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생각하니까 힘이 존나 나

공연 시작 1분 전 최애의 단독공연 VIP 플루어석 티켓을 얻다

by JUNE

01. 널 생각만 해도 난 강해져 : 난생 처음 해본 K-POP 아이돌 덕질에 관하여

02. 널 생각만 해도 강해...지나? : 아이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하여



최애의 첫 단독공연이 다가올 수록 나의 마음은 차게 식어갔다.

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비장하게 참여한 티켓팅은 장렬히 실패했고, 취켓팅도 실패했고, 취켓팅의 취켓팅도, 추가 좌석 오픈 티켓팅도 그 취켓팅도 모두 실패. 취켓팅 대리는 비용도 어마어마했을 뿐더러 대리 대기줄도 길었고, 플미 표는

첫콘 3층 시야제한석 최저가 35만원.



이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 심지어 계속 팔려나가고 있기까지 했다. (막공날 보니 3층 시제석이 최저가 47만원까지 올라갔더라.) 나는 일단 암표에 가진 심리적 거부감을 떠나서, 저딴 좌석을 월세 절반까지 내고 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모니터 앞에 달라붙어 취켓을 시도하였으나... 아무튼 실패했다.


여름에 열린 팝업의 악몽이 떠올랐다. 평일 오후, 나는 반차를 내고 성수로 달려가 (나의 직장: 판교. 집: 수원) 오로지 내 돈을 내고 굿즈를 사기 위해 팝업 입장권 취켓팅을 시도했으나 5시간 동안 그냥 폰을 노려보며 성수 길거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입장권 플미표(원가 : 무료)는 쉼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 돈 주고 들어가봤자 또다시 내 돈을 내고 밤티 굿즈를 사야 할 뿐이었는데.


마지막 컴백은 시기도 활동곡도 성적도 애매했고, 자컨과 컨텐츠도 성에 차지 않았고, 1년이 넘도록 도전한 수없이 많은 티켓팅과 사녹 공방 응모 기회에서는 모두 탈락해 단 한번도 최애의 실물을 보는 행운을 누릴 수 없었다. 모든 표와 굿즈는 업자들이 쓸어가 어마어마한 플미가 붙거나, 예약배송이 밀리고 밀리다가 매번 굿즈 구매 3달 후에 뜬금없이 배송되곤 했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이제 마음을 접을 때인가?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데... 이대로 물러서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정확히는 오기가 들었다. 꾸준히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고 마음고생만 한 후에 실패하는 경험만 쌓이고 있으니, 덕질이라는 것 자체가 피로하고 지긋지긋하고 스트레스를 불러일으키는 행위로만 느껴지기 시작했고, 내가 만족할 만한 보상을 얻어내지 않는 한 탈덕은 시간문제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기분으로 이 덕질을 종결짓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도 심지어 최애와도 나와도 하등 상관도 없는 이유로.






그래서, 일단 첫공 당일 일단 연차를 냈다. 일찍 일어나 아침을 먹고, 약속을 다녀오고, 점심때쯤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응원봉과 가방을 챙겨서 일단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인천 영종도 인스파이어 아레나(편도 3.5시간). 나름대로 계산속이 있기는 했다.


첫번째로, 공연장은 팝업 때처럼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가 아니라 교통편이 극악인 인스파이어 아레나에서 열리기에, 티켓을 즉시 구매할 수 있는 수요, 즉 표가 없으면서 인스파이어 리조트 근처에 위치한 팬의 수는 적을 수밖에 없다 (없지는 않다).


두번째로, 서치를 하면서 보니 사람들은 최애를 더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해 기존 좌석을 버리고 전진표를 구매한 후, 기존 좌석을 양도하는 경향이 있고, 공연 시작이 가까워질수록 거래 빈도가 높아지곤 했다. 그러니까 공급은 분명히 발생할 것이다.


그렇다면, 공연 시작 직전에 당장 있는 여분의 티켓을 털어내야 하는 상황에서 추가 구매자가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면 자연히 티켓값이 내려갈 수밖에 없고, 공연 시간이 다가올수록 그 낙폭은 커질 것이다.


