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만난 스피노자
운영하는 독서모임, [엄마 독서] 3기의 지정 도서는 [라틴어 수업]이다.
당장의 필요에 따라 육아서에 치중되기 쉬운 엄마들을 위해 가벼운 인문학 책을 읽고 싶었다.
책장에 꽂아두고,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는 [라틴어 수업]을 보며 꼭 다 읽고 말리라 결심했기 때문이다.
[라틴어 수업]은 한동일 교수가 한 대학에서 라틴어 강좌를 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28개의 챕터에는 라틴어, 유럽의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은 [라틴어 수업]이지만 내용은 인생 수업에 가깝다.
[엄마 독서] 3기 분들과 매일 읽기를 나누어가며, 책을 통한 여유를 선물 받고 있다.
일요일.
주말에도 진행되는 인증을 위해 책을 펼쳤다.
주말에는 좀 늘어지고 싶지만, 인증이 있기에 한 장이라도 펼쳐 눈을 두게 된다.
별 뜻 없이, 의지 없이 읽을 페이지를 펼쳤다.
눈이 번쩍 뜨였다.
Desidero ergo sum.
데지데로 에르고 숨.
스피노자의 말이다.
나는 욕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끼야약.
탄성이 절로 나왔다.
나는 욕망하기에 존재한다니, 이보다 더 섹시한 말이 어딨을까. 아흑.
욕망의 사전적 의미다.
욕망 :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함, 또는 그런 마음.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우린 욕망이라 하면 대부분 부정적으로 느낀다.
자신의 욕망을 부끄러워하거나 감춘다.
안빈낙도를 좋은 것이라 여기는 문화에서 욕망을 인정하라니.
감히 끄집어낼 수가 없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 욕망이 나쁜 것일까?
욕망의 방향이 어디로 향했느냐가 문제이지, 일어난 욕망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럴 수 있음'으로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다.
욕망은 '부족하다 느껴짐'에서 출발하고, '부족하다 느껴짐'을 통해 '지금 나의 자리'와 '내가 원하는 자리'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족하다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저 머무르면 된다.
하던 대로, 움직이던 대로, 느껴지는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모든 순간 이럴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순간은 그럴지도 모른다.
안빈낙도를 생각하며, 자족하는 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이런 시간이 지속된다면?
인간은 곧 다른 마음을 품게 된다.
"뭐, 더 재미난 건 없을까?"
"조금 다르게 해 볼 수는 없을까?"
욕망한다는 것은 삶이 나아간다는 증거이다.
부족을 느낀다는 것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그 자리에 멈춰있지 않고, 오늘 더 나아가고 싶다는 의미이다.
누워만 있던 아기가 뒤집기를 시작하고, 배밀이를 하며, 기고, 잡고 일어서서, 걷기까지.
지극히 자연스럽고 경이로운 이 과정이 모두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어른이 되어가며 우리는 욕망을 감추는 법을 배웠다.
'사회화'라는 명목으로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들'로 '해 보고 싶은 것'을 눌렀다.
12년의 학교 생활 동안 해야만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일치한다면 금상첨화일 테다.
'학생의 신분 =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는 집단 무의식이 아직도 팽배한 요즘 세대에, 의무와 욕망이 일치하는 금상첨화의 인생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12년간 조화롭게 잘 살아왔다한들, 그다음 10년, 20년의 삶을 '사회의 기준'과 '나의 욕망'을 일치시키며 살 수 있을까?
난 욕망을 억제하는데 익숙하다.
글을 쓰고 싶어도, 이 글을 누가 읽어줄까 고민하며 멈춘다.
영상을 찍고 싶어도, 이 영상을 누가 봐줄까 하며 멈춘다.
책을 읽고 싶어도, 이게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까 하며 멈춘다.
자연스러운 욕망이 사회적인 기준과 일치하여 실용성을 갖출 때에만 그것을 인정하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일치하지 않는 욕망은 '쓸데없는 짓'이라며 저 멀리 밀어버린다.
그리고 창조의 씨앗 일지 모를 욕망을 지하 창고 깊숙한 곳에 숨겨둔다.
이제, 욕망을 인정한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소중하게 여기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기쁨, 충만함을 위한 무언가'를 재미있게 해 보려는 열정을 인정하기로 했다.
'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와 책임, 기준'에 맞추어 나의 욕망을 재단하던 일들을 멈추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모든 사람들이 기어 다니는 세상'에서, 잡고 일어서려는 돌쟁이 아가를 억지로 엎드려 기게 하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기고, 일어서고, 걷고, 뛰는 생명력 넘치는 자연스러운 창조의 욕구를 인정한다.
살아있다는 증거인 욕망,
지금 한 발 나아가려는 펄떡이는 마음.
그 욕망을 인정한다.
덧.
스피노자가 말한 욕망이 이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허허허.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스피노자 책 네 권이 추가되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