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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풀풀 May 12. 2022

10년 된 수건을 싹둑 잘랐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인다. 부글부글 끓는 소리가 귀에 파고든다.


"커피를 뜯어야지."


서랍을 열고 드립백을 꺼냈다. 오늘의 맛은 조금 쓴 탱고 맛이란다. 졸음을 쫓기 위한 의식이지만 향이 기대된다. 드립 커피의 종이 필터를 뜯었다. 마스크를 살짝 내려 드립백에 코를 박아본다. 씁쓸한 커피 향에 뇌에 가시가 박히는 기분이다. 냄새만으로도 각성 중이다.


"탁."


커피 포트의 스위치가 탁 내려갔다. 물이 다 끓었다는 신호다. 텀블러에 드립백을 얹었다. 좌우 균형이 잘 맞도록 유의해야 한다. 안 그러면 커피 분말이 텀블러 속으로 잠수하는 참사가 벌어진다.


커피 포트 손잡이를 들고 텀블러에 물을 부으려는 찰나, 동작을 멈추었다.


"아, 행주."


내 손이 이상한 건지, 커피포트가 이상한 건지, 드립백이 잘못한 건지. 요즘 드립백에 커피 물을 따를 때마다 텀블러 주변으로 물을 흘린다. 한 방울, 두 방울. 어떤 때는 방울을 셀 수 없을 만큼.


커피포트를 내려놓고, 어제 널어둔 행주 앞으로 갔다. 행주라고 하기엔 머쓱한 반으로 툭 자른 10년 된 수건이다. 흡수력도 좋고 사용하기도 편리한 오래된 수건을 반으로 잘라 사용한다. 실용성도 대박이지만 무엇보다 경제적이다.


수건을 들어 커피포트 옆으로 가져가다가 다시 멈췄다.


'000 권사 임직 기념'


어디선가 선물 받은 수건의 아래쪽에는 기념문구가 커다랗게 박혀있다. 축하를 하기에는 참 좋은 문구지만 사용하기에는 참 불편하다. 문구의 프린팅을 위해 기념문구가 적힌 그 부분만 수건의 질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기념 띠(?)는 잘 빨아지지도, 잘 닦이지도 않아 사용할 때마다 거슬렸다. 몸을 닦는 용도일 때야 박음질이 신경 쓰여서 그냥 대충 사용했지만, 박음질의 정성이 필요 없는 지금은 이 부분이 심하게 거추장스럽다.


"잘라? 말아?"


몇 분 같은 몇 초의 고민. 왠지 모르지만 그 띠지를 자른다는 것이 아주 크게 망설여졌다. 선물을 준 분에 대한 예의 때문일까? 수건의 형태를 망가뜨린다는 생각 때문일까? 자르는 행위가 귀찮아서일까?


"잘라."


닦고 빨고 말릴 때의 거추장스러운 시간들을 생각하니 결단이 빨랐다. 자르는 게 최고다.


"서윽 서윽"


자르는 소리에 묵은 체증이 싹둑 잘려나간다. 사용할 때마다 고마움과 번거로움이 교차했는데, 불편했던 마음이 다 잘려나가고 고마움만 남았다. 길게 조각난 기념 문구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텀블러에 물을 따르고, 말끔해진 행주로 책상을 닦았다.


"이거지."




별 것 아닌 고민들로 일상에 브레이크가 종종 걸린다. 물 흐르듯 흘러가면 좋을 것들을 고민하는 이유가 뭘까. 그냥 해버리면 좋을 것들을 하나하나 생각하며 시간을 소비할 때가 많다.


수건을 자르지 못하고 망설였다. 이걸 잘라도 될지 고민됐다. 기념문구를 잘라서 사용하는 사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너무나도 소소한 결정인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위아래를 다 자른 수건'인지라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익숙하지 않은 수건의 또 다른 형태를 만나는 것이 어색했다.


글을 쓰며 위아래가 잘려나간 수건을 바라본다. 웃음이 비실비실 흘러나온다. 수건의 띠지를 자르는 게 훨씬 더 편하다. 게으름을 넘어서니 유용함이 다가왔다.


어느 책에서 그랬다. 인간의 뇌는 정말 게으르다고. 늘어지는 게으름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 아닌 형태를 새롭게 하는 것에 정말 게으르다고. 그는 보다 건설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 같다. 이를 테면 지금보다 나은 나를 위해 새로운 선택을 하고 실천하라 같은.


난 오늘 게으름을 이겨냈다. 익숙한 형태의 수건보다 나에게 편리한 형태의 수건으로 잘랐다. 스스로에게 좀 더 편리하고 좋은 것들을 선택했다. 한결 편안하게, 게으름을 넘어서서.


불편한 습관대로 살아감을 멈춘다. 편리하지만 낯선 습관을 만들어본다. 이렇게 사는 연습을 하면 좀 더 가벼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수건을 위아래로 잘라내는 것이나, 읽으려던 신문을 펼쳐보는 것이나.

결과에 큰 무게를 두지 않고.

10년 뒤의 어떠함에 짓눌리지 않고.

 

지금 내게 필요한 대로.

지금 내가 편한 대로.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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