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엄마 사람이 되어야지

감정을 배워가는 아이와 나

by 자유로운 풀풀

다섯 살에서 여섯 살이 되어가는 아이들.

두 딸의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상황에 따른 행동 양식들을 분류하며, 직접 실행에 옮겨 시행착오를 겪어가는 중이다. 자신만의 세계가 확장되는 만큼 자의식이 강해지고 감정들이 세분화되고 있다. 좋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보다 직설적인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아이들이 아주 변덕스럽다. 하늘에 바람과 구름이 오가는 것보다 더 변화무쌍하다. 아이들 마음에 사계절의 하늘이 분 간격으로 바뀌는 것 같다. 너무 좋아서 깔깔거리다가도, 홱 돌아서서 삐친다. 언제 그랬냐는 듯 시답잖은 화해로 화기애애하다가 엄마에게로 화살을 돌려 따지고 든다.


약간의 투닥거림, 기분 상함 정도야 그럴 수 있음으로 넘기면 된다. 문제는 들끓어 폭발하는 감정이다. 언짢고 불편한 기분들이 모이고 모여서 눈덩이처럼 커져 터져 버릴 때, 성인인 나 조차도 다루기가 어려운 감정의 덩어리를 아이들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억울함, 무서움, 슬픔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 것일까.


오늘, 아이들이 고성을 지르며 화를 냈다.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아이들의 감정 바구니가 가득 채워진 것이다. 억울함, 슬픔, 좌절감, 실망감, 화가 차곡차곡 쌓였던 바구니가 사소한 이유로 팡 뒤집어져버렸다. 가득 담겨있던 마음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눈에선 레이저가 쏟아져 나오고, 고함을 마구 질렀다.


쌓여있던 마음의 찌꺼기들을 온몸으로 내뱉는 아이들. 자리를 지키는 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함께 격해져서 맞고함을 지르며 아이를 윽박지르지 않기 위해, '30분만 버티자, 20분만 버티자, 5분만 버티자'를 되뇌며 시각을 체크했다.


타인을 물리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혼자만의 샤우팅과 발 동동거림으로 화를 표출한 아이들은 "안아줘!"를 표현했다. 내 몸의 반의 반인 아이들을 품에 안고 등을 쓸어내려주었다. 훌쩍이며 숨을 고르는 아이들에게서 고소하고 짠 냄새가 났다.




궁금했다.

어른들이야 담배, 술, 커피, 수다, 여가활동 등으로 스트레스 수치를 낮추고, 격한 감정들을 안전한 누군가에게 쏟아낸다고 하지만,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아이들이 무슨 스트레스가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돈을 벌기나 해, 공부를 하기를 해,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게 최고인 아이들이 뭔 걱정이 있겠냐고 말이다.


두 아이를 유심히 관찰해본 결과, 아이들도 걱정이 참 많다. 긴장도 많이 한다. 기관에 가서 단체 생활에 어울릴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힘들다. "이렇게 하면 친구들이 예쁘다고 할까? 유치원에서는 왜 뛰면 안 되는 걸까? 산책할 때 손잡고 갈 짝은 누가 될까?" 등등등.


아이들에겐 매 순간이 새롭다. 매 순간 새로운 방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행동과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워간다. 사회적인 규범, 관계망의 예절 속에서 자신의 욕구를 조절해 간다. 나와 타인은 다르다는 사실을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간다. 그냥 되는 것은 없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왜 그런 거지?'란 질문과 마주하며 사회생활을 배워가는 중이다.


아이들도 어른 못지않게 스트레스가 많다. 해소하지 못한 감정의 쓰레기들이 마음에 차곡히 쌓여가고 있다. '괜찮다, 별거 아니다'로 아이들의 고유한 감정을 축소시켜버리거나, '뚝, 그만하면 됐지'로 비져 나오는 감정을 틀어막아버리는 것은 위험하다. 어떤 방법으로든 불편한 마음을 탈탈 털어버릴 창구가 필요하다.


감정은 지나가는 것이다.


울고 나면 시원해지고, 고함을 지르고 나면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것처럼 아픈 감정은 온몸을 훑고 지나간다. 어떤 책에서는 '기가 막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흘러가야 할 감정을 습관처럼 억누르기만 하면, 몸의 어느 지점에 찌꺼기가 쌓이게 되고 결국 통하지 못하고 막힌다는 말이다. 감정이 잘 흘러 나의 신체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한다면, 몸도 더 건강해진다. 스트레스 수치를 낮추는 것이 건강관리의 기본이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감정이 지나갈 때 고운 바람처럼 흩어지면 좋으련만. 어떤 감정의 덩어리는 날카로운 칼바람의 모양을 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슬픔, 억울함, 고통 등의 덩어리들이 반죽처럼 뒤섞여 감정의 주인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 모양으로 한꺼번에 터져 나온다.


성인이라면 보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배출해낼 테지만, 아이들은 입장이 다르다. 아이들이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워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무엇 때문에 눈물이 터지는지, 고함을 지르고 싶은지 구체적인 언어로 세분화를 시켜줄 상대가 필요하다. '네가 지금 놀이터를 가고 싶은데, 가지 못하니 답답하고, 막막해서 화가 났구나. 왜 놀이터를 갈 수 없는지 받아들이기가 어렵구나.' 커다란 눈덩이로 부피만 커져가는 감정의 덩어리를 잘게 쪼개어 비추어주는 언어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구체화된 감정들이 지나가고, 텅 빈 마음이 남는다는 것을 함께 경험해 줄 안전한 사람이 필요하다. 타인과 자신을 공격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어떠한 감정도 중립의 상태로 통과될 수 있다. 좋고 싫음은 판단이다. 판단대로 감정을 조절하려 든다면 그것은 감정이 아닌 논리다. 감정이 판단과 비난이 아닌 안전한 출입문을 통해 빠져나가는 경험. 이를 통해 아이는 죄책감 없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수용하고 흘려보내는 법을 알아갈 것이다.




나는 선택했다.

'아이들이 마음을 툭 털어낼 안전한 창구'가 되어야지.


처음도 쉽지 않았고, 지금도 쉽지 않다. 매 순간 아이들과 함께 '감정'이라는 실체를 배워가는 느낌이다. 아이의 감정을 '안돼'로 눌러버리고 싶은 욕구는 '내 안에 억눌러버린 슬픔이요 화'라는 사실을 마주한다. 명백한 사실 앞에서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나의 감정'과 '회오리바람처럼 휩쓸어버리는 아이의 감정'을 분리해야만 했다. '만만한 엄마'와 '안전한 엄마'는 한 끝 차이임을 절절히 깨달아간다. 아이와 함께 나 또한 뼈 때리는 시행착오를 통과한다.


글을 쓰며 다짐한다.

단단한 엄마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자신과 아이를 독립적인 존재로 존중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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