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가정보육 48개월 동안 가장 갈급했던 것은 '나만의 시간'이었다. 한 달에 딱 하루만이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져있고 싶었다. 때론 그런 호사를 누리기도 했지만, 집으로 돌아와서 들이닥치는 집안일과 육아 후폭풍에 며칠을 앓아누웠다.
아이들이 다섯 살이 되고 어린이집에 갔다. 낮잠 시간을 갖고 싶지 않다는 아이들의 말에 1시에 하원을 한다. 나에겐 9시부터 1시, 하루 네 시간의 자유시간이 보장되기 시작했다.
3월에는 마음이 조급했다. 할 일이 참 많았다. 물건 정리, 청소기 돌리기, 밀대 밀기, 빨래 돌리고 개기, 설거지, 반찬 준비 같은 소소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집안일들만 처리해도 족히 한 시간은 걸렸다. 거기다 주된 일을 해내기 위해 보조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내 식사까지 하고 나면 또 한 시간은 지나버렸다. 남은 시간은 1시간~1시간 30분. 잠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눈이라도 두고 나면 어느새 1시는 금방이었다. 집안일과 약간의 휴식만으로도 3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나만을 위한 일과 엄마의 일들을 추가하면 시간이 모자랐다. 독서, 글쓰기, 운동 시간도 갖고싶었다. 아이들을 위한 엄마표 놀이 준비, 허접하지만 손수 준비한 교구 세팅까지 할라치면 마음은 바쁘고, 시간은 없고. 4시간이 모자라도 너무 모자랐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오면 난 넋이 나갔다. 분명 무언가를 열심히 했는데,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했는데.
주인공인 아이들이 오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싫었다.
모순된 나.
시간이 좀 걸렸지만, 해결책을 찾아냈다. 아니 받아들였다.
혼자만의 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해
혼자만의 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이었다. 운동, 공부, 텔레비전 시청 등 무엇이든 오로지 나를 위해! 먹는 것도 나를 위해. 노는 것도 나를 위해.
집안일을 하는 것도 쾌적한 환경에서 10분이라도 눈을 쉬게 하고픈 나의 욕구를 위해.
식사 준비를 하는 것도 내 손으로 요리하는 과정을 즐기고픈 나의 욕구를 위해.
책을 읽는 것도 삭막해진 내 머릿속에 윤활유를 뿌리고픈 나의 욕구를 위해.
운동을 하는 것도 축축 늘어진 내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여 활기를 찾고 싶은 나의 욕구를 위해.
혼자만의 시간에 어떤 활동을 하든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로 초점을 돌리는 것이 중요했다. 귀하게 얻은 나만의 시간마저도 누군가를 위해 에너지를 소모한다니. '해야 한다'라는 강박과 완벽에 사로잡힌 생각의 패턴들을 새롭게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집안일은 아이들이 있을 때
아이들과 함께 집안일을 하는 것은 나에게 가장 큰 숙제였다. 혼자 하면 5분인데 같이 하면 30분이니까. 거기다가 둘이서 '내가 먼저 할 거야'로 실랑이라도 벌어지면, 청소기 한 번 밀려다가 엄마의 고함이 난무하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의 언쟁을 최소로 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아이들과 하지 않기' 였다. 아이들이 놀고 있을 땐 저도 옆에 같이 앉아 책을 읽었다. 아이들의 거의 모든 활동을 함께 했다. 가정보육을 할 때는 이런 패턴이 익숙해서 집이 어떤 모습을 하든, 어떤 음식을 먹든 생존에만 집중했다.
아이들이 등원을 시작하고, 집안일은 큰 덩어리의 할 일이 되었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함께 뭔가를 해야 하니, 없을 때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 막상 덤벼드니 집안일은 만만치 않게 큰 일이었던 것이다. 반찬을 하나 할라치면 장도 봐야 하고, 손질도 해야 하고, 이것저것 조리시간까지 더해지면 30분은 더 걸렸다. 반찬을 하나가 아니라 두세 개를 만들고, 국도 끓이고, 간식도 준비하다 보면 '식'활동에만 한 시간은 소요되었다.
집안일 좀 제대로 해 보려고 했는데, 제대로 하려고 덤벼드니 마음이 힘들어졌다. 난 집안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쁘게 맛있게 조리된 식사를 찰칵 사진 찍고 레시피를 공유하는 일은 고된 노동에 불과했다. (그럴 능력도 없..)
선택했다.
집안일은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밥도 반찬도 10분 내로 할 수 있는 것만 준비하고, 컨디션이 좋을 때 여러 가지를 조리하는 것으로. 내가 기쁨을 얻는 말끔한 바닥 청소만 즐겁게 하는 것으로. 그 외의 일들은 아이들과 함께 하거나 남편에게 분담시키는 것으로. 마음먹은 만큼 말끔한 집이 유지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먹고살만한 살림은 유지되는 것 같다. 하하.
엄마표 활동은 상황이 되는 대로
가정보육을 하는 동안 그럴듯한 엄마표 활동을 하지 못했다. 닥치는 대로 되는대로 이것저것 끼워 맞추기에 급급했다. 그마저도 기운이 차려지는 날 했었고, 거의 대부분의 날들은 지루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즐거웠지만, 엄마는 방전되는 상황 말이다.
하루에 한 가지 활동을 그럴듯하게 준비하기.
나만의 시간이 생겼으니 그럴듯한 엄마표 활동들을 해 보고 싶었다. 처음엔 쉬워 보였으나 하루하루 쌓여가니 만만치 않았다. 어떤 활동을 할지 선택하고, 찾아보고, 준비하고. 아이들을 살살 꼬드겨 활동에 참여시키고, 의도된 결과를 도출하기까지. 드러나는 것 외에 숨은 노동(감정과 육체 모두)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그럴듯한 엄마표 활동 준비는 하지 않기로 결단했다. 시중의 엄마표 관련 책들을 몇 권 구입하여 싹 훑어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만 하기로 했다. 살 수 있는 것은 사고, 입으로 채워줄 수 있는 것들은 입을 놀렸다. 인스타그램이나 인플루언서들이 하는 활동에 비할 결과물은 없지만, 아이들과의 일상에서 뭐라도 한다는 성취감이 일기 시작했다. 매일이 아니라, 일주일 한 번이라도 말이다.
되는대로 진행하는 엄마표 활동은 간단하다. 계단 오르내릴 때 수 세기, 피자 나눠먹으며 분수 이야기하기, 책 읽을 때 표지 제목 손가락을 짚기, 그림 그리면 옆에 글자 써 주기 등등. 하루에 딱 한번, 이틀에 딱 하나 교육적인 의도를 넣은 엄마의 손짓, 말을 5초 섞기. 이 정도에 만족하기로 했다.
뭔가 에너지가 남는 날, 무언가를 해 보고 싶을 때는 준비를 한다. 오로지 나의 만족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