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내 등을 다독이며 말했다. 뻔한 위로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늘은 더 심하게 고함을 질렀다며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 결국 "그러니까 얼른 시험 끝나고 육아에 참여해"로 결론 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누구나 화를 낸다. 화가 없는 사람은 없다. 화를 참느냐 마느냐의 문제일 뿐, '화'라는 감정은 누구나 올라온다. '화'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다.
화 :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
결국, 화는 뭔가 불편할 때 드는 감정이다. 신체적, 정서적으로 불편해질 때 사람은 화가 난다. 1 - 10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수시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 나의 생각, 의지, 습관과 다르게 상황이 펼쳐지고,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 화가 난다.
난 살면서 화를 참아본 적이 별로 없었다. 상대와 싸울 때도 있었고(자다가 이불 킥), 친구들에게 속풀이를 하며 해소하기도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거나, 노래방에서 고래고래 큰 소리를 지르며 풀었다. 어떻게든 풀어가며 살았던 것 같다. 풀지 못한 화는 내가 미처 화가 났다고 알아차리지 못한 것일 뿐, 내가 인지하는 '화'라는 감정은 어떻게든 풀어냈다.
육아를 하며 상황은 달라졌다.
일단, 왜 화가 나는지부터가 불분명했다.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는 주로 남편이 희생양이었다. 남편이 없으면 화가 나고, 있어도 화가 났다. 아이들이 잠을 안자도 화가 났고, 잠을 자도 화가 났다. 눈치껏 행동하지 않는다고, 쌓인 설거지 모른 척한다고, 아픈 애들을 두고 잠만 잘 잔다고, 왜 나만 이유식을 만드는 거냐고. 남편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모두 다 화가 났다. (물론 남편이 다 잘한 것은 아니다. 고칠 건 고치자.) 처음엔 남편이 정말 다 잘못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점점 자라고 다섯 살이 되자, 이젠 그 화살이 아이에게로 돌아갔다. "이제 좀 컸으니 알아서 제때 밥을 먹어야지, 옷도 혼자 입고 외출 준비를 해야지, 양치질도 구석구석 해내야지. "하는 기대들로 아이에게 화가 불쑥 올라왔다. 고작 다섯 살인 아이들에게 성인들도 힘들면 제대로 하지 않는 것들을 '바른 습관 들이기'라는 명분으로 강요하고 있었다. 이쯤 되니, 나의 화는 비단 상대의 탓만은 아님이 확실해졌다.
화가 나는 대상이 불분명해졌다. 주변의 것들을 탓하기에는 내 안의 화가 너무 컸다.
나는 왜 화가 날까?
나에게 물었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떠올랐지만, 결국 하나로 모아졌다.
난, 휴식이 필요해. 누가 날 좀 도와줘.
참 안쓰럽게도, 내가 화가 나는 건 힘들어서였다.
육아는 감정노동과 육체노동의 환상적인 콜라보다. 징징 우는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나의 감정을 절제하고, 아이에게 적절한 언어로 안내를 해야 한다. 1시간 더 자고 싶어도 아이가 흔들어 깨우면 몸을 일으켜 거실로 나가야 한다. 거실 바닥에 드러누워 30분만 쉬고 싶어도 아이가 배고프다면 일어나 밥을 준비해야 한다. 그 와중에 두 아이가 다투기라도 하면 큰 싸움이 되지 않도록 적절한 타이밍에 개입해야 한다. 대충 하고 싶어도 매스컴을 통해 흘려들은 이야기들이 '그러면 안돼'라고 속삭인다.
화를 풀어내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힘들어서 화가 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니,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화를 마구 낼 수가 없어졌다. 필요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감정의 경계를 알리는 것도 된다. 하지만 해소하지 못한 화들을 전부 남편과 아이 탓으로 던져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일상에서 힘의 완급을 조절해야만 한다. 감정의 압력이 서서히 차오르면, 조급하게 해야 될 것 같은 일들을 잠시 멈춘다. 집 안에서 너무나도 답답하다면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터라도 나가본다. 뭔가 훅 하고 에너지가 떨어지는 기분이면, 믹스커피라도 한 잔 마셔본다. 극적으로 해소할 수는 없지만 급한 불은 꺼보는 거다.
오늘도 그랬다.
지난 주말, 남편을 붙들고 아이들을 향한 미안함에 펑펑 눈물을 쏟아낸 것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8시간이 넘는 쉼 없는 육아에 점점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물 마시고 싶다는 아이에게 버럭 올라오는 뜨거운 화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산책을 준비했다. 집 안에 더 있다간 엉뚱한 화를 쏟아낼 것 같았다. 내겐 아이들과 잠시 떨어질 5분이 필요했다. 마실 물을 챙겨 집을 나오니, 비 온 뒤 바람이 내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아이들이 신나게 킥보드를 타는 사이, 길가에 주저앉아 뒷산을 바라봤다.
전날 비를 잔뜩 머금은 초록 풀잎이 탱글 했다. 꽃잎도 제 색을 짙게 내뿜었다. 벌들이 바삐 움직이고, 때 이른 잠자리가 주위를 맴돌았다. 하늘은 쾌청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아. 숨을 쉬겠다."
답답하게 명치 위로 들썩이던 숨이 턱 하고 내려갔다.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씽씽 신나게 달리며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표정이. 마음껏 놀며, 뛰며, 웃으며, 사랑하며 쑥쑥 자라는 내 아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