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잘 키워보려던 첫 마음 놓치지 않기
부모들은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내 아이를 잘 기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아이에게 보다 나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고민의 답을 구하기 위해 육아서를 펼친다.
이 시기에는 이렇게, 그다음 시기에는 저렇게 자란다는 아이 발달을 다룬 책.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는 기술적인 방법들을 논한 책.
이렇게 하니 성공하더라, 저렇게 하면 안 되더라 같은 경험을 나누는 책.
아이의 성장에 따라 관련 육아서를 한 권 씩 독파하다 보면, 어느새 '엄마의 마음 치유'라는 주제를 마주하게 된다.
여기까지 가지 않고, 기술적인 방법이나 이론들에서 해결책을 찾으면 참 좋다.
책대로 할 수 있으니, 그다음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니까.
하지만 어디 현실이 책대로 이루어지랴.
"나는 왜 책대로 되지 않는 거지? 이렇게 하면 된다며, 근데 난 왜 아니야? 아는 대로 실천하는 게 왜 안돼? 내가 문제야?"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면, 결국 엄마의 마음을 다루는 책을 만나게 된다.
심리 치유서, 특히 육아와 관련된 심리서를 읽다 보면 마음을 후벼 파고 후벼 판다.
그럴 수 있었다며 애써 모른 척 덮어두었던 과거의 사실들을 낱낱이 꺼내 어른의 잣대로 다시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내면 아이, 내면 치유, 대상관계 이론 등 '어린 시절의 경험(특히 만 3세 이전)이 인간의 생을 좌우한다'는 책들을 읽어 가다 보면 처음에는 시원하다.
"그래, 엄마가 나한테 그랬어! 그래, 아빠가 나를 막 대했지. 그래, 난 차별받았어!"
지금까지 스스로를 규정해온 틀이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음을 아는 순간, '나는 피해자, 너는 가해자의 프레임'을 가지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온 억울함을 '너 때문이야!'라고 토해낼 대상이 명확해졌으니까. 거기에 이론적인 뒷받침까지 더해졌으니까. 과거의 후회되는 부분, 속상했던 부분은 모두 '당신 탓'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싶어 진다.
굳이 상대를 공격하지 않더라도 몰랐던 사실을 마주하게 되며, 속은 더 곪아 터지려 한다. 잠재워두었던 분노를 수면 위로 끄집어 올렸으니, 묵혀두었던 감정들을 폭발적으로 배출시킬만한 상황과 대상을 물색하고 물색한다.
그러다 보면, 순간순간을 원망하며 보낸다.
아이 때문에 조금만 화가 나도, '이건 내가 어릴 적 이런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래.' 하며 원망한다.
남편 때문에 조금만 화가 나도, '저 사람은 이런 내 마음을 모르지. 어쩜 나는 그때 이런 것도 모르고 결혼을 했을까.' 하며 원망한다.
내가 좀 피곤해서였고.
내가 좀 배가 고파서였는데.
그 모든 탓은 현재의 상대 또는 과거의 상대로 돌려버리고, 정작 현재의 나를 돌보는 일에는 소홀하게 된다.
이런 시기를 지나, 심리학적 지식이 쌓이다 보면 '판단의 시기'를 만난다.
나는 이러저러한 지식들을 섭렵해서, 실천할 일들만 남았다고 여긴다.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머리와 가슴을 쥐어뜯으며 알게 된 것들을 이 악물고 실천하려 노력한다.
내 아이는 잘못이 없으니, '나만 잘하면 된다'며 나를 알고 있는 틀에 맞추려고 한다.
그 순간, 꼭 방해꾼들이 나타난다.
아이가 밥을 먹고 싶지 않아서 깨작거릴 수 있는데, 남편은 밥 잘 먹어야 한다며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아이가 편한 신발을 신고 싶어서 크**를 신었는데, 친정 엄마는 저런 거 신다가 넘어진다며 걱정의 씨앗을 뿌린다.
판단 회로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내 남편은 밥 때문에 내적 불행이- 블라블라."
"친정 엄마는 저렇게 걱정을 사랑으로 오해하며- 블라블라."
아이와 상대를 위한 조언으로 가장한 지적질을 늘어놓는다.
"남편, 당신은 어릴 때 밥 먹을 때 어땠어? 블라블라."
"엄마, 엄마는 그건 사랑이 아니라-. 블라블라."
'사랑하는 내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주변 사람이 과거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기 위해'라는 그럴싸한 이유를 가져다 놓고, 상대를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은, 내 안에 남아있는 불안의 요소들이 내 아이에게 투사된 것이다.
지키고 싶었던 내 아이는 어린 시절의 나이고, 아이를 공격하는 것으로 보였던 주변인은 어린 시절 나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늘어놓았던 그 누군가이다.
나의 불안한 감정들을 덮기 위해,
상대를 지식으로 판단하고 조정하려 드는
통제를 발휘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세세하게 풀 수 있냐고?
내가 그랬으니까. 허허.
난 여전히 육아서와 심리서를 함께 읽는다.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하며 읽어가려고 노력한다.
첫째, 나의 감정에 매몰되지 말 것.
둘째, 원망으로 나와 주변을 할퀴지 말 것.
셋째, 지식으로 주변을 판단하지 말 것.
그리고 이를 지키기 위해 '책을 읽는 목적'을 뚜렷이 세운다.
첫째, 나의 인식의 오류를 알아차리고 깨닫는다.
보다 나은 나, 보다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해선 기존의 틀을 깨야 한다.
현재의 나에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생겼다면, 그것이 왜 껄끄러운지를 제삼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불만족이 짜증이 되지 않고, 불만족이 개선의 씨앗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작업이다.
육아서, 심리서에서 제시하는 여러 사례와 이론들을 나의 인식을 재점검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생각의 패턴, 행동 양식을 배워 습득한다.
내가 가진 프레임에서 수정해야 할 부분을 찾았다면, 이젠 어떤 방식으로 바꾸면 좋을지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하면 좋을지, 세세하게 배운다.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처럼, 낱낱이 쪼개어 나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살아온 대로 살아가는 것은 쉽다.
이미 굴러가던 바퀴를 굴리는 데는 큰 힘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살아온 방식을 점검하고 새로운 패턴으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굴러가던 바퀴에서 뛰어 내려와, 새로운 바퀴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 굴려야 하기 때문이다.
육아서를 읽다가, 심리서까지 손을 뻗은 부모들은 '보다 나은 나'를 향한 염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조금 더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고, 조금 더 자연스러운 내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테다.
그 길에 심리 치유서는 분명 큰 도움이 된다. 과거의 나를 수용하고, 미래를 긍정하며, 지금을 살아가는 데는 심리 치유서가 정말 큰 도움이 된다.
꼭 기억하자.
이 책을 읽는 목적은
'조금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함'임을.
책을 읽다 감정에 매몰되어 과거를 원망하고, 현실을 놓쳐버리는 실수를 범하지 말자.
'어제보다 한 걸음 나아간 나'를 꿈꾸는 당신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