물론 죄다 다 뇌피셜이었다. 애초에 나는 아이돌 콘서트는 가본 적 없고 다녀본 콘서트라고 해봐야 어릴 때 인디밴드를 덕질하던 시절의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수준이니.



아무튼 내가 살 만한 표는 나올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했고, 그렇다면 마음속으로도 정해둔 한도도 있었다. 운 좋게 20만원 미만 일반석이 나오면, 잡는다. 원가 수준의 시제석이 나오면, 잡는다. 이동 중, 30만원 초 가격대 일반좌석이 나오거나 양도표 가격대가 슬금슬금 올라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에는 다시 되뇌었다. 내가 고작 3층 구석 자리를 33만원에 사려고 영종도까지 가는 것이 아니다. 좋은 표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냥 영종도에서 집으로 다시 돌아와버리자. 비록 왕복 7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이지만.







공연장 앞에 도착한 건 공연 1시간 반 전. 나는 저녁도 거른 채 티켓박스 근처에 대충 서서 새로고침을 반복했다. 공연 30분 전, 공연 20분 전이 되자 마음이 급해진 사람들의 양도표가 반짝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제석 30만원? 이제 진짜 잡아야 하나?

오 25만원까지 내려갔다.

1층 시야제한제한제한 뒷모습 감상용 좌석.

이건 판매자분이 급했는지 30만원 초에서 원가까지 1분마다 가격이 쭉쭉 내려간다.

이걸 잡아야 하나?


이미 마음속으로 정한 가격대가 한참 넘었지만 슬슬… 여기까지 왔으니 더 좋은 좌석에서 봐도 되지 않겠냐는 근거 없는 보상심리가 생겼다. 공연 직전 다시 양도표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자 마음이 초조해지는 가운데 그냥 결제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또 누르고… 공연 시작까지 10분이 채 남지 않은 시점. 정말로 표가... 떴다!!!



VIP석 25만원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결제버튼을 누르고 (그 와중에 티켓베이 첫결제 쿠폰을 먹이는 것도 잊지 않고) 판매자에게 연락처를 보내고, 몇가지 일이 있었지만 공연 시작 1분 전에 아슬아슬하게 티켓을 수령하자마자 공연장으로 내달렸다(계속 천천히 걸으라고 말해주던 스탭분들껜 죄송할 따름이지만 공연장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서 어쩔 수 없었다.). 입장 선물은 손에 들려있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는 상태로 사람들에게 사과하며 좌석을 비집고 들어가, 무대가 시작되기 직전 기적적으로 착석했다.


내 자리는 통로에 가까운 플루어석 맨 뒤에서 두 번째, 바로 뒤에는 아티스트 분장용 간이 천막과 2층 돌출무대. 그러니까 정상적으로 구했다면 198,000원이지만 암표로 구한다면 최소 100만원대의 좌석.


너무 늦게 도착한 탓에 인트로를 보면서도 손은 응원봉을 꺼내들고 건전지를 교체하고 앱에 연동하느라 분주했고, 짐은 정리하지 못해서 무릎 위와 바닥에 대충 내팽개쳐둘 수밖에 없었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속은 울렁거리고, 공연을 보기 위한 아무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지만 성공했다는 감각만은 확실했다.


드디어 최애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이게 바로 내가 원했던 거였다.

정말 단순할 수도 있는데, 너무 어려웠던 일이었다.






공연은 아직도 무슨 정신으로 봤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본 무대와는 멀었지만 통로와는 가까웠던 덕에, 최애가 내 코앞을 지나가는 순간은 종종 있었다. 최애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더욱 예뻤고, 반짝이는 눈은 현실감 없었고, 화질이 뭉개지는 스트리밍이 아니라 정면에서 실제로 보는 전광판에선 카메라가 최애의 솜털까지 선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중계 카메라가 비추지 않는 순간에 다른 멤버와 투닥거리거나 장난을 치거나 물을 마시러 잠시 자리를 비우는 순간은 누가 찍어주지 않아도 내 눈으로 담을 수 있었다.


