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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Oct 22. 2020

사랑해, 파리

파리는 굿플레이스로 파리지앵은 배드플레이스로

산책로 위에서 바라본 풍경


    19년 10월 11일, 파리 여행 3일차. 밤베르크의 친구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몽생미셸로 떠나고, 나는 아침식사를 먹으러 느지막이 내려갔다가 11구의 쿨레 베르트 산책로(Coulée verte René-Dumont)로 향했다. 날은 흐리지만 가을에 막 접어든 파리는 여전히 아름답다. 산책길은 서울로2017처럼 버려진 선로를 따라 조성된 길로, 고개를 돌리면 옆으로는 숲처럼 우거진 오래된 아파트단지가 보인다. 흐린 날씨에 두 여성분이 드레스를 입고 길 가운데서 웨딩사진을 찍고 있다. 옆에 선 친구들은 컨페티를 뿌려준다. 너무너무, 모든 게 사랑스럽고 아름다워.


몬드리안, 빨강, 노랑, 파랑, 검정이 있는 구성 / 나는 종교화의 극혐하는 표정이 좋더라


    산책길에서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16구, 파리 서쪽 구석에 위치한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으로 향한다. 거대한 2층 저택을 개조한 미술관은 사설이라 학생증이 통하지 않고, 입장료를 고스란히 내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도 2유로쯤 학생 할인은 해줬던 것 같다. 1층에는 중세 종교화가 여럿 있고, 2층으로 올라가자 근현대 작품이 나왔던 것 같다. 내가 중세화에 관심이 없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하나같이 퀄리티 높고 근사한 작품들이다. 2층 구석이었던가, 지하에는 몬드리안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잘 알려진 추상화를 그리기 이전에 그가 어떤 시도를 해왔으며, 그를 가장 가까이서 후원해준 사람(이름은 까먹음,,)이 그의 창작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몬드리안 하면 유명한 추상화 몇 점밖에 몰랐던 나에겐 특히 유익한 전시다. 그의 대표작도 늘 매끄러운 타일 같다고 생각해왔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붓칠한 자국과 종이의 질감이 선명하게 느껴져서 신기했다.


모네의 작품들


    오랑주리 미술관에 걸린 수련 연작이 거대한 만큼 더 깊고 고요한 느낌이었다면, 이곳에 걸린 모네의 소품들은 사랑스럽고 활기차다. 가끔은 시끄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지베흐니의 정원 풍경이 끝없이 같은 구도로 반복되는데, 계절에 따라 색감이 조금씩 변주되어 단조롭지 않다. 가끔은 추상화에 가까울 만큼 붓터치가 과감하다. 인상파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으로 유명한 '해돋이'도 이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지치기 전에 감상을 끝내고 다시 파리 시내를 향해 걷는다. 점심은 중간에 마주친 맥도날드에서 대충 때운다. 한국에서는 보지 못했던 메뉴가 많은 것 같은데, 그래도 키오스크 구석에서 피쉬버거를 봤다고 생각한 건 착각일지도 모른다.


가운데는 빠시 공원, 오른쪽이 낮의 샤요궁에서 바라본 에펠탑 전경. 왼쪽은 그냥 길 가다 찍음.


여행 중엔 1일 1케익을 목표로 세운다

    빠시Parcy 공원을 가로지르며 차츰 지대가 낮아진다. 센 강을 따라 걷다가 어제 들른 샤요궁으로 향한다. 전날 저녁에 어둠 속에서 탱고를 추던 남녀가 여전히 춤을 추고 있다. 한낮의 에펠탑을 배경으로 몸을 맞붙인 두 사람은 어째 지치지도 않나 싶다. 하지만 역시 철저하게 계산된 구도마저 너무 낭만적이야. 샤요궁에서 개선문 방향으로 걷다 보니 동네 베이커리가 보인다. 구글맵에서 검색해 봤을 땐 평이 상당히 좋다. 카페인 충전 겸 커피 한 잔에 초콜릿 무스 케익을 주문해 느긋하게 먹는다. 케이크도 5유로였던가 6유로 정도밖에 하지 않는데, 초콜릿은 부드럽고, 안은 밀도 높은 무스로 가득 차있다. 야외 테이블에 앉았더니 바람이 꽤 차서 새삼 가을이라는 게 느껴진다.



