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형 May 11. 2024

9.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안녕! 투발루


글 맨 마지막에 직접찍은 동영상 링크가 있습니다.


투발루의 종교 이야기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창세기》 9장 15절


투발루의 주민 중 93%가 개신교라고 한다. 나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투발루의 교회 문화를 알고 있어서 일요일에 숙소 주변에 있는 Morning Star Church로 갔다. 예배는 일요일 아침 10시부터 5개 교회에서 동시에 열린다. 예배가 열릴 시간에 교회 앞 도로는 통제된다. 도로는 주민들이 끌고 온 오토바이의 주차장으로 변한다.


Morning Star Church 주일 예배

9시 40분쯤 도착한 나는 조용히 교회 뒷문을 통해 들어갔다. 온도가 30도가 넘는 상황에서도 에어컨은커녕 좌우의 창문은 모두 열려 있고, 오롯이 천장의 선풍기만 돌아가고 있었다. 이 점만 빼고는 한국 교회와 비슷했다. 그리고 이렇게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하게 다린 흰색 셔츠와 넥타이까지 하고 온 남성과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온 분들이 많았다. 그만큼 예배를 신성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투발루어 찬송가이기에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한국의 찬송가가 그러하듯 찬송가를 처음 듣는 사람도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4/4박자 노래였다. 그리고 스크린에 가사가 나오고, 후렴구가 계속 반복되기에 따라 부르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나도 교인들과 같이 투발루어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스크린 속 찬송가 가사 중에 한 글자는 알아볼 수 있었다. 찬송가 가사에 대문자 I로 쓴 ‘Ie-su’라는 단어가 계속 나오는데, 이 단어는 예수님을 뜻하는 듯했다.



“O..Ie..-su.. la-va le po-ga..-i”

“Te^i-goa o Ie-su....,”


10시가 되자 에메랄드빛 정장을 깔끔하게 차려입으신 목사님이 들어오셨다. 찬송가와 마찬가지로 목사님 말씀도 당연히 투발루어로 했다. 나는 당연히 찬송가처럼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목사님의 말씀에 ‘예수’, ‘요한’, ‘아멘’과 같은 고유명사 몇 가지만 알아들었다.


투발루는 인구의 93%가 개신교 다른 나라와 다른 특징이 있다. 첫째, 예배가 열리는 일요일에는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 마트가 문을 닫고, 잡화점도 문을 닫고, 식당이 문을 닫는다. 그렇기에 투발루 여행자는 일요일에 마실 물 같은 생필품은 최소한 토요일에 사놔야 한다. 단, 호텔에서는 식사와 물, 맥주는 살 수 있다.


둘째, 매일 저녁에 15분간 예배 시간(devotion time)이 있다. 저녁 6시 45분에 동네에 종이 울린다.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다. 예배 시간이 시작되면 모든 동작을 멈춰야 한다. 우리네 민방위 훈련과 같이 오토바이 운전을 하던 사람은 오토바이를 멈춰야 하고, 걸어가던 사람은 그 자리에 멈춰야 한다. 15분간 말이다. 


내가 투발루에 있는 동안 내 머리를 떠나지 않은 고민이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날이 갈수록 더욱 더워지고, 해수면 상승으로 섬이 침수 피해받는 상황에서 “왜 주민들은 이렇게 태평한가?”라는 질문이다. 호텔에서 만난 국제기구에 속한 외국 사람들은 투발루에 대한 걱정뿐인데, “왜 주민들은 이렇게 태평한가?”라는 질문이다. 투발루 공공기관 담당자를 만났을 때 그는 투발루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데, “왜 주민들은 이렇게 태평한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몇몇 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우선 2006년에 발간된 마크 라이너스의 《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에서 동네 주민 호세아의 집에 가서 호세아에게 들은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과학자들이 지대 낮은 이곳 섬들이 모두 물에 잠긴다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너무 놀랐지요. 그렇지만 난 믿을 수가 없어요.” 그렇게 선언하더니 그는 내 앞에서 성경을 휘두르며 창세기의 일부를 번역했다. “오직 하느님만이 세상을 물에 잠기게 하실 수 있다. 하느님은 노아에게 약속하시기를, 이제 더는 홍수가 없을 것이라 하셨다. 그래서 무지개를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무지개를 볼 때마다 하느님이 노아에게 하신 언약을 알 수 있다.” 그는 사람 좋게 싱글싱글 웃더니 말했다. “난 하느님을 믿지 과학자를 믿지 않아요.”

출처 : 마크 라이너스 《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



2007년에 조선일보의 조정훈 기자는 ‘섬나라’ 투발루에 가보다’라는 특집 기사를 위해 투발루에 방문한다. 이때 투발루 주민을 만나 인터뷰했다.


“우리 투발루 사람들은 99%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입니다. 창세기 9장 15절에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라는 구절이 있지요. 대부분 투발루인들은 노아의 방주 사건 이후 다시는 물의 심판이 없을 것이라는 언약을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겁니다.”

