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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로운 풀풀 Feb 17. 2023

'육아하는 엄마'와 '일하는 엄마' 사이에서

오전 5시 10분. 4시 30분부터 울린 알람을 차례로 끄다가 겨우 몸을 뒤집었다. 이불을 꼭 안고 몸을 둥글게 만 채로 이마를 침대에 묻었다. '아, 일어나기 싫다.' 새벽기상 모임에 참여는 하고 있지만, 그냥 하루쯤 쉬어도 되는데 왠지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었다. '왜 일어나야 하는가'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다가 '그냥 일어나고 말지'하고 몸을 일으켰다. 더 자든, 덜 자든 피로한 건 비슷하니 습관대로 일어나서 하던 일을 해버리는 게 마음이 편했다. 


안방 문을 슬며시 닫고 물 한 잔을 뜨러 가다가 '이렇게 일어나서 피곤하니 저녁에 육아를 제대로 못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육아를 제대로 못하고 있는 건가' 고민하며 물을 따랐다. 어제 하원 후 일과를 떠올렸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기, 저녁 식사 하기, 좀 놀다가 샤워하기, 한창 푹 빠진 졸업식 노래 가사와 계이름 쓰기, 수학 워크북 두 페이지 해결하기, 전래동화 두 권 읽고 잠들기. 


딱히 뭔가를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고함을 지르지도 않았다. 평범한 하루 일과다. 그런데도 뭔가가 빠져있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아이들과 뭘 더 하고 싶은지를 떠올렸다.


속담 이야기하기, 영어책 따라 읽기, 한글책 낭독하기, 잠자리 독서에 영어책 읽기.


쓱 하면 10분도 안 걸릴 일들인데 어제 급격한 피로감으로 하지 않았다. 속담은 1분이면 끝나고, 영어책 따라 읽기도 2분이면 끝나고, 한글책 낭독하기도 5분이면 되고, 잠자리도 독서에 영어책을 넣는 것도 10초만 신경 쓰면 될 일인데. '피곤해, 아무것도 하기 싫어'라며 하지 않았다.


그 죄책감이 새벽기상까지 좀먹고 있었다. '자기계발하거나 일하는 엄마는 육아에 집중할 에너지가 부족한가? 일을 그만둘 수는 없으니 자기 계발을 멈추어야 하나?'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욕실에서 양치질을 하고, 따라 둔 따뜻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애써 일어난 새벽 기상이 나의 육아를 방해하는 기분이었다. 덜 피곤한 저녁시간이냐 새벽기상이냐, 자녀양육 올인이냐 자기 성취냐. 저울질을 하던 그때 또 뭔가 내면의 소리가 들렸다. (난 불쑥 찾아드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잘 기울이는 편이다.)


오늘은 육아를 하고 싶은가 보지.
그럼 육아에서 하고 싶은 거 하나 더 해.


그러자 또 내면에서 반박의 소리가 들렸다. '그럼 자기 계발은? 학교 일도 해야 하고, 포스팅도 해야 하고, 책도 읽어야 하고 할 거 많은데?' 


아.

찾았다.

난 자기 계발도 육아도 '하면 좋으니까 해야지. 해야만 하는 거지'라며 자신을 들들 볶고 있었다.

시소의 양쪽 끝에 자기 계발과 육아를 올려두고 자기 계발로 뛰어가다가 기울어지는 시소 판에 깜짝 놀라 육아로 뛰어가는 꼴이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시소가 가만히 있지 못하는 거냐고 소리쳤다. 결국 둘 중 하나를 버려야 시소가 멈추는 거라고 비명을 지르고는 '육아 vs 자기 계발'에서 둘 중 하나를 집어던지려고 했다. 


둘 다 잡지 않아도 좋고,
둘 다 놓지 않아도 좋아.

 

시소에서 내려오기가 힘들다면 기울어진 시소에서 균형을 잡으며 오늘은 육아에서 하고 싶은 활동을 하나 더 했다가, 내일은 일에서 하고 싶은 걸 하나 더 하면 된다. 육아에서 매일 할 일을 꼬박꼬박 실천하고 싶다면, 당분간은 거기에 집중하며 하원 전에 20분 쉴 수 있는 틈을 찾아보는 거다. 그 20분을 덜기 위해 일 한 가지를 빼야겠지만, 그 한 가지 일을 덜한다고 해서 내가 가는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나를 더 해야 속도가 빨라질 것 같은, 퍼즐이 맞춰질 것 같은 나의 히스테리일 뿐이다. 


반대로, 자기 계발에서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면 오늘은 하고 싶은 자기 계발을 하나 해 보고 내일은 육아에서 하나 더 하면 된다. 자기 계발에서 매일 하는 일을 꼬박꼬박 실천하다가, 조금 더 해내고 싶은 마음에 '하나 더'를 추가하다가 오버페이스되는 일이 흔하다. 하나 더 추가하기 전에 감당할만한지를 따져보고 시도하는 편이 나으며, 일단 추가했다면 애를 써서 만족스럽게 하려 덤벼들지 말고 해 보는데 초점을 맞추는 편이 낫다.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어떤 것도 꼭 해야 하는 건 없으며

그것을 꼭 해야만 잘 된다는 보장도 없다는 사실이

긴장된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줬다.




이 글을 쓴 지 40분. 따끈했던 물이 미지근해졌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돌려 거실에 놓인 아이들 책상 쪽을 보니, 무척 깨끗하다. '아, 나 어제 애들이랑 같이 정리 정돈했지.'


육아에 집중하지 못했다며 자책했는데,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며 자책을 털어내고 나니 아이들과 마음을 쏟으며 한 일이 보인다.


그리고 새벽에 일어나 브런치에 글을 남기는 내가 보인다.


어느 것도 제대로 못했다는 마음은 허상일 뿐,

순간의 나는 충분히 기꺼이 일상을 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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