거대한 개선문. 내가 갔을 땐 무슨 국방부 행사 중이라 구경하는 사람도 경호인력도 많았다


    개선문은 나같은 한낱 관광객에겐 과분할 정도로 아름답다. 파리의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이름과 생김새만 대충 눈에 익어 별 감흥 없으리라 생각한 모든 것들이 예상을 뛰어넘어 장대하고 섬세하다. 독일의 투박한 중세마을보다는 프랑스의 유려한 선이 훨씬 내 취향이란 걸 파리에 와서야 알았다. 전에는 프랑스에 전혀 관심 없었는데, 파리에 있다 보면 절로 불어를 배우고 싶어진다.


    별 감흥 없는 샹젤리제 거리는 굳이 오 샹젤리제Aux Champs-Elysees를 검색해 들으며 지나친다. 저물어가는 하늘 아래의 그랑 팔레와 쁘띠 팔레도 눈부시게 예쁘지만, 저녁놀 아래 에펠탑만큼은 아니다. 알렉산드르 3세 다리 옆, 강변 가로등 불빛이 반사되어 센 강은 고흐의 그림처럼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어 간다. 해가 완전히 저물고 나면 수면 위는 황금빛으로 반짝거린다. 흐린 구름 뒤로 가려진 달마저 붓질한 듯 번져 꼭 한 폭의 그림 속에 서 있는 것 같다.


한폭의 유화 같은 센 강의 풍경. 보정 하나 없이 실물 그대로인 사진.


    홀린 듯 사진을 찍고 있는데, 옆에 서 있던 인도계 부부가 말을 건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Photo" 한 마디만 듣고 두 분을 찍어 달라는 건가 했는데, 알고 보니 나를 찍어주겠다는 소리였다. 황급히 이어폰 줄을 빼고 폰을 건넸더니 웃는 얼굴로 몇 장 찍어주신다. 만족하지 못하셨는지 다시 포즈를 잡으라 하고는 또 찍고. 감사하다고 말하자 흐뭇한 얼굴로 좋은 저녁 보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구나, 나는 그렇게 사진을 찍어주고 싶을 만큼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구나. 돌아와 찍힌 사진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그때 세상이 가슴 뻐근해지도록 예뻐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이런 황홀한 광경을, 기분을, 다시 보고 느낄 수 있을까. 그렇게 오래 살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날 밤도 역시 술판이다. 그렇게 될 줄 알고 들어가는 길에 맥주를 여러 캔 사 갔는데, 그마저도 부족해서 키 큰 언니가 사장님께 부탁해 마트에서 스무 캔을 더 사와야 했다. 미대에 다녔던 걸로 기억하는, 사장님의 따님도 잠시 와 계신다. 불어 억양이 섞인 그의 서툰 한국어는 느리고, 툭툭 끊어지며, 일견 어눌하게도 느껴지지만 하는 말은 하나같이 가차없다. 한국 사람들 왜 그래. 프랑스는 아니야. 여기선 다 자. 쟤랑 섹스하고 쟤랑도 섹스해. 그래야 재밌어. 내가 파리에서 가볼 만한 곳을 알려달라고 하자 마찬가지로, 여긴 재미 없어. 저긴 interessant. 좀 재밌는 곳이야. 느긋한 평가가 이어진다.