출처 : 조정훈 기자, ''섬나라' 투발루에 가보다'


투발루 주민의 93%가 기독교 신자이다. 매주 일요일 10시에는 교회에 가고, 매일 저녁 6시 45분에는 예배를 드린다. 기독교에서 운영하는 초등학교도 다닌다. 주민들의 기독교 신앙이 깊은 국가이다. 성경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주민들은 과학보다는 종교를 더욱 신뢰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이들이 과학보다는 종교를 선택한 것이 극한의 두려움에 몰린 사람의 회피성향의 발현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이방인이자, 여행자인 내가 어떻게 일주일 만에 투발루 주민들의 생각을 모두 알겠는가. 절대로 다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왜 주민들은 이렇게 태평한가?”에 최종적인 결론은 아직 저 멀리에 남겨두었다. 



음악과 춤은 어디에나



나는 왕관을 쓰고 우리의 투발루를 위해 춤추고 노래 부를 거야
조민희, 《우리의 섬 투발루》


아침부터 숙소가 번잡하다. 여느 아침과 같이 30℃의 기온을 뚫고 조식을 먹기 위해 호텔 야외의 중앙 식당으로 갔다. 조식을 먹는 사이 야외 공간에서 직원들이 무엇을 하는지 살펴봤다. 여자 직원들은 기둥을 하얀색, 노란색, 빨간색 천으로 기둥을 감싼다. 메인무대에는 하얀색 테이블이 플로어를 바라보고 길게 깔린다. 오늘 저녁에 대대적인 잔치가 있는 것 같다.


저녁에서야 이 행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쌍둥이 자매 페테리(Peteli)와 마나이마(Manaima)의 50번째 생일 잔치였다. 생일 잔치의 시작은 춤으로부터 시작한다. 투발루의 전통음악이 나오고 여성들이 나와 단체 춤을 춘다. 화관을 쓰고 노란색 남방을 입은 아저씨가 투발루어로 아주 흥겹게 사회를 보고, 그 사이 참가자들은 뷔페를 먹는다.


쌍둥이 자매의 50번째 생일 전단지 (출처 : 푸나푸티라군호텔 페이스북)


4인조 밴드가 노래를 부를 사이 사람들은 줄을 서서 준비해 간 선물을 주면서 깊은 포옹을 한다. 손님도 많고, 일일이 선물을 주느라 선물 주는 시간만 30분이 넘은 것 같았다. 이윽고 조명이 꺼지고 하얀색 스크린에 동영상이 나온다. 아마도 호주나 뉴질랜드에 사는 가족이나 사촌 같은 분들의 영상 편지다. 당연히 투발루 말로 하기에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당연히 50번째 생일의 축하 메시지일 것이다. 영상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 쌍둥이 자매가 울기 시작한다.


이제부턴 진짜 댄스 타임이다. 메인무대에 전통 복장을 입고 나와 전통춤을 준다. 느리면서도 딱딱 맞는 동작과 “어라?”라고 할 정도로 춤선이 곱다. 그리고 주인공 자매와 가족들이 화답의 의미로 ‘답춤’도 춘다. 끝날 듯하면서도 잠깐의 브레이크타임을 거치고 춤만 1시간 정도 춘다. 이방인인 나는 최대한 그들의 행사에 해가 되지 않는 경계 내에서 생일 잔치 구경을 했다. 


투발루에도 다양한 기념일이 있다. 가장 중요한 날 중 하나로 투발루 데이즈(Tuvalu Days)가 있다. 1978년 10월 1일 투발루의 독립을 기념하는 ‘독립기념일’로 매년 10월 1일이다. 매년 10월 1일에 투발루에는 대대적인 행사가 열린다. 푸나푸티 국제공항 활주로를 메인무대로 하여 공식적인 퍼레이드와 춤 공연을 볼 수 있다. 


특히나 독립기념일에는 전통춤 행사가 열린다. 투발루의 모든 섬과 환초의 전통춤 공연자들이 푸나푸티 환초로 모인다. 이들은 한데 모여 형형색색의 전통춤 복장을 입고 춤을 춘다.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공연하는데, 이때는 어느 지역인지가 중요하지 않다. 다 같이 노래를 목청이 터질 듯이 부르고 다 같이 춤을 춘다.


투발루 독립기념일 기념 축제 ⓒ Tuvalu TV


Tuvalu 45th Independence Day Fatele 2023


Niutao Hall Opening 2023


투발루 주민들은 흥이 넘치는 민족 같다. 국경일이나 기념일에는 전통음악을 틀고 전통춤을 춘다. 마을회관과 같이 건물이 완성되거나, 외국의 중요한 사람이 방문할 때도 전통음악을 틀고 전통춤을 춘다. 그리고 쌍둥이 자매의 생일 잔치처럼 지인의 생일 잔치에서도 전통춤을 준다. 춤도 대충 추는 것이 아니라 전통 복장을 제대로 갖추고 춘다.


투발루의 전통적인 노래는 짧은 시가 반복되는 형태를 가진다. 요즘에는 반주는 녹음파일을 틀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반주는 사람들이 한편에 앉아서 박수를 치거나, 스테인리스로 된 큰 대야를 엎어 놓고 대야를 막대기로 쳐서 타악기 소리를 낸다. 


투발루 여성 전통 춤 복장 우표







Morning Star Church 주일예배


쌍둥이 자매 생일 춤 1


쌍둥이 자매 생일 춤 2


쌍둥이 자매 생일 춤 3



매거진의 이전글 8. 요람에서 무덤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