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투발루에 대한 10번에 걸친 후기 마지막이다. 투발루에 다녀온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투발루에서의 경험을 잊지 않기 위해 투발루에 대한 경험담을 최대한 빨리 기록에 남겼다. 블로그와 브런치에는 투발루 후기를 제한적이나 여행자를 위한 후기를 남긴다.
혹시나 추가로 궁금하거나 한 사항은 climateinlife@gmail.com로 연락주시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듯 정보를 제공할것이다.
그리고 투발루에 대한 기록을 책으로 남기는 작업도 거의 마무리 되었다. 이제 투발루에 대한 초고를 들고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려고 한다. 이 글을 쓰는 순간은 2024년 5월 18일인데, 조만간 투발루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자 하는 나의 뜻에 동의하는 출판사를 통해 투발루 주민들의 삶이 담긴 책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기후피해의 최전선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남태평양은 일본과 연합군의 주요한 전쟁지역 중 하나였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남태평양 주민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린다. 미국은 일본의 확장을 막기 위해 남태평양의 주요 섬에 비행장을 건설했다.
투발루도 그중 하나다. 1942년 11월 2일 미국 해병대는 푸나푸티에 상륙했다. 그리고 해군 건설 대대(Naval Construction Battalion)는 푸나푸티, 나누메아, 누쿠페타우에 비행장을 건설했다. 미군이 투발루를 미군 기지로 선택한 이유는 투발루에 호주와 하와이 중간에서 거점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발루의 미군 기지는 남태평양의 환초를 두고 일본과의 격전을 벌였던 1943년 11월의 타라와 전투(Battle of Tarawa)와 마킨 전투(Battle of Makin)를 준비하는 동안 주둔지 역할을 했다.
푸나푸티 환초의 비행장은 퐁가페일 섬 중앙에 있다. 원래 이 지역은 타푸아(Tafua)라는 연못이었는데, 1942년에 미군이 연못을 매립해 비행장을 건설했다. 그 결과 섬의 단면은 비행장을 중심으로 섬이 분지형 구조를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섬에 비가 많이 내리면 빗물이 분지 안쪽으로 모인다.
퐁가페일 섬 단면도 (출처 : 구성욱, 2019)
전날 밤사이 세차게 비가 내렸다.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비가 창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아침에 동네를 나가보니 밤사이 내린 비 때문에, 섬 중앙에 있는 활주로에 물웅덩이가 많이 생겼다. 지형의 영향이 큰 결과다. 그리고 주민들이 사는 주택 앞에 물웅덩이가 많이 생겼다. 물웅덩이 때문에 집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익숙한 듯했다. 아이들은 첨벙첨벙하며 물웅덩이를 헤집고 도로로 나오고, 어른들은 물웅덩이를 밟으며 오토바이를 끌고 도로로 나온다.
활주로 옆 공터의 물웅덩이에서 노는 아이들과 들개. 저 멀리 미리 만들어 놓은 물탱크와 배구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내리는 빗물뿐 아니라 조수(潮水)의 차이, 특히나 밀물의 피해가 심각하다. 매년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는 조수간만의 차이로 발생하는 파도인 ‘킹 타이드(king tide)’의 피해가 크다. 이 시기는 해수면의 높이가 3m 이상 상승하여 높은 파도가 해안가를 넘어 집안까지 바닷물이 들어오기도 한다. 평균 해발고도가 2m밖에 되지 않는 나라에서 3m 높이의 킹 타이드는 위협을 넘어 생사의 문제다.
킹 타이드는 투발루를 뒤집어 놓는다. 조류를 타고 쓰레기가 떠다니면서 마을을 더럽히고, 해안가의 야자수는 뽑혀 처참하게 뿌리를 드러낸다. 제방은 유실되고, 도로는 침수되고, 전기도 끊기기도 한다. 매년 발생하는 킹 타이드는 토양의 염분을 높여 제대로 된 농사는 꿈도 꿀 수 없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피해가 미래에는 더욱 심해질 것이다.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점차 해안가와 주택가가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킹 타이드는 이제 집 바로 옆에서 발생하는 꼴이다.
Extreme king tide recorded on Vaitupu -the largest atoll in Tuvalu
‘King tides’ sink Tuvalu capital
투발루의 해수면은 현재 매년 5mm씩 오르고 있다. 이미 30년 전에 비해서 해수면이 15cm 높아졌다. 이 정도 속도라면 2100년이면 투발루 대부분의 섬이 해수면 아래로 잠길 것이다. 해수면 상승은 침수를 넘어, 섬을 집어삼키고 있다.
푸나푸티 환초의 서쪽 푸나푸티 보전 지역 내에는 테푸카 빌리빌리(Tepuka Vili Vili) 혹은 테푸카 사빌리빌리(Tepuka Savilivili)라는 작은 산호섬의 무리가 있다. 아니 있었다. 약 30년 전에는 1990년에는 테니스 코트 크기의 섬에 모래와 코코넛 나무도 있었지만, 해수면이 점차 상승해서 이제 섬의 윗부분만 간당간당 해수면 위로 드러내고 있다. 어떤 작은 섬은 이미 해수면 아래로 잠겨 이름만 남아 있다. 그래서 난 ‘무리가 있다. 아니 있었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기후변화 피해의 증거를 해안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해안가에는 판다누스 나무나 코코넛 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만조 때가 되면 바닷물이 점차 육지로 다가온다. 파도의 물결은 점차 나무의 뿌리 근처에까지 다가온다. 그리고 물결은 들락날락 반복하면서 서서히 나무뿌리에 붙어 있는 토양을 야금야금 끌고 간다.