잠시 메이크업을 정비하고 천막에서 나온 내 최애가 돌돌출 무대로 올라가기 전, 코앞에서 내 쪽을 보며 (정확히는 내 주변에서 그를 부르는 팬들의 목소리를 듣고서) 사르르 웃어주는 것을 보는 순간 확신했다. 무작정 이곳에 온 걸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나는 몰입이라는 걸 하기엔 언제나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고, 플루어석 특성상 주변은 멘트 호응도 무대 호응도 떼창도 함성도 없다시피 하고, 모두가 공연 내내 대여해온 갤럭시울트라25 또는 카메라를 치켜들고 있을 뿐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외롭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아무리 라방을 보고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봐도 부재했던 실물과 실재와 실시간의 감각을 그곳에서는 느낄 수 있었다.


(이 애들이 실존하는 사람들이었구나? 지금까진 아닌 줄.)


공연이 끝나고 난 후에도 흥분감이나 여운은 크게 없었고, 실감이 나거나 벅차올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이번 공연이 내게 너무도 필요했던 경험이었다는 사실은 뼈저리게 느꼈다.


일단 좋은 자리에서 라이브를 보고 나자 덕질을 하는 내내 거듭된 티켓팅 실패로 인해 누적되어 있던 모든 정병과 스트레스가 싹 씻겨나가며 구마된 상태에 접어들었다(한동안 회사에서 얼굴이 좋아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보다, 좋아한다는 행위는 나 혼자만의 마음으로만 지속하기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오랜만에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자 언제까지고 사랑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음이 벅차오르거나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어쩔 줄 모르는 일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시들시들해져 가던 사랑이 다시금 차오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다시 지루한 삶을 버틸 수 있다.


그게 중요했다.




여담 1.

비하인드가 있는데, 처음 내가 구매한 표는 플루어가 아닌 1층 VIP석이었다. 그런데 내 연락처를 받아간 판매자는 5분 간 잠수를 타다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서는 없는 표를 팔았다며, 플루어석도 괜찮다면 그 자리로 바꿔주고, 표는 직원을 보내서 주겠다고 했다. 알겠다고 했더니, 몇 분 후 여자 직원이 와서 여러 장 중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웬 남자가 접근해서 혹시 표가 필요하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공연 시작 10분 전까지 기다렸다가 표를 파는 사람은 어지간하면 업자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아무리 좌석 전진 후 남은 표를 팔고 싶어 절박하더라도 일반 관객은 시작 직전에는 던지고 공연장 안에 들어가버릴 것이다. 사실 표를 구할 계획을 세우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기도 했다. 내가 하는 일이 사실은 업체에게 원가보전 +a를 해주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만약 내가 기회비용을 따지다 결국 아무 표나 사게 된다면 그게 일반적인 결말이라는 것을.


거기에 이번은 운이 좋았던 것 같지만... 사실 공연이 시작하는 순간까지도 대부분의 플미표는 가격을 그다지 내리지 않고 양심 없는 가격 그대로 남아있었다. 시도한다고 반드시 성공하는 방법도 아니고, 공연장에 제때 들어갈 수도 없다. 공연의 일부는 놓칠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 시간과 마음고생 대비 효율이 좋지 않을 수 있다.


나중에 티켓을 구하지 못해 미쳐가는 상태가 되면 또 모르는 일이긴 하지만, 굳이 두 번 하고 싶은 경험이 아닌 것만은 확실하다.



여담 2.

공연이 끝나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플루어석이라 퇴장이 늦었고, 공연을 볼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기에 셔틀 예약도 당연히 하지 못했다. 뒤늦게 줄을 서서 공연 셔틀을 타고 공항으로 이동한 후, 어찌저찌 먼 길을 돌아 집에 돌아가자 새벽 3시.


중간에 함께 셔틀을 기다리다가 우산을 씌워주게 된 다른 팬과(나중에 보니 같은 멤버가 최애였음) 말을 트는 이벤트도 있었고 나름대로 즐거웠던 그 모든 과정도 공연 감상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체력이 모두 소진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같프 동행과 함께


그러나 후회하진 않으며,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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