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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Jan 03. 2023

아이돌 잔혹사를 끊고 싶은 결연함

뉴진스 싱글 'Ditto' MV를 보고

 선공개곡 'Ditto'에 관한 글에서 아이돌의 태생적 한계를 언급했었다. 이번엔 그와 정반대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OMG'는 한국음원시장에 발을 딛은 뉴진스가 청자들에게 '한국 아이돌'로 규격화되는걸 거부한다. 나아가 청자들이 아이돌에게서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을 행하는걸 요구하는 뒤틀린 소비행태(그들이 애정이라고 오독하는 행위)를 되짚고, 과거 그들이 아이돌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욕망과 애정을 갈구하려다 빚은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까지 담겨있다.




 '병맛 광고'로 이름을 알린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감독이 연출한 뮤직비디오는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정신병동에서 하니는 자신이 아이폰이었다고 말한다. 단순 아이폰 광고의 패러디처럼 보이는 이 설정은 '저는 당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제가 누구인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요'에서 그 의도가 드러난다. 아이돌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음원시장에서 청자들에게 소비되어야만 하는 상품으로 기능한다. 어떤 수식어를 붙인다 해도 아이돌은 소비자의 수요에 반응하는 기업의 결과물이다. 여기에서 아이돌을 연기하는 구성원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여도 그것을 외부로 표출할 수 없다. 그것이 시장의 요구에 들어맞는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그들의 위치는 위협을 받고 나아가 존재마저도 부정당할 위기에 놓인다. 한국 아이돌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런 식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이 존재했었다.






 뮤비 속 뉴진스는 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여길 만한 행동을 하다가 정신병동에 들어온다. 그들은 병동에서 모여 자신만의 상상을 공유한다. 자신이 아이폰의 시리였다는 말을 시작으로 신데렐라, 성냥팔이소녀,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그리고 영화 <라 붐>과 <레버넌트> 속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한다. 한 술 더 떠서 해린은 자신이 고양이라고 말하면서 입에 츄르르 물기도 한다. 정신병동 직원의 시선으로는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망상 혹은 정신병으로 치부될 수 있다. 이는 뉴진스의 최근 행보에도 대입할 만한 장면이다. 현재 K-POP 시장은 벌스-프리코러스-드랍-코러스 레퍼토리 공산품 같은 음원들을 찍어내고 있다. 흥행했던 사운드를 죄다 욱여넣는 맥시멀리즘 편곡은 이제 대세라고도 부르기 민망한, 규칙과도 같았다. 그러나 뉴진스의 최근 음원들은 여기에서 한 발 벗어난 모양새다. 미니멀한 악기로 구성되지만 트렌드를 미리 예측해 장르 사운드를 차용한다. 프로듀서의 인터뷰처럼 ’Ditto‘에서는 뉴 저지 클럽 사운드를 가져왔고 ’OMG‘는 UK개러지와 트랩 사운드를 혼용했다. 이는 지금껏 흥행공식을 반드시 지켜왔던 기존의 아이돌 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행보다.


 한낱 낙서로 여겨지는 그들의 상상은 뮤비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침착맨에 의해 제대로 독해된다. 사람들은 그들의 상상을 '정신 나간 짓'으로 여기지만, 세상은 아이들이 상상한 것들이 고스란히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독특한 관점을 지닌, 소위 '애새끼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침착맨의 눈에만 발견된다. 위트와 의미를 모두 잡은 결말이다.






 신우석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아이들(뉴진스)은 생각이 자유로운데 사람들의 평가와 오해를 받으며 이 모습을 잃을까바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OMG'는 그 어떤 상상이든 음악과 퍼포먼스로 구현하고자 하는 아이돌에게 불편함을 토로하고 "아이돌 뮤비는 그냥 얼굴이랑 안무만 보여줘도 평타는 친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규격화된 'K-아이돌'로 속박시키고자 하는 자들을 SNS 바깥으로 끄집어낸다. 그리고 타이핑 몇 번으로 아이돌을 통제하려는 욕망을 들추어낸다. 10대 아이돌 멤버들 모두의 주체성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들은 프로듀서의 리딩대로 움직이는 불쌍한 아이들이라고 말하는 모순은 악플로 변질되었고, 그 악플은 지금껏 여러 아이돌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전적이 있다. 뉴진스는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넌지시 말한다.


  치열한 음원시장에서 BEST가 아닌 ONLY ONE이 살아남는걸 보여주려는 뉴진스는 독보적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들이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그들을 관조하면 된다.




추가로,




 이걸 '정신병동의 모에화', '트위터리안을 저격'한다고 오독하는 사람들은 좀 더 사유할 것을 권한다.


 뉴진스는 뮤비에서 자신들을 정신병동의 환자로 묘사하지만, '정신병'이라고 규정 하고 그들을 병원에 가둔건 외부의 시선이다. 오히려 뉴진스는 자신만의 세계관이 확고하지만 이를 정신병으로 치부하는 세계의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자신들의 상상력 (가능성)을 펼치고자 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뮤비의 마지막 장면은 트위터로 조언이랍시고 그들을 통제하려는 악플러를 모니터와 액정 바깥으로 데려와서 '너희들도 너희들만의 세계관이 있으니까 이러는 거겠지. 그럼 가서 우리랑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해보자.' 라고 말한다. 이건 단순히 저격과 일침으로 볼 수 없다. 이옥섭 감독은 '미워지면 사랑해버린다'는 인터뷰를 남겼던 적이 있고, 이번 뮤비는 이 발언에 완벽히 부합한다.


 뉴진스는 제작진이 기획한 판에서 훌륭히 제 역할을 수행한다. 씬을 찍기 전에 대화하고 상의하며 연기하는 감독과 배우의 관계처럼. 우리는 어쩌면 아이돌판의 잔혹사를 끊으려는 기념비적인 시도를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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