투발루의 토양의 시간 축적의 결과물이다. 아주 먼 옛날 산호초 섬이 만들어지고, 우연히 바닷물을 표류하던 코코넛 열매가 산호섬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코넛 열매와 나뭇잎이 한해, 두해... 유기물이 쌓이고 썩기를 반복해 지금의 토양을 이루었다. 그렇기에 투발루의 토양은 아주 오랫동안 시간이 만든 결과물이다. 그런데 해수면 상승 속도가 너무 빠르다. 토양에 유기물이 축적되는 시간보다, 토양이 침식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그 결과 해안가에는 아슬아슬하게 땅을 붙잡고 있는 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살아보겠다고 온 힘을 다해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안쓰럽기까지 하다. 투발루는 지리적 특성상, 지형적 특성상 기후변화 피해로부터 도망갈 수 없다. 투발루의 다른 섬에서 기후변화의 피해를 피해 기후난민이 되어 푸나푸티로 이주해 올 수는 있으나, 피해의 속도를 잠깐 늦췄을 뿐 푸나푸티의 미래도 이미 예정되어 있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아주 적게 준 나라임에도 이들을 기후변화의 영향을 오롯이 받고 있다.
그래도 살아가야 하니깐
투발루는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투발루를 지키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일하고 있다.
우선 새로운 땅을 만들고 있다. 해안가의 땅을 매립해 땅을 넓혀서 주택가와 해안선이 멀어지게 만들어 침수나 연안 침식 문제를 막는 것이다. 유엔개발계획(UNDP,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은 투발루에서 '투발루 해안 정비 프로젝트(TCAP, Tuvalu Coastal Adaptation Project)’를 시행하고 있다. 투발루 정부 청사 근처부터 시작하여 환초 안쪽 석호의 일부를 매립하는 계획이다. UNDP의 TCAP은 2017년 8월부터 시작해 7년 동안 지속될 것이다. 자금은 우리나라 송도에 있는 국제기구인 녹색기후기금(GCF, Green Climate Fund)에서 3,600만 달러를 내고, 투발루 정부에서 290만 달러를 낸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매립하는 땅은 길이가 약 730m, 너비가 100m, 넓이가 3km2정도 된다고 한다.
환초섬도 보호하면서 거주지로 쓸 수 있는 땅을 늘리는 계획이다. 매립을 위해 모래는 석호 안쪽에서 준설선이 모래를 퍼내어 해안가를 매립하고 있다. 멀리서 재료를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 해안 정비 사업지는 해안선으로부터 100m 너비를 가지고 있다. 매립 이전에는 주택들이 해안선에 붙어 있었는데, 이제는 해안선이 주택가로부터 100m 정도 뒤로 물러나게 됐다. 그리고 사업지의 바닷가 쪽 끝은 해안선으로부터 높이가 2m나 된다. 해안 정비 사업지 덕분에 해안선의 끝도 멀어졌고, 2m나 되는 제방이 생겨 킹 타이드가 몰려와도 침수의 염려는 적어진 것이다. 해수면 상승이라는 원인을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살 수 있는 환경이 됐다.
UNDP 주도의 해안선 정비 사업지 (출처 : HALL)
아래쪽 끝에 북쪽 선착장과 교회가 보이고, 위쪽 끝에 남쪽 윤슬이 보이는 수영장과 푸나푸티 라군 호텔이 보인다
Tuvalu Coastal Adaptation: Integrating modern technology and traditional knowledge
투발루는 기후변화로 인해 해수면 상승 위협은 피할 수 없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후난민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투발루 정부는 자국의 국민을 다른 나라로 이주시키려 한다. 2023년 10월 호주와 투발루 정부와 팔레필리(Falepili) 조약을 체결했다. 팔레필리는 투발루어로 ‘이웃애, 배려, 상호존중’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조약의 요지는 매년 280명씩 투발루 국민이 호주에서 일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호주가 투발루 국민에게 특별비자를 발급해 준다는 것이다. 투발루 인구가 10,597명인 것을 감안할 때 38년이 지나면 투발루의 모든 인구가 호주로 이주하게 된다. 모든 영토가 2100년이면 수몰될 것이라는 전망 아래에서 투발루는 영토가 수몰되기 전에 이미 사람이 없는 무인도가 된다. 버려진 섬이 된다.
팔레필리(Falepili) 조약을 체결한 호주와 투발루 두 정상 (출처 : 연합뉴스)
한편으로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국가를 기억하기 위해 ‘디지털 국가’를 수립하려고 한다. 2022년 11월에 투발루의 사이먼 코페 외교부 장관은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Sharm el-Sheikh)에 열린 제27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온라인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 자리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부터 투발루의 유산을 보호할 대책 중 하나로 온라인 가상 국가를 제안했다. 그의 생각은 온라인의 메타버스 공간에서 투발루의 역사, 문화와 가치를 그대로 담아낸 디지털 국가를 만들자는 계획이다. 2023년 3월에 한국을 방문한 사이먼 코페 장관은 그 연장선상에서 국내 메타버스 전문기업과 만나 디지털 국가 조성에 관한 논의도 진행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투발루인의 조상은 남태평양 망망대해에 외딴섬인 투발루에 터전을 잡고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발루는 1978년에서야 독립 국가가 되었다. 조상들이 살기 시작한 지 2000년 만에, 국가로 인정받은 지 50년도 안 되어 국가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은 마음은 어떨까? 자연재해가 발생해서 일시적으로 떠난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 자연재해가 복구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투발루는 수몰되어 다시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땅이 되어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적으로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나라가 투발루를 돕고 있다. 참된 사죄라고 봐야 하나? 그러기엔 아직까지 소위 선진국의 지원이 너무 적은 것은 아닐까? 많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