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나 주말은 빨리 돌아옵니다. 지난주에는 몇 주 동안 다른 일정 때문에 가지 못했던 지인이 직접 농사를 짓는 경기도 이천에 다녀왔습니다. 집에서는 63km 정도로 금방 다녀올 것으로 예상하고, 아이들과 저 이렇게 셋이서만 토요일 아침 길을 나섰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처음에 맞췄을 때는 1시간 반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1시간 50분, 2시간, 2시간 10분... 토요일 영동고속도로를 예상치 못해서 결국 2시간 30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이동하는 도중 차 안에서 있었던 고되고 슬픈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ㅜㅜ
막상 목적지에 도착해서 지인의 안내를 밭에 도착한 감자밭을 보고는 아이들은 기뻐했습니다. 지인께서 장갑도 챙겨주시고, 감자 캐는 법도 손수 알려주셨습니다. 특히나 캘 때마다 감자가 쑥쑥 나오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봤을 때는, 2시간 반 동안 운전 중 있었던 고되고 슬픈 이야기는 모두 해소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1시간 정도의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며, 감자를 두 박스나 가득 캤습니다. 감자 1kg에 5,000원이 넘는 상황에서 상당한 수확량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나 토질이 마사토라 쉽게 캘 수 있던 것도 한몫했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수확한 감자 (자료 : 블로그 주인)
그런데 이렇게 우리 생활에 필수적인 감자도 미래에는 더 이상 미래세대는 즐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감자의 기원
감자는 남미의 페루와 볼리비아 지역의 잉카인들이 재배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기간도 무려 약 1만 년 전으로 그만큼 오래된 식재료입니다. 잉카인들은 감자를 굽고 으깨고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하였습니다. 대표적인 감자요리가 추뇨(Chuno)입니다. 잉카인들은 과거부터 고지의 차가운 밤에 감자를 얼게 한 뒤, 낮에는 발로 밟아 감자 속 수분을 짜내고 햇빛에 말리기를 수 차례를 반복합니다. 이렇게 만든 추뇨의 저장기간은 20년까지도 가능하다고 하니, 잉카인들은 언제 닥칠지 모를 식량위기에 미리 대응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잉카인들의 감자는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1560년경부터 신대륙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선원들이 배에 싣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식량으로 사용하면서 스페인과 영국, 이탈리아, 독일 등의 유럽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먹고 남은 감자를 유럽인들은 땅에 심어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감자 전파 경로 (자료 : 이다미디어 블로그 재인용)
아일랜드 대기근 (Great Famine)
아일랜드 대기근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아일랜드 대기근은 1800년대에 아일랜드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사건으로 세 가지의 슬픈 우연이 겹쳐 발생했습니다.
감자는 1600년 대 이후 감자가 유럽에 본격적으로 재배되었으나, 초기에 유럽의 상류층은 감자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 농민 계층에서만 감자가 주로 소비되었습니다. 그러다 차츰 감자는 계층과 상관없이 유럽인들의 주요한 식재료가 되었습니다.
아일랜드(Ireland)는 유럽 영국 서쪽에 위치한 인구 499.5만의 섬나라입니다. 1600년대 남미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감자는 아일랜드인들의 주된 식량이 되었습니다. 이는 지리적으로 위도 53도 이상에 위치하고 있는 탓에 현대적인 농사기술이 없으면 식량 생산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데, 감자는 서늘한 곳에서도 잘 자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나마 생산된 식량도 1900년대까지 아일랜드가 영국의 식민지였던 탓에 영국으로부터 식량 수탈의 역사가 존재했기에 그나마 아일랜드에서도 잘 자라고 영국인들이 수탈해가지 않은 감자에 의지해 생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작농의 50%가 생존을 의해 감자에 거의 완전하게 의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슬픈 우연입니다.
1842년 미국 동부의 감자농장에서 ‘감자역병’이 시작되었으며, 이 역병은 순식간에 북미지역으로 확산된 뒤 선원들을 통해 유럽으로 몰려왔습니다. 감자역병균은 섭씨 10℃ 이상, 습도 75% 이상의 조건에서 쉽게 확산되는데, 감자역병은 감자의 줄기와 잎을 상하게 하고 땅속 덩이줄기를 썩게 합니다. 그런데 1845년 여름 아일랜드는 유난히 비가 잦았던 탓에 감자 역병이 돌기 최적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슬픈 우연입니다.
페루에는 감자의 품종이 2,500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반면, 아일랜드인들이 농사를 짓는 감자의 품종은 아일랜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두 품종의 감자(문헌에 따라서는 한 품종)가 있었다고 한다. 하필 이 품종은 1845년에 돌기 시작한 감자 역병에 극도로 취약한 품종이었습니다. 세 번째 슬픈 우연입니다.
이러한 세 번의 슬픈 우연이 겹치게 되어 아일랜드의 모든 감자가 감자 역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아일랜드는 1845년부터 1852년까지 7년 동안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200만 명을 잃었으며, 절반 이상은 굶어 죽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또한,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아일랜드인들이 고국을 뒤로한 채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이민길에 올랐습니다. 이때 사망과 이민으로 줄어든 아일랜드의 인구는 현재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 아일랜드 대기근에 대해서 다루었으니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감자는 서늘하고 약간 건조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식물입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에 따라 점차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감자 재배에 적합한 땅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난 포스팅 <줄어드는 산림, 변화하는 산림구조, 그리고 이를 경험할 미래세대>을 참고하면 쉽습니다.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로 산지의 남쪽은 계속 온도가 상승하고, 이를 피해 점차 산꼭대기로 올라가다가 결국에는 멸종하는 슬픈 현실입니다.
또한, 기온 상승에 따라 감자 잎의 광합성 능력도 떨어지고 줄기가 생성되지 않는 현상 등으로 인해 감자의 품질 역시 악화되고 있습니다. 페루 수도 리마에 위치한 국제감자센터(CIP, International Potato Center, https://cipotato.org/)는 지구의 기후위기가 계속될 경우 감자의 수확량이 2060년까지 32% 감소할 것으로 예측하였습니다.
페루에만 감자의 종류가 2,500종이 넘을 정도로 다양한 감자가 생산되는데, 과거에는 해발 3000m에서 수확되던 감자가 지난 친 일조량과 높아진 기온 등으로 해발 3000m 보다 높은 고도에서 재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졌다고 합니다. 다행히 국제 연구진은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도 시작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