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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Dec 20. 2022

아이돌이 아닌, 친구가 되고 싶어

뉴진스 선공개 싱글 'Ditto'를 듣고

 아이돌은 본래 '우상'이라는 뜻을 지녔지만, 지금은 10대-20대에게 인기를 얻고 지지를 받는 연예인을 지칭한다. 동나이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쉽게 발견할 수 없는 외모 혹은 재능을 지닌 이들은 음악산업에 뛰어들고 주목받으며 '아이돌'로 불린다. 이들은 특히 자신만의 자아를 발견하는 중인 10대 청소년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트렌디를 선도하는 패션스타일과 이를 뒷받침하는 외형적 아름다움, 무대를 장악하는 퍼포먼스는 나의 삶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내 곁에 두고 싶은 욕망과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을 향한 대리만족은 한국 음악시장의 핵심공략이었고, 덕분에 한국음악산업에서 아이돌은 주류상품이 됐다. 이는 K-POP을 흥행시켰지만, 일련의 과정이 순기능만 있을 리 없다. 청소년들을 쇼비즈니스에 진출시키고 있는 산업의 윤리성도 있겠지만, 평범한 청소년에게 결국 닿지 못할 허황된 꿈을 판다는 지점에서 현생과 덕질의 간극만 키우고 있는게 아니냐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는게 아이돌산업이다.



어느새 '4세대 아이돌'이 음악시장을 장악하는 중이다.




 여러 아이돌이 우상이 되기 위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뉴진스는 지나친 1990년대 문화를 소환하는 아이돌로 데뷔한다. 이들은 X세대의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1990년대 문화를 '레트로'로 소비하는 10대들의 호감을 얻었다. 여기에 비스츠앤네이티브스(줄여서 바나) 소속 프로듀서 250과 FRANK의 트렌디한 힙합 기반 사운드를 차용한 덕에 힙합팬들의 시야에도 들어오며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Attention-Hype boy-Cookie를 동시에 히트시킨 뉴진스는 이제 검정치마와 우효를 작사과정에 초청하여 누군가에게는 이미 지나친, 누군가는 현재진행중인 학창시절의 아련함을 끄적인 노래를 선공개했다.


 'Ditto'의 뮤비에서 1990년대-2000년대 초 문화적 레퍼런스를 읽어내는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VHS의 질감, 여고괴담이 연상되는 서늘한 분위기, 당시 이와이 슌지 감독이 담았던 학창시절의 정서 등 뮤비 도처에 1990년대가 깔려있다. 아이돌을 소비하는 10대-20대는 물론이고, 이제는 30대-40대가 되어버린 어른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뮤비는 그들의 데뷔 EP의 연장선이다. 2023년에 유행을 예정받은(?) 저지클럽 사운드의 시초인 볼티모어클럽 사운드를 차용하면서 트렌드를 놓치지 않겠다는 포부도 느껴진다.



뮤비 'Ditto'의 한 장면. VHS의 질감과 홈비디오 감성은 1990년대를 대표한다.



 영리한 기획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Ditto'는 뉴진스가 그들의 팬 '버니즈'를 향한 일종의 고백이다. 뮤비 속 뉴진스 곁에 자리하며 그들을 캠코더로 담는건 '희수(버니즈)'다. 그들과 함께 있으나 그들과 함께 출 수 없는 희수는 종종 그들이 없는 허공을 촬영하는 모습을 보인다. 양면이 있는 카세트테이프처럼 SIDE A - SIDE B 로 공개한 뮤비는 뉴진스가 자신들의 한계, 나아가 아이돌의 태생적 한계를 밝히는 것처럼 보인다. '덕질'이라고 표현되는 특정 아이돌을 선망하여 팬을 자처하는 행위는 아이돌이 구축한 세계관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허황된 꿈만 쫓는 '섬뜩한' 행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보는게 현실의 희수(팬)에게 어떤 도움이 될지도 미지수다. 주변 시선이 어떠하든 자신만의 아이돌을 눈에 담는 희수는 언젠가 현실의 사랑(뮤비 속 남주)을 향해 나아갈 것이고, 뉴진스만을 바라보던 캠코더는 부서져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 뉴진스는 필연적으로 그들의 곁을 떠나게 될 희수를 지켜보아야만 한다.



자신의 아이돌과 그 누구보다 가깝지만 아이돌은 아닌 존재, 그들의 세계관에 심취해 있으나 이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외면받을 수 있는 존재. 바로 아이돌의 팬이다.




 하지만 'Ditto'는 뉴진스가 팬들에게 우리는 '너와 같은' 존재, 즉 우상으로 바라보아야 할 선망의 대상이 아닌, 자신들과 삶의 일부를 함께 보낸 친구이고 싶다고 말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이돌은 10대-20대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유명해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팬은 시간이 흘러 아이돌이 만들어낸 '꿈'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순간을 맞이한다.


 뉴진스는 'Ditto'를 통해 자신과 청춘을 함께 보낼 팬들의 시간은 시간은 결코 허황되고 덧없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던 도중 불현듯 발견한 비디오테이프처럼 나와 나의 아이돌이 서로를 바라보며 기록했던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뮤비의 후반부는 넷플릭스 영화 <20세기 소녀>가 연상된다.) 당신의 허황된 꿈이 아닌, 당신의 삶에 녹아들고 싶다는 고백. 추억은 우리의 생각보다 힘이 세고, 뉴진스는 당신의 아련하고 강한 추억에 일부가 되고자 한다. 위로와 같은 팬송이다.



'우리도 언젠간 한때의 아이돌로 사라지겠지만, 너의 추억 속에는 영원히 살아 숨쉬겠지. 너의 지난 학창시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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