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그럴 때가 있어.

아이의 감정 수용하기

by 자유로운 풀풀

피로가 겹치는 저녁 시간.


은이가 사소한 일로 화가 났다. 연이가 양치질을 먼저 했기 때문이다. 양치질을 누가 먼저 하느냐가 뭔 대수냐 싶겠지만, 다섯 살 쌍둥이 자매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다. 더구나 은이는 양치질, 세수와 같은 일들을 먼저 한다는데 만족을 느끼는 아이이기도 하다.


욕실 문을 막아서고 비켜주지 않는 은이. 입을 앙 다물고 절대 비켜주지 않는 은이에게 잔소리 폭격을 날렸다. '화가 나도 연이에게 그러지 마라, 연이는 먼저 보내라'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다가 서로 감정만 상하려는 찰나, 먼저 양치질을 끝낸 연이를 번쩍 들어 안아 남편에게 인계했다.


문 틀에 양 팔을 대자로 뻗어 꾹 누른 채,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 오른 은이. 뭐가 그리 속상했을까, 그게 이리도 화를 낼 일인가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답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주 앉아 물끄러미 은이를 바라봤다. 고작 다섯 살 된 아이에게 감정대로 쏟아내 버린 말들이 미안했다. 슬며시 다가가 은이를 안았다. 아이의 작은 몸을 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괜찮아, 그럴 때가 있어.


여전히 양 팔을 문틀에 바짝 붙이고 서 있는 은이. 흘러내리는 눈물방울을 내 어깨에 슥슥 닦아냈다. 품에 안긴 아이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내비쳤다. 아이의 화가 지나갔다.




나도 그렇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아이가 날 부르는 목소리에도 화가 치솟고, 기분이 좀 괜찮을 때는 아이의 부름에 세상 편안한 목소리로 응답했다. 괜찮을 때는 다행이지만, 화가 나버렸을 때는 참 곤란하다. 화라는 감정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몰라 눈앞에 있는 아이에게 쏟아버릴 때가 많았다. "엄마 저녁 준비하잖아. 왜 자꾸 불러.", "그러게 엄마가 옷 따뜻하게 입으랬잖아. 왜 잠바도 안 입고 나와서 이러는 거야."라며 '엄마 부른 죄'를 아이에게 덮어 씌웠다.


아이는 그런 엄마의 울퉁불퉁함을 견뎌냈다. 엄마의 터무니없는 화, 일관성 없는 감정을 받아낸 아이. '엄마니까'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변덕스러운 나를 용서한다. '엄마가 아까 너무 피곤해서 고함을 질렀어. 미안해.'라는 사과에 '괜찮아, 엄마. 사랑해.'라며 뽀뽀를 해 주었다.


반대의 상황에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했는가.

아이가 기분이 좋지 않아, 작은 일에도 화를 막무가내로 내고 있다. 화를 쏟아내는 아이에게 난 뭐라고 말해주었던가.


참 이기적이었다. '좋은 엄마, 올바른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서 아이의 감정, 욕구를 잘못된 것으로 치부해버렸다.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불편하잖아. 여기선 네가 잘못한 거야.'라며 아이의 행동만을 보고 판단하며, 훈계했다. '감정을 허용하되 행동에는 제한을 두라'라고 하지만, '감정은 무시하고 행동에만 제한을 두려 했던 순간'이 정말 많았다.




문을 막아선 은이의 마음. 장난과 원망이 반반 섞인 행동. 너무 졸린 다섯 살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벅찼을 감정들. 엎질러져버린 물을 보며 더 당혹스러웠을 아이.


은이가 원한 것은 '아무도 욕실에서 나가지 마'가 아니라, '내가 먼저 양치질하고 빨리 자고 싶어, 나 너무 피곤하단 말이야.'가 아니었을까?


아이의 행동 이면의 감정들.

'그럴 때가 있음'으로 보아 넘기는 보다 넓은 엄마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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