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스물셋! 엄마 나 잘했지!

사실이냐 뉘앙스냐

by 자유로운 풀풀


몇 해 전 오은영 박사님의 육아 강연에 참석했을 때다. 박사님은 청중을 향해 물었다.


"어머님들, 중학교 2학년 중간고사 수학 성적 기억하시나요?"


엄마들이 까르르 웃자, 박사님이 다시 질문했다.


"그럼 어머님들, 중학교 2학년 때 중간고사 앞두고 밤새워 공부했던 기억나시나요?"


나를 포함한 엄마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이거예요, 여러분.
인간은 단순한 성적, 드러나는 결과보다 정서적 경험을 기억합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다섯 살 두 아이는 자신감이 한창 올라가는 시기이다.

무엇을 하든 자신이 1등이어야 하고, 무엇이든 자신이 잘해야 한다.


아이의 발달을 무한 지지해주면 참 좋으련만 늘 뭔가에 부딪히는 기분이었다. 고쳐주고 싶고, 바로잡아주고 싶은 엄마의 욕구가 문제였던 것이다.


어제만 해도 그랬다.


연이가 그림책 속의 사탕을 세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열, 스물둘, 스물다섯, 스물넷! 엄마! 스물네 개다! 엄청 많다! 나 잘했지?"


그 짧은 찰나, 내적 갈등이 시작됐다.

'열하나, 열둘, 열셋으로 고쳐줘야 하나? 뭐라고 대꾸하지?'


잘못 센 것을 다시 고쳐주기엔 아이의 표정이 자신감으로 환했다. 저 표정, 저 기분을 꺾어버리고 싶진 않았다. 스스로 잘 세었다는 기쁨에 충만한 아이. 아이의 기쁨에 함께하고 싶었다.


"우와! 우리 연이가 수를 정말 잘 세네! 연이, 최고! 하나, 둘,... , 열, 열하나, 열둘, 열셋! 우와. 사탕이 열세 개나 있어!"


어쨌든 아이는 그림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순서대로 잘 세었다. 약간 흐트러진 집중력으로 숫자를 잘못 내뱉기는 했지만. 끝까지 차례대로 세었고, 마지막 센 숫자가 개수라는 사실도 알았다. 아이는 자신만의 과제를 성취한 것이다.


열 다음을 스물둘이라고 오개념을 가져가면 어떡하냐고? 널린 게 숫자인데 아이가 열 살이 되어서도 잘못 셀 리는 없다. 오개념을 바로 잡아주고픈 충동이 일어난다면? 아이의 성취를 함께 기뻐하되, 은근슬쩍 다시 점검해주면 될 일이다.


아이는 객관적 사실 이전에 주관적 뉘앙스를 가져간다.


비단 아이만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그렇다.

제아무리 옳은 말일지라도 어떤 분위기에서 대화가 오고 갔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감정은 천지차이니까.


어른이라는 이유로.

너보다 더 많이 안다는 이유로.

틀린 것을 바로잡아주어야 한다는 이유로.

아이가 가지는 성취의 기쁨을 앗아가 버린 것은 아닌지 하루를 다시 되돌아본다.


두려움이 아닌 기쁨의 눈으로 아이와 함께하는 현재에 머무르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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