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하고픈 사람이 생겼다.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잘 웃는다. 그만큼 화도 잘 낸다.
일처리가 빠르다. 그만큼 생각이 많다.
책 읽기를 좋아한다. 그만큼 글쓰기도 좋아한다.
먹는 것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다이어트와도 멀어졌다.
뭐든 하고 싶어 시도한다. 그만큼 스스로를 밀어붙일 때가 있다.
난 이 사람이 좋다.
그녀가 어떤 모습이든, 어떤 마음이든 상관없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고 싶고, 그녀의 모든 마음을 응원하고 싶다.
그녀가 울고 싶을 때는 등을 다독여줄 거다.
그녀가 웃고 싶을 때는 곁에서 함께 깔깔거릴 거다.
그녀가 화가 났을 때는 화가 풀릴 때까지 옆을 지킬 거다.
그녀가 지쳤을 때는 말없이 베개를 가져다줄 거다.
그녀가 일에 치일 때는 할 일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 줄 거다.
눈치챘을지 모르지만, 그녀는 나다. 나는 나랑 연애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은 정기적인 심리상담이 있는 날이었다. 무거웠던 마음의 짐들을 툭툭 털어내고 가뿐한 마음으로 운전을 하여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소나기가 지나간 고속도로의 하늘은 회색 구름이 낮게 깔려있었다. 차량 에어컨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이소라의 '데이트'가 흘러나왔다.
"휴일 아침에 놀이 공원, 푸른 동산 해는 쨍쨍."
아! 탄성이 터졌다. 혼자 운전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이 길이 데이트의 한 장면처럼 펼쳐지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엄마의 역할도, 남편의 출근을 응원해주는 아내의 역할도, 집안 정리정돈을 해야 하는 주부의 역할도 모조리 지워졌다. 그 순간 나만이 존재하는 느낌. 난 나와 데이트 중이었다.
이어지는 노래는, 코나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
"내게 약속해줘, 오늘 이 밤 나를 지켜줄 수 있다고."
"함께 가는 거야, 나를 믿어. 내가 주는 느낌 그걸 믿는 거야."
사춘기가 막 시작되던 12살의 여름, 처음 만난 이 노래는 사랑의 환상이었다. 모든 것을 지켜주고, 믿어주는 관계. 난 그런 사랑을 꿈꾸었다. 성인이 되어 다시 들은 이 노래는 에로틱이었다. 남자가 여자를 꼬드기는 노래, 비실비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그런 노래였다.
그런데, 오늘. 운전대를 붙잡은 내 귀에 들리는 이 노래는 사랑의 속삭임이었다. 나를 지켜달라 약속하는 여자, 내가 주는 느낌을 믿고 함께 가자는 남자. 작곡가의 의도와는 다를지 모르지만,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 나아가는 노래로 가슴에 쿡 와닿았다.
나랑, 연애할까?
내가 나랑 연애를 하고 싶어 졌다. 내가 나를 지켜주고, 나의 느낌을 내가 믿어주고, 내가 나와 함께 가는 연애. 난 나를 뜨겁게, 때론 온화하게 사랑하고 싶어 졌다.
나르시시즘 아니냐고? 그거랑은 좀 다르다. 내가 완벽해서,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따스하다가도, 또 어떤 때는 차가운 나. 변덕이 죽 끓는 나. 장점과 단점이 뒤범벅된 나를 그저 사랑하는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고,
고치고 싶은 모습까지도
판단, 평가, 비난 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하고 싶은 마음.
난 나를 그렇게 사랑하고 싶어 졌다. 나랑 연애하고 싶어 졌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미워할 때가 있다. 아니, 대부분의 순간을 자신을 미워하는데 많은 힘을 쏟는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이불 킥을 하고 싶어 지고, 이것만 좀 더 수정하면 더 나아질 것 같고, '나란 인간은 도무지 나아지질 않는다'며 자학까지 하기도 한다.
문득 그런 모습이라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모습들도 사랑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행동들을 멈추고, 나를 따스하게 돌봐주고 싶어 졌다.
우리는 연애가 필요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의 연애가 시급하다.
하루의 어느 순간,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것을 멈추기를.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나를 먼저 다독여주기를.
내 마음의 생채기에 밴드 하나 붙여주기를.
당신, 나랑 연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