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투발루
피지 수바에서 투발루행 국제선 비행기는 아침 9시에 출발하여, 11시 35분쯤 투발루 푸나푸티 공항에 도착했다. 투발루로 오는 비행기는 나름 국제선이기에 기내식으로 간단한 빵 하나를 주기는 하나 점심으로는 부족하다. 투발루에 도착한 시간이 점심시간이기는 하나, 점심보다는 우선 호텔 체크인과 유심 구입을 먼저 하고, 한국에 생존 소식을 알렸다. 나름 긴박한 일을 마치고 나니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호텔에서 5분 정도 거리의 Su’s Kitchen에 걸어갔다. 내가 시킨 메뉴는 햄치즈샌드위치와 콜라다. 막상 메뉴가 나오고 보니 실망했다. 내가 예상했던 샌드위치가 아니었다. 푹신한 빵, 그리고 야채와 햄, 치즈가 차곡차곡 샌드위치가 아니다. 기계로 누른 바삭한 빵 사이에 햄과 치즈가 쌓여있는 샌드위치였다. 내가 샌드위치의 뜻을 잘못 알고 있나? 다른 메뉴를 다시 고민하기에는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게 우선이었다.
한입을 먹고 멍 때리고 있는데 여성 한 분이 식당 앞에 자전거를 대고 식당으로 들어왔다. 들어왔다고 하기도 그렇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주방을 제외하고는 테이블이 3개 밖에 없는 삼면이 뻥 뚫린 간이 식당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4인석에 혼자 앉아있는 동양 남자인 나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앉아도 되나요?”
“네. 당연하죠. 앉으세요.”
그녀의 이름은 엘리사(Elisa)로 이탈리아 로마 출신이라 한다. 세계식량기구(FAO)에서 일하고 있는데, 현재는 기후변화적응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 투발루에 머문 지 2주 정도 되었다고 한다. 나는 나보다 투발루에 더 오래 머문 외국인 선배(?)에게 투발루에 대해 궁금한걸 물었다.
“외곽 섬으로 스노클링 갈 수 있다고 하는데, 여행사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때마침 그녀는 내일 투발루에서 만난 친구들과 외곽 섬으로 스노클링을 간다고 했다. 같이 가고 싶으면 내일 점심 12시까지 Morning Star Church 뒤에 있는 작은 선착장으로 오라고 했다. 비용은 1인당 비용은 30호주달러(약 3만 원)이라고 했다.
다음날 12시에 약속된 장소로 갔다. 투발루 선배인 엘리사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약속된 장소로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였다. 순차적으로 도착했기에 으레 하는 인사가 계속됐다. “안녕”, “어디에서 왔니?”, “반가워” 등의 인사 말이다.
우리 일행은 총 7명이었다. 호주에서 프로젝트 때문에 온 호주인 대학생 리자(Liza), 수영을 잘하지 못하나 리자를 따라온 프랑스인 대학생 이안(Ian), 대만 대사관 직원 대만인 루카스(Lucas), 대만-투발루 보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대만인 팅(Ting), 투발루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대만인 앤디(Andy), 그리고 엘리사와 나. 특히나 대만인 3명은 목적은 다르지만. 현재 투발루에 살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동양인 4명에 서양인 3명의 동양인이 더 많은 ‘글로벌 스노클링팀’이 결정되었다.
솔직히 배가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어느 섬으로 가는지 몰랐다. 도착해서 구글 지도를 켜서야, 이 섬이 푸나푸티 환초에서 가장 큰 섬인 퐁가페일로부터 남서쪽으로 10km 떨어진 작은 섬(islet) 페일파투(Falefatu)라는 것을 알았다.
작은 선착장을 떠난 우리 배는 페일파투를 향했다. 선착장에서 잠깐만 떠났는데도 아주 파란, 정말 생전 처음 보는 푸른빛의 바다가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투발루에 살고 있는 대만인 3명은 푸른 바다에 별로 감흥이 없었지만, 나를 포함한 4명은 “우와”를 외치며 연신 핸드폰 사진을 찍었다.
남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30분 정도 항해한 뒤 우리는 무인도인 페일파투에 하선했다. 지금부터 4시간 동안 자유롭게 섬과 바다를 즐기면 된다고 했다.
나는 우선 동쪽 바다인 대양 쪽으로 걸어가 봤다. 오늘은 날이 좋아서 파도가 높지는 않으나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죽은 산호초로 이루어진 돌무더기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다시 한번 카누 하나로 망망대해를 누빈 폴리네시안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눈이 찌푸려졌다. 수많은 플라스틱병이 남태평양의 외딴 무인도에까지 켜켜이 쌓여있었다. 최근에 유입된 것처럼 보이는 플라스틱병도 있지만, 남태평양의 뜨거운 자외선으로 인해 살짝 손만 닿아도 바로 부서질 듯한 플라스틱병도 많이 있었다. 누군가가 아무데나 버린 플라스틱병이 해류를 타고 여기 외딴섬까지 표류해서 온 것이다.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미세플라스틱(microplastic)이 되어 결국엔 바다와 바다 생태계를 오염시킬 것이다.
섬 동쪽을 산책하다가 낯선 섬에서 익숙한 녹색 병을 발견했다. “설마?”하며 익숙한 녹색병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다가갈수록 크기며 색깔이 더욱 또렸해졌다. 가까이 다가가 서서히 들어 올렸다.
과연 이 소주병은 어디서부터 흘러온 것일까? 한국인 방문객이 적은 투발루에 소주병을 들고, 게다가 여기 무인도까지 와서 버린 것인 아닐터이다. 누군가가 무단으로 버린 소주병이 어디에서인가부터 해류를 타고 여기까지 표류해서 온 것일 테다. 어디서 시작되었던 거친 해류에도 깨지지 않는 강한 소주병을 만드는 기술력은 확인한 셈이다. 한국인의 양심상 다른 플라스틱병은 몰라도 소주병은 페일파투에서 들고나와 본 섬에다가 버렸다.
섬 근처 얕은 물부터 천천히 들어갔다. 바닷물은 차갑기보단 오히려 따뜻했다. 온도계가 없어서 온도는 측정하지 못했지만 미온수에 가까운 온도였다. 서서히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점 산호초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예상하던 산호초가 아니었다. 죽어서 하얗게 변한 산호초 투성이었다. ‘백화현상(bleach)’이다.
투발루의 산호초는 점점 따뜻해지는 바닷물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죽은 것이다. 섬으로부터 대략 100m 지역까지 백화한 산호초의 주검만이 여기가 한때 산호초 지대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해수면 상승뿐 아니라 수온 상승도 투발루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바다 수영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스노클링 동료들이 있는 바깥쪽으로 조금씩 나도 나아갔다. 바깥쪽으로 나갈수록 몸으로 느끼기에도 확연히 수온이 낮아졌다. 아래만 보고 열심히 가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대규모의 파란색 산호초 군락이었다. 이 산호는 단풍돌산호과(Acroporidae)에 속하는 Acropora echinata라는 이름의 산호로 남태평양지역 널리 분포하는 산호초다.
페일파투 동해안의 풍광을 보고, 서해안의 산호초를 보다 보니 어느덧 4시간이 금방 흘러갔다. 수영을 잘했으면 더 먼 곳의 바다와 더 깊은 곳의 바다를 볼 수 있었겠지만, 이건 용기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아쉬움이 남지만, 안전을 선택했다. 이렇게 우리의 여정은 끝났다. 다만 우리들의 인연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투발루에 있는 내내 곳곳에서 이들을 마주쳤다.
Falefatu 가는 길
Falafatu 스노클링
Falafatu 스노클링 블루라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