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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gnotant Jun 28. 2022

#4 직장생활은 고달프다

6개월 가까웠던 힘 희롱 조사기간을 돌아보며 잊지 않기 위해 남기는 기록


결론은 A와 A 남자 친구 상사 B 부서장 그리고 A와 잘 지내던 부서원 한 명(이하 D)을 제외하고 전부 힘 희롱으로 신고를 당했고 6개월 정도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힘 희롱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직장 내에서는 이미 왕따 가해자라는 소문이 나있고 그렇게 시간이 1년 하고 반개월 정도 시간이 흘렀다.


이러한 뒷 이야기가 있다는 걸 입 밖으로 꺼내는 게 너무나 무서웠는데 그들이 듣고 또 명예 훼손한다 하며 신고를 할 것 같았고, 또 6개월 가까운 힘든 시간을 다시 한번 더 거쳐야 하는 건 아닐까 지레 겁부터 먹었기 때문이다. (이제와 생각하지만 겁쟁이라 만만해서 나를 신고한거아닐까?)


일이 생기고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뒤, 아무도 알 수 없는 상담센터에 가서 이야기를 하고 대학원 과제가 있을 때마다 이 일과 엮어서 작성해 제출하고, 또 브런치에 글을 적고 있다.


힘든 일은 말을 해야 괜찮아지는 게 맞다.

지옥 같았던 순간들도 지겨울 때까지 말하고 적다 하다 보니 신기하게도 무뎌진다.




20년 3월쯤, 코로나가 터졌다.

코로나 환자를 돌보는 곳에 A와 상사 B 부서장을 제외하고 몇명은 차출되어 코로나 병동으로 일하러 가게 되었다.

예뻐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보내버리는 느낌, 그냥 내 느낌이다.


그리고 나는  의료진이 필요한 해외 출장에 의료진으로 가게 되었다. 병원을 대표해서 가는 역할이라고 했는데 상사 B는 “ 네가 이 병원에서 제일 만만하니까 가는 거지. 이 시국에 누가 갈려고 하겠니.”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앞에 의사 선생님은 “ 니 베트남 왜 가는 줄 아나? 늙은 남자들 가는데 젊은 여자 하나 가는 게 출장이지. 그래서 니가 가는 거다.”라고 하셨다. 옆에 같이 들은 상사B에게 “성희롱적 발언인것 같다. 힘들다.” 라고 하니 상사B는 “원래 그런 사람인거 알잖아. 넘겨.”라고 하셨다.


출국일이 다되어 갈 때 간호부에서 나를 불렀다. 출장을 보내주는거라 때문에 인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병원장실 행정부원장실 간호부장실 간호부를 돌며 “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했다. “하나님께 니 코로나 안걸리게 기도할게.””부모님은 니 가는거 알고 있나?” 하는 말을 덕담으로 해주셨다. 그리고 출국 전 마지막 출근날, 밤근무로 출근하니 빈 캐리어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의료용품 챙겨야 하니 거기 담아가라는 뜻이었다. 나는 밤동안 물품을 빌리고 챙겼다.


출장 전 마지막 근무날 상사B와 같이 근무했다. 상사B는 나에게 ‘구하기 힘들고 비싼’ 마스크를 선물해 주셨다. ‘구하기 힘들고  비싼’ 마스크, 몇 번을 강조 하셨다.

모든것을 내가 예약하고 내가 준비해서 간 출장이었다.(원래 출장이란 그런건가? 출장을 가 보지 않아서 비교 대상이 없다.)

출장 기간 동안 상사B는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나에게 준 마스크가 얼마나 구하기 힘들고 좋은 마스크를 줬는지 이야기를 했고 그 이야기를 나는 카톡으로 전해 들었다.

출장을 다녀 온 뒤 그 때의 방역지침에 맞춰 2주간 출근을 안하게 되었다.

격리 2주 어느날 오후 7시쯤, 부서장이 전화왔다. “내가 갔어야 내가 쉴 수 있었는데 내가 갈 걸 그랬다. 니 출장비 얼마 나왔어? 많이 나왔나? 출장갈 때 뭐 준비해서 갔어? 리스트 지금 당장 적어서 보내줘. 나 위에 보고 해야한다.”

리스트를 만들어 보내 드렸다.


시간이 지나 다시 출근 하게 되었을 때, 상사B는 계속해서 본인이 선물해 준 마스크가 얼마나 좋은거 였는지, 구하기 힘든거 였는지 말씀하셨다. 그리고 A는 나에게 “나는 상사B한테 비싼 샴푸 선물했는데 너무 좋아하시더라.”를 계속해서 말했다. 그냥 있으면 안될것 같은 느낌을 받아 평소에 늘 향수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셨던게 기억이 나 백화점에서 향수를 사서 선물해드렸다. 다음날 [이런 선물은 받기 부담스럽다.]라고 적힌 쪽지와 함께 향수 가격과 비슷한 가격만큼의 상품권을 돌려 받았다.

나는 어떻게 했어야 했던걸까.


처음 겪는 코로나 시기,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열나는 환자들 동선, 열나는 사람들의 치료 방향, 환자들의 민원, 일반 환자를 보면서 코로나 의심환자들을 같이 진료 하는 일, 방호복을 입었다가 벗었다가 하는 일, 부족한 물품들 등등 처음겪는 상황에 우리부서만의 질서를 만들어 가는 과정동안 짜증과 불만이 가득했다. 그 어떤 직장도 코로나 초반기에는 다들 그렇지 않았을까. 코로나 의심 환자를 직접 마주해야 하는 우리는 더욱 예민했다. 우리는 부서장에게 동선, 응급실 환자와 열나는 환자를 동시에 같이 보는것, 방호물품이 부족한것 등에 대해 늘 이야기 했다. 부서장은 “위에서 시키는대로 해야지. 내가 힘이 있나.” 라는 답만 주셨다. 그 말도 이해했다. 부서장이 결정 할 수 있는 부분도 한계가 있고, 이 상황에서는 병원도 멘붕일테니까. A는 말해도 개선 안되는 이 상황을 변호사랑 노무사에게 연락을 해 놨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A의 신고노트에는 A가 아니라 내가 부서장을 욕하고 변호사에게 연락하고 신고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A와 A남자친구 상사B 그리고 부서장까지 친해져가는게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추가로 D까지. 우리는 상사B와 일할 때면 우리의 일거수 일투족을 부서장에게 바로 전화해서 이야기하는걸 그냥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사B가 주최하는 밖에서 먹는 모임에 더이상 우리가 불려가는 일은 없었다. A남자친구는 상사B집에 간 이야기나 밖에서 같이 밥먹었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 자리에서 오간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 일지, 예전 모임과 같다면 그 자리에 없는 나머지 모두의 욕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을 했는지 안했는지 모른다. 그냥 내 생각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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