층을 더 올라가면 희귀 고서적이 서가 가득 벽면을 메우고 있다. 하나같이 50년은 묵은 듯 낡은 티가 나는 어두운 가죽표지의 양장본이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여러 유명 작가가 숙식하기도 했다는 간이 침대 (침대보단 탁상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헤밍웨이가 여길 썼다는 얘길 봤던 것 같다. 아마도 실비아 비치의 서점에서 가져온 거겠지)가 구석에 놓여 있고, 그 근처의 거울에는 포스트잇에 메모를 적어 붙일 수 있게 되어 있다. 한국어로 누구와 누구 언제 왔다 감~ 따위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뭐라도 써서 붙일까 하다가,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쪽팔린 말을 써서 펜이 놓인 통 뒤에 슬쩍 놓아두고 왔다.
이 서점에서 판매하는 에코백을 사는 것이 한국인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인 것 같은데, 직원이 어린 동양인 관광객에게 기대할 법한 행위에 부응해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이런 생각을 왜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근데 나한테 친절한 직원들한테조차 왠지 얕보이고 싶진 않아 눈치 보게 되는 이 맘이 뭔지 아시려나요) 일부러 눈길도 주지 않고서 중고로 나온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페이퍼백을 구매했다. 직원은 계산하며 예쁜 스탬프를 찍고(찍기 전에 미리 물어봐준다) 서점의 고양이 사진이 프린트된 책갈피를 끼워주었다. 이 책은 이후 여행 가는 곳마다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 들고 다녔지만 정작 여행 중엔 다음 행선지를 폰으로 검색하느라 바빠 독일에 머무는 내내 30페이지도 채 안 읽었다.
서점 옆에는 마찬가지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하나 있다. 점심을 먹은 후인데도 단 게 땡겨 치즈케익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을 사서 자리에 앉았다. 뭘 했는지 잘은 기억 안 나는데, 산 책을 조금 읽었던가 폰으로 이 다음엔 어디에 갈지 검색을 해봤던가 그랬던 것 같다. 커피 트레이에는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이 잔뜩 적힌 종이가 깔려 나왔다. 200n년, 201n년에 '커뮤'를 뛰던 블로거들 사이에 돌던 n제나 ㅇㅇ문답 같은 느낌인데, 대부분의 질문이 독서인으로서의 인생에 관련된 것이다. 이것 역시 여행 중 한번쯤 심심할 때 써봐야지, 하고 노트에 넣고 다녔는데 정작 써먹은 건 1년이 지나 친구네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였다.
카페를 나와서는 새로 산 고흐 노트에 어울리는 펜을 하나 사려고 생 루이 섬으로 향했다. 투르넬 다리를 가로지르면 나오는 골목은 우아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느낌이 있다. 블로그에서 본 "Papeterie Marie-Tournelle"라는 이름의 문구점 안에 들어갔다. 기대했던 귀여운 소품 같은 것은 거의 없고, 대개 한국에서도 충분히 살 수 있을 법한 문구용품과 몽블랑 수첩 같은 것들만 몇 개 있다. 5유로짜리(겁나 비싸) 0.5mm 잉크펜을 하나 샀다.
그대로 강을 건너 해가 질 때까지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빅토르 위고의 생가에 가고 싶었지만 임시휴무길래, 그냥 해가 질 때까지 멍하게 보주 광장에 앉아 있었다. 독일어권에 벤치가 많지 않은 이유가 거기선 잔디에 아무렇게나 앉아도 되고 프랑스에선 잔디 위에 앉는 것이 불법이라 그렇다곤 하지만, 길 가다 보이는 풀 위에 아무렇게나 앉기엔 지나치게 남들 시선이 의식되는 나 같은 한국인은 역시 독일보다는 걷는 길마다 벤치가 보이는 파리가 더 편하다. 특히나 평발 소유자의 뚜벅이 여행인 만큼.