    독특한 것에 관심이 많은지 수정 펜듈럼을 꺼내들고는 점을 봐주겠다고 한다. 나는 전혀 못 믿겠지만 펜듈럼을 잡고 움직이는 사람의 무의식적인 손의 움직임, 파장 같은 것이 관여해서 크리스탈이 회전하는 방향을 바꾸며, 그를 통해 과거, 현재, 미래(처럼 느껴지는 내 안의 무의식 및 속내)를 읽어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내 손을 붙잡고 속으로 무언가를 질문하게 하며 수정을 회전시키는데, 암만 생각해도 시계방향 회전과 반시계방향 회전이 필연적으로 어떤 의미를 나타내리란 믿음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것 말고도 다른 점술 비슷한 것들을 들이대는 통에 거절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 분은 한국에 있었더라면 사주 되게 좋아했겠지.


    술자리 내내 사장님이 키 큰 언니의 신상을 캐내려 하지만 언니는 웃음으로 얼버무린다. 나 역시 교환학생이라고 밝히자마자 사람들은 내가 다니는 대학이 어딘지 캐내려 한다. 서울대? 연대? 고려대? 서성한중경외시...까지 읊다가 내가 끝끝내 대답하지 않겠단 말로 일관하자 "뭐, 이중에 없었으면 물어도 의미 없지" 따위의 말을 한다. 그런 무례한 말을 한 사람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차 딜러로 일하고 있다는, 수입이 2000만원인가 어쩌고 하는 스무 살의 나보다 어린 남자 (그렇다, 첫날 숙소에 들어올 때 나에게 콘니치와 라고 인사한 그 미친놈이다). 순간 이 새끼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이런 말 듣고 (비단 대학 서열화가 짜증나서만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울컥하는 나도 추하다. 나도 그렇고,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대학에 연연할까.


    키 큰 언니는 다음 날 일찍 떠난다고 한다. 술을 함께 마신 이틀 내내 내 담배를 빌려줬었는데, 남은 여정을 응원하며 남은 담배 반 갑과 라이터를 쥐여줬다. 자리는 새벽 한두 시쯤 파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한진 모르겠다. 사장님이 이웃들한테 민폐니 앞뜰에선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했는데 취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며 끝없이 떠들던 것만 기억에 남는다.






팡테옹으로 향하는 길목과 장 자크 루소(와 비둘기)

    파리 여행 4일차. 느긋하게 일어나 아침을 먹는다. 첫 행선지는 전날 사장님의 따님으로부터 "interessant"하다고 추천 받은 Rue Mouffetard (불어를 못해서 정확히 어떤 발음으로 읽는진 잘 모르겠다). 날은 전날보다 더 흐리지만 거리는 활기차다. 좁은 길 좌우로 매대가 길게 늘어서 있고 길거리 음식과 빈티지 옷을 파는 곳이 많다. 2유로짜리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파는 곳을 만나 숙취 해소 겸 한 손에 사들고 걷는다. 쭉 걷다 보면 팡테옹Pantheon이 보인다.

뤽상부르 공원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루소의 석상이 한 손에 책을 들고 서 있다. 비둘기 한 마리가 주위를 어슬렁거리다 낼름 루소 어깨 위로 올라탄다. 눈가가 움푹 패인 루소는 암만 봐도 험상궂은 인상인데 비둘기는 아랑곳 않는다. 주위에서 환호성 소리가 들려서 보니, 파리 제5구청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나오는 부부가 보인다. 멀리서 보기에도 행복한 얼굴. 관람료가 있었던가, 비쌌던가 해서 팡테옹 관람은 포기한다. 뤽상부르 공원에 들어가서 한 바퀴 도는데, 날만 밝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야자수가 심어지고 화려한 빛깔의 꽃이 만발한 공원은 예쁜데, 관광객이 하도 많아 (나 역시 그중 하나지만) 절로 바깥으로 돌아가게 된다.


