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사는 것 인정하기

아이와 나의 에너지가 맞지 않는 날

by 자유로운 풀풀

그런 날이 있다.

아이와 나의 에너지가 맞지 않는 날.


"어디 가자."는 아이의 쾌할함과

"가만히 있자."는 나의 루즈함이 부딪히는 날.


"같이 하자."는 아이의 가벼움과

"혼자 해봐."라는 나의 무거움이 부딪히는 날.


"와!"하는 아이의 싱그러움과

"하아-"하는 나의 질펀함이 부딪히는 날.


새파랗게 청명한 하늘과

후덥지근한 공기의 온도가 부딪히는 날.


이런 날은 특별한 방법이 없다. 어떻게든 지나가는 하루를 버텨보는 것이다. 믹스커피를 마시든, 초콜렛 조각을 삼키든, 차가운 물을 원샷 하든, 몸과 정신을 따로 쓰는 유체이탈의 경지에 이르든, 어떤 방식으로든 나를 살살 달래는 것이다.


육아의 기본이라는 일관성은 슬쩍 밀어버린다. 이거 저거 해달라는 아이의 요구에 당장의 귀찮음으로 "안돼."를 내뱉었더라도, 5초 뒤에 츤데레 매력을 뿜뿜 풍기며 "엄마 귀찮은데~ 이게 그리 하고싶어?"라며 아이에게 유들하게 다가가본다.


"안돼"라는 말 한마디에 비장해질 필요가 없다. 안돼를 외치고, 3초 뒤에 마음을 바꿔먹어도 크게 상관 없다. 이런 날은 특별한 날이니까. 안되었던 이유는 '하루의 리듬이나 가정의 문화'가 아니라, 나의 피로함이었을 가능성이 짙으니까. 아이는 '떼쓰니까 해준다'를 배우지 않는다. '엄마가 날 사랑하는구나'의 사랑을 가져가고, 배려를 배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선택을 하는 엄마의 사랑'을 담아간다.




오늘도 그랬다.


아이들은 바깥에서 3시간을 놀고도 모자라서, 차에 실린 유모차를 꺼내달랬다. 유모차에 앉아서 쉬고싶다는 것이다. 트렁크를 열고, 유모차를 꺼내 펼치는 그 과정이 너무 귀찮았다. 안된다고 이야기하자, 아이들은 재차 요구했다. 오랜만에 유모차에 앉아서 바람을 쐬고 싶단다.


"한 번 받아주면, 계속 그런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떠올랐지만, 알겠다는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텐트 아래에 깔린 유모차를 끄집어내는데, 연이가 낑낑 거리며 날 도와준다.


"엄마, 내가 도와줄게. 어때? 나 잘하지?"


딸아, 유모차가 그리도 타고싶더냐! 웃음이 피식 나왔다.


내 머릿 속의 유모차는 어깨가 빠질 정도로 무거웠는데, 손에 들린 유모차는 매끈한 초경량의 바디감을 자랑한다. 이 유모차가 이리도 가벼웠던가? 발로 탁탁 눌러 유모차를 펼치자 두 딸이 탄성을 지른다.


"엄마! 밀어줘요!"

"그래. 근데 내리막길은 안돼. 엄마가 지쳐서 화가 날 것 같아.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만 왔다갔다 하는거야."


까칠한 매력을 발산하며, 두 아이가 탄 유모차를 밀었다. 목적지 없이 그늘을 따라 유모차를 미는 것은 의외로 힘이 들지 않았다. 깔깔거리는 두 아이의 웃음소리와 시원한 바람이 조화롭기까지 했다.




그런 날이 있다.

아이와 나의 에너지가 맞지 않는 날.


그런 날은 아이의 높은 에너지에 나를 억지로 끼워맞추지 않는다.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한다며 나를 다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지하100층 에너지로 아이를 눌러버리지 않는다. 완벽한 아이가 되어야한다고 아이를 몰아세우지 않는 것이다.


그저, 아이의 높음과 나의 낮음 어디 사이에서 두 사람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간을 채워간다.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이 뒤섞여 미지근한 물이 되듯, 아이와 나도 뒤섞여 우리만의 하루를 만들어간다.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