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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Oct 25. 2022

당신의 추억을 팔러 왔습니다. 진심으로.

<20세기 소녀>의 추억팔이

 '추억팔이'라는 말은 어느새부터 비하의 용어로 쓰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추억팔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면 정체성이 희미한 작품이라고 폄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여러 추억팔이 작품들은 관객이 경험했거나 혹은 생경한 과거의 장소와 사건들을 오브제로 이용만 했고 작품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없는 속 빈 강정 같았다. <20세기소녀>는 20세기 막바지에 유행했던 간드러지는 것들을 모아놓았다. 유행하는 레트로에 편승하여 제작된 것만 같지만, 영화를 들추어보면 1999년을 살았던 사람들의 감성을 온전히 재연하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진다. <20세기소녀>는 정성을 다하여 추억을 파는 영화다.




 

 영화는 20세기의 끝자락, 1999년을 묘사할 땐 줄곧 파스텔 톤으로 보정되어 있다. 이는 사람들이 추억을 보존하는 방식과 일치시키고 싶어서가 아닐까. 우리는 늘 지나온 추억을 보정해 놓고 간직한다. 20세기의 끝과 21세기의 시작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에겐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데, 그 시기를 지나쳐온 사람들만이 간직하고 있는 특별한 기억일 것이다. 지난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치들. 포털사이트 다음, 수련회에서 선생님들 몰래 술마시기, 방송반, 그리고 당시 유행했을 하이틴 로맨스.


 하지만 이 영화는 단순히 레트로 요소들을 나열하는 선에서 그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20세기소녀>는 이미 지나가버린, 누군가에겐 잊혀져버린 20세기를 더하거나 덜하지 않고 그대로 비디오테이프에 담아서 관객에게 틀어준다. 그때에는 감당하지 못했을 복잡다단한 마음의 파고가 어른이 되고 돌이켜보니 사실은 별 것 없었다. 삐삐로 안부를 묻고 촌스럽게 고백하며 첫 사랑과 나눈 간드러지는 시간은 사실은 그 시절 누구나 겪었을 뻔한 기억이었다.





 "보고 싶어. 21세기의 너가.”


 이 영화는 21세기 바로 지금, 여기에 머물고 있는 당신에게 묻는다. 잘 살고 있냐고. 그와 함께 잠시 잊고 지냈던 20세기의 추억을 상기시킨다.


 추억은 현재로 찾아와 우리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지 않는다. 추억은 그저 내가 지나온 과거에 잠들어있는, 누군가를 좋아하면 심장이 아파하는 어린 나를 다시 한 번 마주하게 한다. 그것이 촌스럽고 오그라들어도 상관없다. 누군가는 그런 로맨스를 좋아했고, 그런 사랑을 해왔다. 나의 어리숙한 과거를 기어이 비디오테이프로 찍어 보내는 뜬금없는 불청객 같은 영화다. 이 뻔뻔하고 억척스러운 손님을 웃으며 반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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