    북쪽으로 나와 걷다 보면 생제르맹 거리에 빈티지 의류 체인점인 킬로샵이 있다. 지하 3층까지인가, 있는데 옷에 달린 태그 색깔별로 무게를 달아 가격을 매기는 시스템이다. 딱히 뭘 살 생각은 없었는데, 너무 마음에 드는 외투가 있어 26유로를 주고 구매해버렸다. 진갈색에 큼직한 연갈색 카라가 붙어 있고 나무단추가 달려서, 입으면 꼭 밤톨처럼 보이는 귀여운 가디건이다. 이미 계절은 점점 추워져서 이렇게 얇은 옷은 필요 없는데. 돌아갈 때 짐만 될 게 뻔한데 나는 유니크한 디자인만 보면 (특히 그게 빈티지샵 안이면) 눈이 돌아가 버린다. 심지어 이건 엄청 싼 것도 아닌데.


그냥 적당히 맛있었다

    조금 더 걷다가 근처의 카페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크루아상과 에클레어, 커피 한 잔을 점심으로 먹는다. 옆테이블의 남자가 나를 위해 의자를 빼주었는데, 감사하다고 말한다는 게 메흐씨Merci가 아니라 독일어로 당케Danke를 읊조려버렸다. 조금 창피했는데 남자는 웃는 얼굴로 그냥 넘어간다.


    독일에서 가게에 들어설 땐 할로Hallo, 또는 구텐탁, 하고 인사를 건네고 계산을 마칠 땐 당케Danke, 헤어질 땐 츄스Tchuss를 외친다. 프랑스에서도 인사말만 조금씩 변주될 뿐 똑같다. 사람을 마주할 땐 봉쥬흐Bonjour, 고마움을 표시할 땐 메흐씨Merci, 인파를 헤치고 나갈 때나 기타등등 양해를 구할 땐 빠동Pardon. 습관이 애매하게 배면 헷갈리는 일도 잦다. 더군다나 회화를 시도할 만큼 독일어나 불어를 잘 하지도 못하는 나는 인사말만 현지어를 쓸 뿐, 모든 용무는 영어로 해결하니 더더욱 혼란스럽다. 그래서 인사는 의식적으로 봉쥬흐라고 해놓고서 대화는 영어로, 헤어질 땐 습관적으로 당케를 외치는 0개국어자가 되기도 한다.


    오후엔 카우치서핑(*여행자와 로컬을 이어주는 앱 겸 커뮤니티. 본래 무료지만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경영난을 겪느라 한시적으로 유료화되어 있다)을 통해 연락을 주고 받은 파리지앵 Eva와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뮌헨에서 만난 독일인 Eva와 동명이인이다). 카우치서핑에 가입해서 프로필이야 올려놓고 여행계획도 꼬박꼬박 포스팅하지만 굳이 누굴 만날 생각은 없었는데, Eva와는 카우치서핑에서 연락을 퍼붓는 수많은 크리피한 중년 백남에 대해 채팅으로 불평하다가 마음이 맞아 약속을 잡았다. 키가 크고 짧은 흰색 패딩에 스키니한 청바지를 입은 프랑스-독일 이중국적자 Eva는 누가 봐도 완벽한 파리지앵이다. 심지어 소르본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다고 하니 무슨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다.


띌르히 공원의 젤라또

    Eva는 우선 내가 첫날 들렀던 띌르히 정원으로 나를 안내한다. 깊숙히 들어가자 나오는 정원 한복판 젤라또 가게는 줄이 7미터는 족히 서 있는데, 무시하고 가게 옆문으로 향한다. Eva의 대학 친구가 여기서 학비를 벌려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데, 과연 에바! 하고 큰 소리로 환영하고는 우리를 위해 각각 두 가지 맛을 얹은 젤라또를 만들어준다 (독일어로는 [e:fa]에 가까운 발음이지만 이 이름의 소유자들은 대개 자길 어떤 식으로 부르든 신경쓰지 않더라. 이 이름만 영문으로 표기하는 것도 발음을 한국어로 적기 어려워서다). 바로 옆에서 한참을 기다리는 관광객을 보고 있으니 양심이 콕콕 찔리지만 젤라또는 죄가 없다. 위에 마카롱까지 하나 얹힌 젤라또는 과연 20분쯤 줄을 설 만한 맛이다.