기운을 차리고 바스티유 광장에 들렀다. 공사 중이라 그런지 별 것 없다. 운하는 폭이 좁고 보트가 양옆을 빽빽하게 메우고 있어 아름답지 않다. 뭘 할까 고민하는데 낮에 헤어진 친구들이 에펠탑 야경을 보러 만나자고 한다. 좋아. 일단 지하철을 타야지.
파리의 지하철은 어둡고 더럽고 시끄럽다. 무임승차를 개인의 양심(과 드물게 있는 불시검문)에 맡기는 독일과 달리, 파리는 한국에서처럼 카드나 표를 들이대야 열리는 개찰구를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임승차를 안 하는 건 아니라서, 가끔 까르네를 개찰구 입구에 넣고 있으면 옆에서 어떤 사람이 낮고 정중한 목소리로 양해를 구하는가 싶더니 내가 들어가는 개찰구에 낑겨서 순식간에 통과해버린다. 노련한 프로의 솜씨다. 이런 일은 특히 체구가 작은 관광객인 내게는 15% 확률로 발생하는 반복 이벤트.
지하철 내 소매치기도 많은데, 대표적으로는 떼로 몰려들어 체구 작은 관광객을 가두고 정신없는 사이에 소지품을 슬쩍하는 고전적 수법, 역에 도착한 지하철 문이 닫히기 직전 관광객이 손에 든 휴대폰을 낚아채 하차해버리는 비교적 최신 수법이 있다고 한다. 파리 여행 4일차에 만난, 소르본 대학 법대에 재학 중인 파리지앵 한 명은 누가봐도 현지인인 세련된 백인임에도(=어수룩한 관광객처럼 보이지 않음에도)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강탈당한 적 있어 스트랩을 목에 꼭 걸고 다닌다. 물론 그의 친구들은 늘 파리에 관광 왔냐며 놀린다고 한다.
지하철 내에는 접이식 의자가 상당히 많다. 사람이 적을 때 펼쳐 앉아있다가 사람이 밀려들면 접어서 서야 하는 식이다. 피곤한 나머지 안쪽의 마주보는 좌석에 앉아 멍때리고 있었더니 앞칸에 앉은 대머리 백인 아저씨가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한다 (플러팅이 아니라 그냥 장난을 치는 느낌이었다). 이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닮았다. 내가 고개를 갸웃했더니 이번엔 눈을 점점 크게 뜨면서 얼굴로 장난을 친다. 픽 웃으면서 손에 든 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아쉬운 눈치다.
에펠탑 인근의 역에서 내려 연락하니 친구들은 샤요궁 쪽에 있다고 한다. 에펠탑을 사이에 두고 나는 센 강의 남쪽, 레프트뱅크left bank에, 샤요궁은 라이트뱅크에 있으니 어쩔 수 없이 또 걸어야 한다. 바로 아래를 지나치며 올려보는 에펠탑 역시 과하지 않은 조명 덕에 아름답다. 어지간한 불빛은 번져버리는 아이폰 카메라로도 깔끔하고 아름답게 화면에 담긴다. 파리 거의 전역이 그렇긴 하지만, 에펠탑 근방엔 유독 길에 돗자리와 싸구려 기념품을 깔아놓고 호객하는 상인들이 많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열성적으로 판매(강매)를 시도한다.
이에나 다리 위에는 불빛이 반짝거리는 공을 공중으로 쏘아올렸다가 받는 사람 (서유럽-남부유럽 도시 시내마다 목격 가능), 인력거 따위의 운송수단으로 행인을 유혹하는 사람, 장미꽃을 잔뜩 들고다니는 상인이 많다. 길 가는 사람한테 멋대로 꽃을 선물해놓고서 막상 받으면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하거나 (가끔은 양심 있게 1-2유로만 요구)하는 상인도 많다고 하니 주의. (사실 파리 특정 장소 이름만 하나씩 검색해 봐도 장소별 특색있는 사기/강탈 수법을 공부할 수 있다.) 에펠탑 야경을 보러 온 사람들로 길은 한없이 북적거린다.
