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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풀풀 Aug 31. 2022

밥 해 주는 사람이 좋다

내면 아이와 할머니의 이별

밥 해 주는 사람이 좋다.

밥 챙겨주는 사람이 좋다.


먹어야 하는 밥이 아니라, 걱정해서 주는 밥이 아니라,

요리가 좋아서 차려낸 밥이 좋다.


그냥 기대고 싶고, 애교 부리게 되는 동성의 사람들이 있다.

그분들의 공통점은 먹을 것을 챙겨준다는 거다.

직접 차려주진 못해도 '뭐 먹었냐, 이것 좀 먹어라.' 해 주는 분들이다.


6개월간 알게 모르게 의지하던 분이 있었다.

파전 구워낼 줄 모른다니,

쪽파와 부침 반죽을 만들어 건네주신 분이다.

그분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오늘 하루 휴가로 쉬시고, 내일 다른 곳으로 출근하신다.

그분의 빈자리를 보니 아쉽고 슬펐다.

텅 빈자리에 찬바람이 휭 불었다.


ㅡㅡㅡㅡㅡㅡㅡ


저녁시간, 아이들 밥을 챙겨 먹이다 이상하게 화가 났다.

차려준 밥을 얼른 먹지 않는 아이에게 부아가 치밀었다.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나?"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어린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밥 얼른 먹지 않는다고, 밥 놓고 고사 지낸다고, 밥맛 떨어지게 먹는다고 밥상 앞에서 들었던 핀잔들이 후드득 떨어졌다.

내 속의 어린아이는 지금 식탁에 앉아있는 내 딸이었고,

난 그 감정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이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올바른 식습관 지도와 내면 아이의 분노는 구분지어야 한다.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고 탓을 하기 십상이다.

10분 안에 밥 먹도록 안내하니 아이는 5분 만에 다 먹었다.


"엄마는 왜 아까는 나쁘게 말하고, 지금은 예쁘게 말해?"


아이는 다 안다.

엄마가 스스로의 분노를 현 상황에 결부시키지 않기를 선택했음을 안다.


아이는 놀고, 나는 생각했다.

식탁 앞에 앉아서 온갖 비난을 들었던 나를 떠올렸다.

지난 시절을 탓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그 비난을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울컥 화가 치솟을 정도라면, 분명 내뱉지 못한 말이 있을 거다.

그 말을 꺼내 주고 싶었다.


"엄마가 한 반찬 맛없어. 할머니 반찬이 더 맛있어."


반찬투정은 하지 못했지만, 편식으로 거부권을 행사했던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안 먹는 건 내 탓이 아니라 엄마 반찬 탓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여섯 살 내가 있었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두고 30분간 바람을 쐬러 나왔다.

깊이 숨어있다 용기 내어 나온 내 안의 아이의 말을 좀 더 듣고 싶었다.


여섯 살, 할머니가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고 제대로 된 이유도 듣지 못했다.

이제는 엄마랑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 좋다라고만 생각했지, 할머니랑 떨어져야 된다는 것을 몰랐다.

엄마와 할머니는 달랐다.

사랑은 같지만 방식이 달랐다.

수년간을 함께 한 할머니가 그리웠다.

할머니 곁에서 더 순해지는 아빠가 그리웠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 세 사람이 함께 보내는 24시간에 익숙해지기에는 우리 모두 미숙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밥 해 주는 사람, 밥 챙겨주는 사람이 좋았다.

투박한 듯 무심하게 챙겨주는 그 관심이 좋았다.

좋으니 자주 보게 되고, 자주 보니 정도 들었다.

6개월간 함께 할 거라곤 생각 못했다.

예상보다 빠른 이별이다.

그렇지만 인사이동 철이면 늘 겪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빈자리는 새로운 사람으로 채워지고 적응해 갈거라 여겼다.

하지만, 빈자리가 크다.


 분과의 헤어짐을 통해 꽁꽁 숨겨두었던 할머니와의 이별을 떠올렸다.

밥 잘 챙겨준 할머니, 할머니의 달콤한 물김치가 놓인 작은 밥상이 떠오른다.


밥 챙겨줘서 좋았던 분들과의 헤어짐은

못다 슬퍼한 할머니와의 이별이었다.


내일 새로운 곳으로 전근 가는  그분이 좋은 곳에서 행복하시기를 바란다.


나도 할머니와의 이별을 애도하며 아이들 밥을 사랑으로 챙겨줘야지.

밥은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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