    팔레 루아얄Palais-Royal을 한 바퀴 돌다가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Eva는 역시나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 이전에도 한국으로 한두 차례 여행을 가서 카우치서핑으로 만난 사람들 집에 머물기도 했다나. 보여주는 사진을 보니 삼겹살에 쭈꾸미에 조개구이도 먹고 홍대에 이태원에 한강에 감천문화마을에, 정말 서울 부산 곳곳을 다 다녔다. 그래도 K-POP에 관심은 없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인지 아니면 K-POP에 회의적인 티를 팍팍 내는 내 앞에서 일코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차례로 시청사, 길거리 낙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에펠탑


    파리 시청사 앞에서 붙박인 듯 멈춰서 연신 감탄만 내뱉는 내게 Eva는 파리의 건축 역사를 조금 알려준다. 파리의 건물들은 여러 차례의 화재로 전소된 후 대개 19세기에 새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건물들 대부분이 그때 유행하던 특정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는데, 정작 그 양식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듣고 금세 까먹어버렸다 (나는 텍스트화 할 수 없는 이국의 발음은 바로 잊어버린다). 해가 지기 전 오페라 역으로 이동해 한 백화점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백화점 건물은 궁전을 개조해서 천장이 유난히도 아름다웠는데, 그 위에는 아는 사람만 안다는 파리의 무료 전망대가 있다. 물론 아는 사람만 안다 해도 전망대는 역시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다. Eva한텐 미안하지만 역시 전날 본 센강의 노을이 이에 비해 심각하게 예쁘기도 했고.


Eva와의 저녁식사

    다시 지하철을 타고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관광객에게 인기가 많다는 곳은 줄이 너무도 길어 대기줄에 서긴 포기하고 빈 테이블이 하나 남은 그 옆 가게로 향했다. 이름은 Blanc으로 시작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정확한진 잘 모르겠다. Eva의 추천을 따라 오리 뒷다리 요리와 하우스와인 0.4 리터를 주문했다. 오리 요리는 한 입 먹었을 때 너무 맛있어서 놀랐던 기억이 난다. 겉껍질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우면서 물리지 않게 간이 되어 있었다. 곁들여 나온 감자도 훌륭했다. 프랑스에 놀러 와놓고서 식도락 여행을 하지 않았다는 게 그제서야 너무 아쉬워졌는데, 사실 미리 알았어도 파리의 레스토랑은 학생이 매번 외식할 마음을 먹을 만큼 저렴하지는 않다. 누군가 프랑스 요리는 돈을 낸 자가 그 값어치를 하는 최상의 맛을 즐길 수 있다면 이탈리아는 맛이 온 대중이 즐길 수 있게끔 상향평준화되어 있다고 평했던 것 같은데, 양국 다 잘은 모르지만 정확한 평이지 않을까 싶다.


    센 강을 따라 서너 시간을 더 걸었다. 노트르담 대성당 옆을 지날 땐 Eva의 친구가 바로 이 옆 건물에 살아서 화재 당시 성당이 불타는 모습을 그대로 봤다는 이야기를, 대성당이 위치한 이 시테Cite 섬은 법원과 경찰서 등 사법기관이 주로 위치한 곳이라 일전에 테러가 일어난 적 있어 이처럼 경비가 삼엄하다는 이야기를 했고, 생루이섬 끄트머리에 위치한 Square Barye와 전날 들렀던 알렉상드르 다리 옆을 걸을 땐 이 끄트머리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약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앗 TMI!).


