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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ignotant Sep 27. 2022

엄마와 명품가방

아직도 철없지만 정말 철이 없었던 어릴 적 나에게는 몇몇의 부잣집 친구들이 있었는데, 여기서 그냥 친구가 아니라 부잣집 친구라 강조하는 건 아래 적어갈 이야기가 나의 자격지심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많이 커버려 그때의 나의 감정과 자격지심을 느꼈던 순간들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자격지심이 상대에 의해 만들어진 건지 나 혼자 순수하게 느꼈던 감정인지,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 감정을 느끼는 순간 그것부터 알아채고 싶다. 암튼, 그들은 나에게 온전한 친구였을지 모르나 나는 그들에게 늘 한 켠의 자격지심이 있었다. 넓은 집과 과일이 가득한 식사, 클래식을 틀고 밥을 먹는 식사시간, 여유롭게 악기를 배우던 모습.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내 부모의 모습에 비해 그저 여유로워 보였던 친구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그 순간 나는 불효녀가 되었고 집에 돌아와 “누구 집~”이야기를 시작하며 참 많은 순간을 부모 가슴에 못을 박았다.


어느 날 부잣집 친구와 여행을 가게 되었을 때 엄마는 나에게 처음으로 루이비통 매장을 가자고 했고, 그게 우리의 첫 명품가방이다. 엄마는 평생 살면서 백화점에서 옷을 사 입을 줄 몰랐고 열심히 돈 벌줄 만 알았지 쓸 줄 모르는, 고구마 뿌리로 밥을 대신하던 가난한 집에서 태어 나 열심히 돈 벌어 동생들 공부시키는데 20대를 바친 집안의 장녀이자 가장이었고 나의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나에게 명품 매장을 가자고 했을 때 그때  엄마는 무슨 마음으로 명품을 사러 가자 했을 까. 그 어릴적 나는 어떤 기분 었을까. 너무나 철없을 적이었으니까 나는 마냥 신나 했었을까. 우리는 부잣집 사람들만 가는 줄만 알았던 명품 매장을 갔고 엄마는 루이비통에서 보스턴 백을 하나 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엄마는 굵은 매직으로 가방 안쪽에 내 이름을 적어줬다. 그리고 엄마는 “딸 기죽지 마.”라고 했다.


나는 자라는 동안 부모에게 얼마나 많은 날, 많은 말, 많은 행동들로 상처를 줬을까.

‘철없었다.’는 말 한마디로 퉁 치기엔 부모도 사람인데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나를 키워 냈을까.

난 왜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야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돌아갈 수만 있다면 꽃길만 걷도록 길 앞의 많은 것들을 치워주던, 사실은 지금까지도 그러고 있는 부모님께 조금이나마 상처 주는 일을 줄이고 컸을 텐데, 돌아갈 수 없으니 아쉽고, 후회 찬 마음은 앞으로 부모가 좀 더 나와 오래 건강히 있어주길 바라는 기도와 부모님께 무심히 하는 전화로 승화시켜 본다.


부모와 자식으로 이어져 함께 나누고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유한한 이 순간, 조금 더 사랑한다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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