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책이 많다. 흔히들 사용하는 3 X 5 책장 4개 가득 아이들 책이 꽂혀있다. 며칠 전 아이들 전집 5질을 버리고 남은 양이니 많은 편이 분명하다. (물론 이보다 더 많은 분들도 계실 거다. 아이 책 시장은 무궁무진하니까)
아이들 책이 이렇게 책장 가득 꽂혀있고, 아직 다 읽지 못한 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읽을 책이 없다. 아이들 입장에서야 충분한 양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책을 읽어주는 엄마 입장에서는 약간 부족하다.
오늘 나는 아이들이 잠든 후, 아이들 책을 구입했다. 아이들 책을 구입하는 것은 충동구매도 포함되어 있지만, 몇 가지 질문을 통해 자기 합리화의 단계를 꼭 거친다. 이 과정마저도 없었다면, 난 매주 전집 한 질을 샀으리라.
아이 책을 구입하기 전 합리적인 구매를 위한 절차는 이러하다.
첫째,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새로운 책이 한 달 이내에 들어왔는가?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가', '한 달 이내인가'.
즉, 한 달 이내에 들인 책이 있지만 아이들 반응이 시큰둥하다면 예산 안에서 적절한 볼륨의 전집을 새롭게 구매할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이 흥미롭게 보는 책들이 있다 할지라도 새로운 책을 들인 시기가 이미 두 달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면 새로운 책을 집에 들일 수 있다.
아주 어릴 때에야 반복을 참으로 많이 하여 한 두 질 만으로도 몇 달을 보낼 수 있었다. 새 책 낯가림이라는 것도 있어서 새 책이 오면 오히려 내팽개치기까지 하였으니.
아이가 다섯 살이 되니 상화이 좀 달라졌다. 좋아하는 책의 취향이 뚜렷해졌지만, 의외의 코드에서 깔깔거리고 집중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취향이 바뀌었나 싶어 그에 맞춰 확 들이밀면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기존의 책들만 펼쳐본다.
핑크만 좋아한다 생각하고 공주 책만 들였는데, 구석에 짱 박힌 괴물 책을 수시로 펼쳐보는 희한한 상황. 이럴 때 '드디어 핑크를 벗어났구나!' 쾌재를 부르며 괴물 책을 왕창 주문하면 다시 괴물은 팽 당하는 낭패를 보게 되는 기막힌 상황.
아이의 메인 주제는 기둥으로 우뚝 서 있고, 흥미는 수시로 옮겨간다.
그렇기에 좋아할 만한 새로운 책들을 새 물 따르듯 채워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한 달 예산을 심하게 초과하지는 않았는가?
한 달 예산이 10만 원이라면, 15만 원까지는 너그럽게 허용하는 편이다. 원서나 단행본 또는 신간 전집 구입으로 예산을 두배 이상 넘겼다면? 눈물을 머금고 지름신을 물리친다.
단행본은 한 권의 가격이 만원을 넘긴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어여쁜 그림책을 출간하는 작가님들의 노고에 비하면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다. 하지만 그런 단행본을 한 달에 서른 권을 구입한다면? 음. 통장 잔고가 쭈욱 쭉 빠져나간다.
영어 원서 또한 마찬가지다. 원서를 구입하는 경로가 참 편리해졌다. 선택의 폭이 다양해졌고, 양질의 그림책 원서들이 참으로 많다. 하지만 이 또한 한 달에 서른 권을 구입한다면? 음. 통장 잔고는 지하를 뚫고 내려간다.
그렇기에 한 달 책 구입 예산 안에서 적절한 융통성을 발휘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사고 싶다고, 읽히고 싶다고 왕창 들이면 맹물에도 체한다.
셋째, 경제적인 결정인가, 필요한 결정인가?
대부분의 전집은 경제적으로 구입한다. 권 당 천 원 즈음의 중고 전집으로 들인다. 절판되었거나, 개정 전이라도 개의치 않는다. 빛바램, 맨 뒷 장 독후활동 낙서도 상관없다. 60권 중 한 두 권이 분실되어 더 저렴하고 깨끗한 전집이라면 즉시 구매한다. 매달 꾸준히 들이는 책의 양이 있으니 약간의 흠은 경제적인 보탬이다.
필요에 의해 특별히 구매하는 책은 좀 다르다. 우리 가족이 처한 상황, 아이가 겪게 될 새로운 일들을 책을 통해 미리 간접 경험해 주어야 할 때. 꼭 개선되었으면 하는 아이의 생활 습관을 책을 통해 알려주고 싶을 때. 아이가 특정한 관심사에 집중할 때. 책이라는 도구로 특별하고 상세한 도움을 얻고 싶을 때는 전집이 아닌 단행본을 구입한다.
올해 2월, 어린이집 첫 등원을 한 달 앞둔 시기. '유치원'이라는 키워드의 어린이 단행본을 25권을 주문했다. 25권은 유치원과 관련된 다양한 상황들을 보여주었다. 유치원에 가기 싫은 아이, 유치원이 너무 좋은 아이, 친구 관계가 어려운 아이, 친구를 너무 사랑하는 아이 등등. 구매 버튼을 클릭하며 지갑이 텅 비는 소리에 속이 쓰렸지만, 기관 생활에 호기심을 가지며 '나도 유치원 갈래'라고 외치는 아이의 모습에 감동의 쓰나미가 몰려왔다.
아이 책을 구입하는 나의 기준은 어디에?
책 육아를 좀 한다는 선배맘들의 육아서를 읽다 보면, 책을 꾸준히 많이 들이라는 입장과 단행본이라도 양질의 책을 접하게 하라는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혹자는 전집과 단행본을 적절히 들이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전집을 구매하여 아이 취향을 파악한 뒤, 그에 맞는 단행본을 구입하라고 조언한다.
신간이 좋으냐 구간이 좋으냐, 전집이냐 단행본이냐의 언쟁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남들이 다 좋다고 말하는 책이 내 아이가 좋아할지는 미지수이고, 남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책을 내 아이가 너무나도 좋아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전집 안에서 보석 같은 이야기를 만날 수도 있고, 열성을 다해 고른 단행본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는 일이다.
옷을 살 때 이것저것 입어보고, 실패도 해 보며 나만의 취향을 찾아가듯.
아이의 책(내 책도 마찬가지)도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팽도 당해보며 아이의 취향과 엄마의 욕망을 적절히 조절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 내가 구입한 책은?
가벼운 마음으로 들여서 팽 당해도 눈물 흘리지 않을, 재미나게 읽기 좋은 인성 동화 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