    밤의 파리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이전에도 해가 지면 번화가 위주로 다니되 외출 자체를 삼가했는데, Eva도 그러는 게 맞다고 말했다. 몇몇 구는 현지인에게도 위험하다며. 그럼 지금 너와 걷고 있는 여긴 안전한 거냐고 물어봤는데, 그가 자신있게 여기는 괜찮다고 이야기하자마자 길 구석에서 노상방뇨하는 남자를, 1분 후에 어두운 데에 웅크린 노숙자들을 발견해서 민망해했다.


    또 한참을 걷다 슐리 다리 근처에서 다리가 아파서 계단 위에 주저앉았다. 요즘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Eva에게 한국어의 서술어가 어떤 원리로 구성되는 것인지 폰 메모장에 형태소 분석을 해가며 가르쳐줬다. 또 한국인들이 몸을 사리게 만드는 "나대면 안 되는 분위기"에 대해서도 설명했었는데... 이제 막 한국어를 시작한 애한테 "니가 뭔데" 비슷한 문장을 가르쳤던 것 같아서 새삼스럽게 죄책감이 드는군. 유럽과 한국의 인종차별 양상에 대해서도 한참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정확한 대화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야기를 나누며 바라본 센 강에는 커다란 유람선이 시도때도 없이 강물 위를 오가는데도 태연하게 백조들이 떠다니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 전경

    아참, 헤어지기 전에 카를라 브루니에 대해서 프랑스인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Eva에게 물어봤는데, 유부남과 연애하고 대통령과 급 결혼하고, 그런 이야기는 조금도 언급 없이 걍 자꾸 소녀인 것처럼 귀척한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고 말해주는 게 너무나도 프랑스인 같았다 (가쉽에 연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정도는 굳이 언급할 가치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Eva와 걸은 것만 쳐도 6시간, 오전부터 혼자 계속 돌아다닌 걸 생각하면 정말 종일 걸은 셈이다. 신발을 벗고 보니 발 여기저기에 물집이 잔뜩 잡혔다.



    그날 저녁도 어김없이 숙소에서 술을 마셨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누구랑 마셨는지는 이제 와선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민박에서 머무는 동안 사장님이 "조선족" 출신 직원을 노예처럼 부려먹었던 게 충격적이었던 건 뚜렷이 기억한다. 그날이 파리에서 지낸 마지막 밤.




    사람들은 대개 프랑스인들이 가장 인종차별이 심하다며 (가끔은 벨기에가 제일 심하다고들도 하지만) 재수없어하고 독일은 그나마 낫다고 말한다. 딱딱 원리원칙을 정확히 지키기 때문에 무뚝뚝해 보일 수는 있어도 친해지면 그렇게 진국인 친구들이 없다고. Eva도 말했다. 독일인들은 한번 친구가 되면 놀랄 만큼의 애정을 보여 준다고. 나 역시 동의한다. 내가 친구로 사귄 독일의 여자들은 하나같이 놀라울 만큼 사려깊으며 따뜻하고 강한 인내심을 보여주었다 (일단 나의 멍청함을 끝까지 참아주는 것만 해도 존경스럽다).


    거기에 파리 여행 내내 언제 내 가방이 털릴지 몰라 노심초사하며 다녔던 것도 생각하면, 그렇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파리지앵들은 모두 배드플레이스로 가 마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파리를 미워할 수 없는 건 파리라는 도시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에, 그리고 눈이 마주쳤을 때 웃음지어주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반가웠기 때문에. 5일로는 부족했다. 파리는 그곳에 살고 싶진 않지만 더 알고 싶고 더 머무르고 싶은 도시. 1년이 훌쩍 지난 아직도 그날 바라본 센 강의 야경이 그립다.




    +여담으로, 지금 Eva는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교환학생으로 와 지내고 있다.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만나서 밥을 먹고 차를 마신다. 아직도 내게 일코 중인데 (삘로는 BTS를 사랑하는 것 같단 심증이 있지만), 평생 내게 자신의 진짜 취향을 알려주는 일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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