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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gnotant May 30. 2022

#2 간호사 태움: 타겟

6개월 가까웠던 힘 희롱 조사기간을 돌아보며 잊지 않기 위해 남기는 기록

태움이란 뭘까.

신규시절, 나는 일을 배우면서 매 순간 혼나고 자존심 깍아내리는 말을 들으며 매일 죽고싶었던 적이 있는데(신규라면 누구나 이해할 감정) 몇년이 지난 어느날 진정한 태움을 옆에서 바라보면서 내가 당한건 가벼운 주전부리 같은 태움이었다는걸 알게 되었다.

진정한 태움은 어느정도 경력이 찬 어느 날 누군가를 만나면서였다.




A가 내가 있던 부서에 발령받아 왔을 때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잘 지냈다.

부서에 동갑내기가 없어서였기도 하고 원래 어느 정도 알던 사이여서 근무하는 시간이 재밌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나만 잘 지냈나?’ 싶지만 A는 나와 근무면 내 간식까지 같이 사 와서 먹고 다음 근무 때는 내가 A 간식까지 사 오고 간식을 먹으며 본인 소개팅 이야기, 연애 이야기 가족 이야기를 하며 우리는 잘 지냈다.(A가 주로 말하고 나는 듣는 입장이었는데 A는 자신이 태움 당했던 힘든 일들부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까지 했고, 힘든 이야기는 같이 욕하고,  소소한 일상 이야기는 친구 기준 소소했지만 정말 넘사벽 부잣집 딸이라서 그들이 사는 일상 이야기들을 듣는 게 재밌었다.)


A는 이 부서로 발령받기 전 부서에서 선배 몇 명에게  ‘태움’으로 엄청 힘들었던 이야기를 자주 했었는데 그건 사실 A가 말하기 전에도 알고 있었을 정도로 병원에서 유명했다. 나는 A가 조용하고 조금은 내성적이라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곳은 어떨지 모르지만 10년 가까이 겪어본 바 우리 병원은 만만한 애들이 타겟(태움 대상을 우리는 타겟이라고 불렀다.)이다. 성격 있고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애들은 건들지도 않는다. 적다 보니 다른 병원, 다른 조직도 그러 건지 우리 병원의 특징적인 건지 궁금해진다.

A는 자신을 태우던 선배들과 (한 명이 아니다.) 잘 지내기 위해 손수 구운 쿠키를 선물하고 편지를 쓰고 했지만 달라지는 게 없었다고 했다.

A는 자신 말고 다른 타겟은 태움 당하다가 과호흡 같은 증상이 와서 숨을 잘 못 쉬니 환자들 사용하는 산소 콧줄을 끼운 다음 태움을 이어갔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매번 느끼지만 간호사의 태움은 늘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부서로 A를 엄청 태우던 상사 B가 발령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A는  B님 유경험자로 조심해야 할 것들을 미리 말해줬는데

- 타겟만 안되면 된다. 타겟 안 되는 게 제일 중요하다.

- 하지만 타겟은 언젠가 다른 타겟으로 변경되기 때문에 내 차례가 늦게 오기를 빌어야 한다.


B님이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타겟은 정해졌는데 누가 말하지 않아도 타겟이 누군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타겟이 되면 어떤 게 바뀌나요?]

- 근무 중 하는 모든 행위 일거수일투족을 평가받고 감시당한다.

- 1 실수 100으로 부풀려진다..

-  타겟의 모든 행동은 타겟을 모르는 타 부서 사람들과 우리 부서 상사에게 이야기된다.

-  특히나 상사에게는 실시간으로 전화로 보고되는데, 과장되어 보고되어서 일이 커진다.

-  타겟이 한 작은 실수까지 다 적어 상사에게 보고한다.


B님은 타겟을 제외한 부서원들과 모임 날짜를 정한 뒤 매번 밖에서 밥을 사주셨는데, 그 모임의 8할은 타겟욕이었다. 그 자리에 참석할 때마다 나는 내가 다음 타겟이 되면 어쩌지 걱정했다. 타겟의 욕을 들으면서도 그 자리에  참석했던 건 불참과 동시에 내가 타겟이 될까 무서웠기 때문이다.

나는 용기가 없었다.


- 타겟은 병이 있던데 그거 때문에 일을 저런 식으로 하는 걸까?

- 타겟은 시집가도 시댁이 싫어할걸? 저런 애를 어떻게 시댁에서 좋아해

- 타겟 부모님이 싸준 반찬 맛없더라 버려.

- 사실 타겟이가지고 있다는 병도 거짓말 아냐?

- 걔는 내가 지 싫어하는 거 알 텐데 옆에 와서 이야기하더라.

- 타겟이랑 일 같이 못하겠다고 상사한테 이야기했잖아^^


타겟 욕을 듣는 날이 길어질수록 타겟 이름이 내 이름으로 들리는 것 같았다.

욕을 들으면서 거짓 웃음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거짓 웃음에서 무표정 그리고 떨떠름한 표정으로 변해갔다.


표정이 안 좋았던 건 나뿐만 아니었다.

그리고 떨떠름한 표정의 몇몇은 모임에서 제외되어갔다.


타겟은 특별한 애가 아니었다. 그냥 운이 안좋게 먼저 타겟이 된 평범한 부서원이었다.

일을 못하는것도,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순서에 운이 안좋았을 뿐이었다.


누구나 저런 시선을 받고 있으면 안하던 실수도 더 하게된다.

아니 없던 실수도 만들어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직장생활 잘 하는법]

- 상사의 말에 맞장구를 잘 친다.

- 나서서 상사가 싫어하는 사람 욕을 더 신나게 한다.

- 상사가 하는 모든 사적 모임에 필참한다.

- 상사의 모든 말이 맞다고 한다.


A의 마음을 알순 없지만, A는 위의 길을 선택 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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