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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Jul 08. 2023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은 왜 돌이킬 수 없지

떠나간 내 작은 고양이에게

    내 작은 고양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동그란 뒷통수에 입술을 묻을 때 느껴지던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 말랑한 배와 내게 폭 안겨있던 보드라운 온기. 내 팔을 베고 잠든 조그만 머리의 무게감.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있으면 들리던 콩콩거리는 심장 소리. 짧은 털에 배어 있던 이불 냄새. 나는 너를 그런 감각으로 기억해.


    넌 아마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아직 중학생일 때, 한번은 내가 신발을 신은 채 현관에 앉아 있던 적이 있었거든. 가족에게 말을 건네며 무심코 손을 앞으로 내밀자 멀리서 지켜보던 네가 쫑쫑 달려와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내 손바닥 아래로 머리를 들이밀었어. 나는 그날 처음으로 네게 죄책감을 느꼈던 것 같아. 너의 순진하고 맹목적인 사랑에, 네가 보여주는 신뢰에. 네게 미안해졌어.


    내 세상은 너무도 많은 것들로 채워져 있어서, 너의 세상과 감히 맞바꾸기엔 내가 내어줄 공간이 너무도 부족했으니까.


    네가 날 기다리는 동안, 날 바라보는 동안, 날 조르다가 지쳐 내게 기대어 잠이 드는 동안.

    나는 학교에 가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공부를 하고, 친구들과 연락하고, 게임을 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남은 여력으로는 오직 너만을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어. 내게 남은 애정은 공평히 쏟기엔 한 줌밖에 되지 않아서 그 한 줌으로 온전히 너만을 사랑하려 했어. 너도 알지.







    너를 중학교 1학년 가을에 처음으로 만났으니, 이제 너도 열네 살인가?

    그 가운데 절반을 우리 둘이서 살았잖아. 처음엔 서울에서, 그리고 수원에서.


    처음 성인이 되고 너와 단둘이서 살게 되었을 때. 나는 다치고 겁먹은 채 서울로 보내진 너를 의무감으로 사랑했던 것 같은데. 내 앉은키보다 작은 네 앞에서 주접을 떨고 드러누워 관심을 갈구하고 잔뜩 뽀뽀하다가 네 뒷통수에서 침냄새가 날 지경이 되어서도… 마음 한구석에선 네가 버거웠는데. 아침에 늦잠을 자도 꼭 네 밥그릇과 물그릇, 화장실을 챙기고 네게 인사를 하고 나서기, 아무리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집에는 꼭 일찍 들어가기, 저녁에 내가 옷을 입어보고 있으면 내 발목을 깨무는 너를 달래기, 서울에서 너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하기, 그러다가 계약 당일 너로 인해 파토 위기를 겪기, 언젠가 찾아올 네 마지막 순간에 내가 과연 네 곁을 지킬 시간을 낼 수 있을까 두려워하기…….


    그런데 지금은 평생 널 사랑하기만 했던 것처럼 슬퍼. 경계와 불신으로 찌그러진 네 얼굴에 대고 귀엽다, 예쁘다, 사랑한다 진심이 아닌 말을 건네며 꼭 껴안던 스무 살의 가을에도. 분리불안에 날카로워진 너를 떼어내고 겨우 집을 나서던 스물 두 살의 여름에도. 그때 나는 내가 널 사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랑이라는 라벨을 붙이기엔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너무도 의무감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네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그제서야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은 거 있지.






    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작년 오월 밤. 1호선 막차를 타고 수원으로 돌아올 일이 있었지. 술집에서 흘러나오던 조안나 왕의 노래가 떠올라 찾아보다가, 결국 두 시간 내내 그 노래만을 듣고 있었어. 어렴풋이 들리는 노래 가사를 따라 흥얼거리며 줄곧 너를 생각했어.


    그러니까 부탁해, 곁에 있어줘

    지금은 너밖에 사랑할 수 없어


    네 폐에 흉수가 차올라서 천자를 하고 돌아온 한 달 전 밤중에, 너와 같이 거실에 앉아 있을 때 길거리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넬의 노래를 틀었지.


    아직도 너의 소리를 듣고 아직도


    나는 그 목소리들로 너를 기억할 거야.






    너와 지내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나는 알면서도 왜 실감하지 못했을까? 너처럼 나를 신뢰하고, 너처럼 나를 잘 알고, 너처럼 나를 사랑하고, 너처럼 영리한 가족은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거란 걸 알면서도.


