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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Sep 16. 2022

'누칼협'과 '알빠노', 그리고 능력주의라는 허울

그 누구도 본인의 능력만으로 살아갈 수 없다

기술발전에 힘입어 전세계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쉽게 공유되면서 자연스럽게 남들과의 삶을 들여다보고, 동시에 타인과 타인의 삶을 저울질하는 태도들이 많아진다. 이는 인간의 욕망을 쉽게 발현할 수 있는 기술이 등장했기 때문에 당연히 따라올 수순이었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행태가 과해진다는 인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만기자본주의의 반작용 혹은 폐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금까지 이념의 장점을 흡수하는 유연성 덕분에 오래도록 생존했던 자본주의가 이번에 선택한건 아무래도 개인주의와 능력주의 같다.


현 세대는 공정함을 미덕으로 삼고, 이에 부합하지 않으면 강력한 반발심을 표출한다. 이전 세대가 기득권을 놓지 않은 상황을 향한 반발심처럼 여겨지는데, 이런 현상도 사회를 구성하는 세대 간 교체시기가 가까워지면서 따라올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현 세대가 내세우는 공정은 능력주의 라는 이상한 탈을 쓰더니 점차 변질되는 인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급작스러운 팬데믹 때문에 패러다임 시프트가 반강제적으로 가속되었고, 우리들의 상황은 빠른 변화에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것만 같다. 이는 자연재해 이후 파생되는 밈들을 살펴보면 쉽게 체감된다. '누가 칼로 협박했냐', '알빠노?' 같은 밈은 죄다 공정의 허울을 쓴 분노표출과 다르지 않다. 네가 선택한 건데 왜 어려움을 표하느냐, 그 어려움은 너의 무능에서 오는 어려움이다, 그걸 왜 우리가 알아야 하냐, 라는 반응이다. 능력이 없는 자들은 자신의 고통을 토로할 자격도 없다는 식의 밈은 유쾌하게 받아들이기 참 어렵다. 이 밈들은 얄밉게도 개인주의에서 비롯된 농담이라는 변명까지 내세울 수 있으니 더욱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홈플러스에서 판매를 시작한 당당치킨과 프렌차이즈 치킨 점주들 간 갈등,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점주들을 향한 날카로운 시선이 그렇다. 사람들은 점주가 프렌차이즈 가게를 운영하면서 지출해야 할 임대료와 프렌차이즈 비용을 생각할 필요 없이, 자신의 비용을 줄여줄 대형 마트의 마케팅 전략에만 환호한다.


상황을 한 발 더 밀고 나아가 본다면, 능력주의를 위시한 사람들의 분노는 결국 세상에 능력 없는 존재들은 사라져도 마땅한 것이다, 라는 뜻으로 독해된다. 마녀사냥과 조리돌림. 이 모든 근원은 당연히 개인의 삶이 각박해진 것도 있겠지만, 각자도생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적 태도 때문일 것이다. 저 밈들을 바이블처럼 신뢰하는 이들은 자신이 발딛은 사회가 타인이 베푸는 호혜적인 행동 덕분에 유지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살 수 있는게 오직 나의 능력 덕분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 누구도 혼자 살 수 없다.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휴스턴 대학교 졸업연설에서 '나는 자수성가를 믿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능력 있는 개인도 사회구성원의 관심과 배려가 없다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그의 연설이 요즘 다시 떠오른다. 공동체주의에서 개인주의로 사상의 선호가 바뀌는 시점이라지만, 이를 이용해 자신의 분노를 해소하는 이들의 행동이 그리 고깝게 여겨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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