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고정관념 넘어서기

유아차는 몇 살 까지 타야 할까?

by 자유로운 풀풀

유아차, 흔히들 유모차라 부르는 육아용품은 몇 살 까지 사용하는 물건일까?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에 구입한 디럭스 유아차는 세돌이 다 되기까지 사용하다 처분했다. 유아차가 없는 몇 개월 동안 휴대용 유모차를 살까 말까 무척 고민했다. 웨건을 사기에는 부피가 크고 무거웠다. 가격도 비쌌다. 혼자 차에 실었다 내렸다 하기에는 휴대용 유아차가 딱이었지만 '과연 언제까지 사용할까'라는 생각에 구입을 미루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친한 동생이 "언니, 꼭 사. 얼마나 잘 사용하는데!'라며 실사용 꿀팁을 말해줬고, 난 두 눈을 질끈 감고 질러버렸다.


아이들이 네 살 여름이 된 어느 날, 다시 구입하게 된 휴대용 유아차. 아이들과 공원 산책을 할 때도, 놀이 공원을 갈 때도, 박물관에서도 활용하기 딱 좋았다. 혼자 두 아이를 데리고 몇 시간 동안 바깥나들이를 하면 "안아줘"노래가 흘러나왔는데, 유아차를 타면 그럴 일이 없었다. 무거운 짐가방도 유아차 손잡이에 턱 걸고 온 몸으로 밀면 그만이었다. 남편과 함께하는 나들이에는 별 쓸모가 없는 유아차였지만, 나 혼자 다닐 때는 열 남편 부럽지 않은 유아차였다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자, 유아차를 꺼내는 빈도가 줄었다. 구입한지 1년도 되지 않은 유아차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남편은 '그러니까 유아차를 왜 샀냐'는 눈총을 보냈다. 아이들이 유아차를 태워달라고 하는 날이면, 나도 "오래 걷는 공원에 가면 타는 거야."라며 아이들을 설득했다. 다섯 살이 된 아이는 유아차를 타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자동차 트렁크에 실린 유아차를 볼 때면 마음이 씁쓸했다. 아이들이 유아차를 꺼내 달라 할 때마다 갈등했다.


"이제 걷는 힘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자꾸 유아차만 태우면 버릇 나빠지는 거 아니야? 걷기 싫어서 떼 부리는 걸 언제까지 받아줘야 하지?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유아차는 이제 안돼."


유아차를 버리지는 못했다. 혹시 모를 언젠가를 위한 비상템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어디선가 스치듯 본 '해외여행에서 휴대용 유아차를 요긴하게 잘 썼다는 후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왕 구입한 것, 애들 일곱 살까지는 보관하고 싶었다.


나에게 물었다.


"보관 중인 유아차는 해외가 아닌 어느 장소에서 사용할 수 있을까?"

오래 걷는 놀이동산? 넓은 공원? 1박 2일 여행지?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었다.


"보관 중인 유아차는 어떤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을까?"

상황을 생각하니 답이 나왔다. 아이들이 피곤하여 걷기 힘들 때, 내가 두 아이를 몸으로 케어하기가 어려울 때.


다시 물었다.

"놀이동산이나 공원에서는 '힘든 상황'이란 것이 용납되면서, 집 앞에서는 왜 안돼?"

고정관념이었다. 집 앞에서 놀다가 힘들면 집으로 돌아가 씻고 밥 먹고 자야 한다는 신념. 그것에 탁 걸렸다.


도서관에서 한 시간을 놀고, 놀이터에서 세 시간을 논 아이들은 집 앞에서 유아차를 꺼내 달라 했다. 이미 녹초가 된 나의 몸이었다. 아이들은 발산할 에너지가 남았을지 몰라도 난 아니었다. 게다가 두 아이를 씻기고, 닦여서, 먹이고, 재워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남아있지 않은가. 그런데 해가 저물어가는 시간에 차 트렁크에서 유모차를 끄집어내어, 펼치고, 아이들을 태워서, 온몸으로 밀어주는 강행군을 시작하라고? 용납할 수 없었다. "그건 아니 되오~!"였다.


다섯 살이 문제가 아니었다.


유아차를 탈 수 있는 공식적인 제한 나이는 없었다. 필요한 상황이라면 나이 상관없이 사용하는 것이 유아차였다. '다섯 살 아이의 버릇이 나빠질까 염려하던 속마음' 뒤에는 '이젠 엄마도 좀 쉬자라는 욕구'가 숨겨져 있었다.


나의 욕구를 알아차리니 선택은 쉬워졌다. 아이들을 유아차에 태우고 평지만 골라 가벼운 산책을 즐기며 아이들의 에너지 발산을 돕는 것이다(라고 쓰고 9시 전에 잠들어달라는 기도로 읽는다). 쉬고 싶은 나의 욕구는? 유아차를 슬슬 밀며 선선하게 스쳐가는 바람으로 씻어낸다. 밖에서 기분 좋게 30분만 더 놀다 들어가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종종거리는 마음으로 저녁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유아차를 슬렁슬렁 밀며 약간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활력이 되기도 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차 트렁크에서 유모차를 끄집어내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어려웠던 처음을 이겨내니 그다음은 일도 아니었다. 환호하는 아이들, 고요하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 눈에 들어오는 청명한 하늘은 선물이었다.



'유아차, 언제까지 타야 할까'로 시작된 고민은

'낡은 신념을 마주하기'를 지나,

'숨겨진 욕구 알아차리기'로 마무리되었다.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다.

'어느 것이 더 나을까, 어떤 것이 더 옳을까'를 두고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런 때는 멈추고 들여다봄이 필요하다.


당장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 조급한 마음을 살살 달래며, 'a 다음은 무조건 b가 나와야 한다'는 논리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a 다음에 a'가 나올 수도 있고, z가 나올 수도 있으며, ㄱ이 나올 수도 있다. 상황과 조건에 따라 유연함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는 거의 대부분 존재한다. 틈을 막고 있는 고정관념과 감추어진 욕망들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풀린다.


아이들은 언제까지 유아차에 탈 수 있을까?

난 언제까지 아이들을 유아차에 태울 수 있을까?


아이들이 '유아차 이제 안타요.'라는 말을 할 때까지.

내가 두 아이와 유아차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육아에 정답이란 없으니,

나와 아이들을 믿고 가 보는 거다.

"5살인데 유모차를 타요?"란 의아한 시선들은 쿨하게 웃어넘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