    사실 사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건 내가 아니라 너였잖아.


    너는 내가 언제 잠에서 깨는지 알았지. 먼저 일어나 하루를 보내고 있다가도 내가 깰 때가 되면 내 곁에 다가와 있다가 인사했고, 알람이 울린 후 다시 잠들 때면 안절부절 못하며 날 깨워주었고(그렇게 일어나면 내가 곧 널 두고 회사에 가리란 사실을 알면서도), 내가 재택근무를 할 때면 내 무릎 위로 올라와 키보드를 치는 내 팔에 기대어 졸았고, 퇴근시간이 되면 날 재촉하며 울었지. 잠들 때가 되면 꼭 내 왼팔을 베고 잠들어야 했잖아. 내가 팔을 내어주면 자연스럽게 이불 속으로 들어와서 내 어깨죽지를 베고 잠들었지. 아침에 일어나 내 품에 안겨 잠들어 있는 네 뒤통수에 뽀뽀할 때마다 나는 네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는데.


    아파서 밥도 먹지 못하던 날들조차도 너는 퇴근하고 돌아온 나를 보면 반가워하며 골골 소리를 냈고, 내가 씻고 돌아와 팔을 내어주면 그제야 안심한 듯 내 품에서 밤이 될 때까지 잠을 청하곤 했잖아. 나는 그런 나날이 오래 이어지지 않으리란 걸 알았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는 알지 못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더 좋은 방법이 있었을 것 같아. 처음 종양을 발견했을 때 처음 그 병원에 가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빠르게 조치를 취했더라면. 더 잘 돌보았더라면. 더 오래 시간을 보냈더라면. 함께 있는 동안 네 숨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어쩌면 마지막 주치의 선생님이 권유했던 것처럼 지난 주말에 안락사를 했었더라면. 그럼 이 더운 날에, 물조차 마시지 못하고 내 체온조차 견디지 못한 채 한참을 힘겨워하다가 떠나지 않았을 텐데.


    너는 내가 청승 떠는 걸 싫어했지만 말이야. 너를 떠나보낼 생각에 내가 널 붙잡고 울 때면 너는 한심하단 듯 날 쳐다보다가 슬금슬금 자리를 옮겼고 나는 그게 어이 없어서 눈물을 그치곤 했잖아. (나는 너와 이별하기 싫어서 울었던 거라고...)


    그래도 나는 자꾸 생각하게 돼.


    그토록 오래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잠도 자지 못하고서 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너는 무슨 마음으로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뎠을까?


    아직도 마지막 순간 네가 내지른 소리를 떠올리면 눈물이 나.

    그리고 그 순간 내가 한 생각, 내가 한 말, 내가 한 행동 모두가 후회돼.


    아픈 너를 만지는 게 오히려 너를 더 괴롭게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한동안 내 손길을 피하던 널 자기만족에 계속 쓰다듬고. 네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고 옆에만 있으면서, 내 휴가 기간이 끝나기 전에 널 보낼 수 있을까 걱정하고. 내가 네 마지막을 지켜보고 마무리한 후 여유를 두고 다시 일하러 갈 수 있게끔 차라리 일찍 떠나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네 옆에 누워 네가 기댄 이불을 멋대로 끌어당기고 회사 동료들과 단톡방에서 신규 외주인력의 무능이나 비토하고 있다가,


    네가 마지막으로 고통스럽게 울면서 속에 든 것을 토해내는 순간에 나는 오늘 함께 덮고 자야 할 이불이 젖은 걸 걱정하고 있었지. 그게 네 마지막이었던 줄도 모르고 또 바보같은 소리나 늘어놓았는데. 차라리 널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쓰다듬어줄걸. 울음을 터트리지 말고 네 이름을 불러주며 사랑한다고 말할걸. 네 숨이 멎는 순간에 널 안아줄걸. 이제는 다시 널 안아볼 수도 없는데. 널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없는데. 그걸 다 늦은 후에야 알았어.


    내가 다시 회사에 출근하고,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잡담을 하고, 친구를 만나는 동안,

    너는 더 이상 나를 기다려주지 못하는데.


    하필 네 세계의 전부가 나였어서 그게 너무도 아파.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은 왜 돌이킬 수 없지.

    유일한 것들은 왜 하나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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