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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풀풀 Apr 07. 2022

아이에게 막무가내로 고함을 지른 날

"그러니까 제발 좀! 엄마 침대로 가라고!"

"엄마가 고함지르면서 이야기하잖아. 엉엉."


밤 10시. 

하루를 꽤 잘 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져버렸다.

잠들기 전 침대를 정리하려는데, 눈 감고 잠든 척 장난하는 연이에게 고함을 바락바락 질렀다.

이성을 잃은 고함.

제발 좀 엄마 침대로 움직여 달라는 부탁의 말에 힘이 실어지더니, 역대급 목소리로 바뀌어버렸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데굴데굴 구르기만 하면 되는 바로 옆 침대인데 왜 안 하는 건지.

이제 곧 잘 시간인데 두 눈을 감고 자는 척은 왜 하는 건지.

그래 놓고 잘 거라고 그러면 되려 안 잘 거라고 생떼를 부리는 건지.

엄마가 그것 좀 해 달라는데 이렇게 고함을 질러도 들어주질 않는 건지.

왜 기어코 고함지른 것에 대한 사과를 받겠다는 건지.

나 같으면 무서워서라도 얼른 옮길 텐데, 무섭다면서도 고함을 바락바락 지르며 하지 말라는 아이.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이때다 싶었다.

하루 종일 꾹꾹 참아온 말들, 지금 아니면 또 언제 고함을 질러보겠나 싶었다.

씻으러 오라고 할 때 바로바로 안 오는 것.

정리하라면 안 하고 그냥 노는 것.

색종이 접기 그만하고 싶다고 해도 또 하자는 것.

설거지거리 쌓였는데 옷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

할 일은 산더미 같은데, 하고 싶은 일은 태산 더미 같은데 꼼짝 않고 지들 옆에 붙어있으라는 아이들이 너무너무 미웠다. (뭐 물론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지만)


몇 분 동안 묵혀둔 화를 다 쏟아냈다(고 하고 싶지만 아직 좀 남았구나).

목이 칼칼해질 만큼 쩌렁쩌렁 질렀다.

화를 내면서도 이성의 필터링은 작동해서 '너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는 말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대신, '엄마 너무 지치고 힘들어. 그러니까 이것 좀 도와달라는데, 뭐가 그리 어려워!'라고 말했다.

'이거나 그거나 맥락은 같은데'싶으면서도 어쨌든 있는 힘껏 고함은 지르지만 '모든 것을 아이 탓'으로 돌려버리는 말은 하지 않으려 했다.

이럴 땐 마르고 닳도록 읽은 육아서들에게 고맙기도 하다.


'나는 너무 피곤해, 나는 너무 쉬고 싶어.'송을 락버전으로 실컷 부르고 나니 정신이 좀 돌아왔다.

엉엉 우는 연이. 곁에서 한숨 쉬는 은이.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엄마가 큰 소리 내서 미안해."

바닥의 전기매트를 반듯하게 펴고, 연이를 꼭 안았다.

"엄마가 큰 소리 내서 미안해. 피곤하다고 고함을 마구 지른 거 미안해.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었어. 엄마가 미안해."

연이가 괜찮다며 사과를 받아주었다.

진정된 아이를 바라보며, 나도 사과를 요구했다.

"연이도 사과해줘. 엄마가 정말 피곤할 때는 엄마 간단한 부탁은 들어주기로."

"응, 엄마. 나도 미안해."

아이의 사과에 마음이 시큰해졌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되고, 우리 집이 좀 달라졌다.

정확하게는 주양육자인 내가 아주 많이 달라졌다.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육아에 전념할 에너지가 많이 줄었다. 

집안일은 시작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처리하던 사람에서 가족 구성원의 협조를 요구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에게 엄마를 배려하는 행동을 요청한다.


예전의 나라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되는 큰 소리를 낸 자질 부족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또 사과했을 것이다.

오늘의 나는, '화가 난다고 막무가내로 고함을 지른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했음'의 간결함으로 아이들에게 사과했다.

'엄마가 뭔가를 부탁할 때는 엄마의 이야기도 들어달라'는 요청도 덧붙였다.

'엄마가 고함지르는 게 싫으니, 연이도 싫다.'는 은이에게 '엄마랑 연이의 마음이 달랐고, 엄마가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이다. 놀라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는 사과를 덧붙였다.


여섯 살의 아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모르겠다.

평생 트라우마로 가져갈지, 피곤한 엄마는 조심하자의 경고의 메시지로 받아들일지, 엄마가 오늘 좀 힘들어서 고함질렀다는 상황으로 느낄지.

선택은 아이의 몫이다.


여기에 지나친 죄책감은 가지지 않겠다.

가족끼리 살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속도 상하고, 고함도 질러보고, 사과도 하고, 다시 부둥켜안고 깔깔거리는 게 당연한 일상일 테니.


'절대'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단호함은 좀 던져버리고,

'적당히'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는 우리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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