샤요궁의 긴 분수를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넓게 트인 장소가 나온다. 한쪽 구석에선 누군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한가운데선 아름다운 남녀가 탱고를 추며,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버스킹하는 사람이 보인다. 난간을 뒤로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친구들과 합류해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며 한참을 앉아있다가, 배가 고파져 저녁을 먹으러 먼저 민박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도 아름다운 야경과 거리를 뒤덮은 행인들이 발산하는 들뜬 에너지가 느껴져 발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민박집에 도착해 보니, 저녁을 먹는 사람으로는 내가 마지막이다. 사장님이 챙겨주시는 밥을 우물거리고 있으니 옆에서 와인 몇 병을 든 사람들이 테이블에 둘러 앉는다. 술판을 벌이려는데, 나한테도 함께하겠냐고 물으시기에 반갑게 합류했다. 술도 마음껏 마시라 한다. 아싸. 와인을 쟁여온 남자 두 분은 회사 일을 때려치우고 여행하는 중이시라고. 한 10년지기 바이브길래 이전부터 알고 지낸 사인가 하니, 그것도 아니고 여행 중에 만났댔나, 여행 직전에 만났댔나. 입술이 얇고 단정해 장그래를 떠올리게 하는 남자분 한 분, 누가 봐도 배낭여행 중인 30대 초반의 키 큰 여자분 한 분, 어리고 까불거리는 남자분 한 분, 또 전날 만난 스웨덴 교환학생 언니에 몇 명이 더.
초장부터 엄청나게 달리는 분위기다. 특히 비싼 와인을 사온 남자분이 분위기를 주도하며 쉴 새 없이 짠!을 외친다. 옆에서 사장님이 "프랑스인들이 니네 그렇게 와인 섞어 마시는 거 보면 기겁할걸. 걔네들은 백포도주 마시면 그것만 마시고 적포도주 마시면 또 그것만 마셔" 정도의 말을 욕설을 섞어 이야기했지만 자기가 왕년에 양주 한 병을 혼자 해치우던 사람이라며 허세를 부리는 남자는 끝까지 아랑곳 않는다. 쉴 새 없이 담배를 피우러 들락날락 하는 와중에, 나는 키 큰 언니에게 담배를 빌려주며 조금 친해졌다. 사장님도 옆에서 몇 마디 거들며 대화에 끼는데, 한 명씩 평을 하다가 나더러는 처음에 내가 어디 호텔 매니저라도 하고 온 건가, 싶었다고 이야기하신다. 사뿐사뿐 움직이는 태나 대화할 때 입 속의 혀마냥 사근사근하게 구는 게 꼭 그런 느낌이라고. (사실 평소에는 혼자 쿵쾅거리면서 다니지만 오기 전에 사장님이 욕쟁이 할머니라는 평을 듣고 욕 안 먹으려 애썼던 거였는데, 노력이 빛을 발했던 모양이다.)
같은 숙소를 쓰는 밤베르크의 친구들은 술판 중에 들어왔는데, 피곤한지 바로 올라간다. 조금 뒤에 인사불성으로 취한 와인남 둘도 올라가는데, 갑자기 위에서 우웩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화끈하게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조금 뒤엔 토사물 악취가 계단을 타고 내려와 퍼진다. 장그래 닮은 분이 당황하며 올라갔다가 그 토사물을 다 치우셨다. 사장님은 저거저거 저렇게 될 줄 알았다며 그러게 대체 누가 저렇게 와인을 무식하게 마시냐고 몇 마디 얹으신다. (=허세남의 말로) 키 큰 언니는 내일 일정을 위해 먼저 올라간다.
남은 사람들끼리 술이 떨어질 때까지 마시다가, 잠들기 전 잠깐 네댓 명이 바람도 쐴 겸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무리 지으니 확실히 한밤중의 거리도 전날만큼 무섭지 않다. 쳐다보는 사람도 없다. 그날 밤도 그런 식으로 대충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