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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Aug 09. 2023

한국 텐트폴 영화들은 과감한 상상을 포기한걸까?

<밀수>, <비공식작전>, 그리고 <더 문>을 보고

  29주-30주차 기준 영화관을 찾은 관객은 758만 명이다. 작년 879만 명과 비교하면 현저히 감소했다. (심지어 작년은 팬데믹 시기였다) OTT는 사람들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편리하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만들었고, 영화관은 경쟁상대의 위협적인 행보에 아랑곳하지 않고 티켓값을 올렸다. 그리고 결과는 보다시피. 물론 영화가 팬데믹 이후 가속화된 콘텐츠 소비패턴 변화에 적응하기는 어렵고, 영화관 또한 인플레이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걸 안다. 하지만 적어도 한국 관객들에게 영화관은 가장 ‘가성비’ 좋은 엔터테인먼트였음은 부정할 수 없다. 가격이 오르니 관객들은 신중해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비용의 문제를 넘어, 관객을 다시 영화관으로 데려올 방법은 뭘까. 하나마나 하는 소리겠지만 티켓값이 저렴했던 시기의 영화보다 잘 만들면 된다.나중에 VOD로 봐도 그만인 영화가 아닌, 개봉당시 영화관에서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만한 그런 영화들. 그럼 이번 개봉한 한국 텐트폴 영화들은 어떨까.




  <밀수>는 ‘군천’이라는 가상의 지역에서 물질하는 해녀들이 밀수에 손을 대면서 벌어지는 범죄영화다. 김혜수-염정아를 주연으로 내세운 영화는 ‘해녀’라는 소재를 통해 육체노동으로 삶을 영위하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며 1970년대의 시대적 폭력성에 반발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형식적으로는 여성서사를 내세운다. 영화에는 류승완 감독의 장기가 곳곳에 박혀있다. 노골적으로 잔인함을 드러내는 액션 시퀀스, ‘B’급 정서를 호소하는 촌스러운 대사들, 특히 유행어로 밀어붙이고 싶어하는 대사들(“너 나 모르냐?“는 <베테랑>의 몇몇 대사들이 떠오르곤 한다)이 그렇다.




  <비공식작전>은 1980년대 레바논에 인질로 붙잡힌 외교관 송환하기 위한 비공식임무를 그렸다. <모가디슈>와 <교섭>이 겹쳐보이는 영화에 레바논이라는 배경은 이제 관객들에게는 그리 특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는 김성훈 감독의 전작인 <터널>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국가라는 공동체가 개인을 보호하지 않는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개인 간 연대가 위기를 극복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리고 텍스트로 전쟁의 참혹함을 배웠던 인물을 레바논이라는 내전지역에서 직접 참혹함을 체험한다는 점에서 감독의 의도는 뚜렷한 편이다.






  <더 문>에는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 영화에 SF라고 부를 만한 요소는 ‘우주’라는 배경 하나다. science fiction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 영화에는 장르적 특성이 부재하다. 오히려 그간 김용화 감독이 흥행시킨 영화들의 공식들로 꽉 차 있는데, 과시적인 CG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시킬 요소들로 즐비하다. 눈물을 요구하기 위해 짜여진 인물 간 죄의식, 오직 스펙터클의 전시를 위해 벌어지는 사건들이 그렇다.


  세 영화는 각자 나름의 흥행요소들을 갖추며 개봉했지만 미세하게나마 공통적으로 엮이는 한가지가 있었다. 세 영화 모두 상상력과 과감성을 포기한 것만 같다. <밀수>는 전라도라는 현실지역을 언급했지만 여기에 ‘군천’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끌어다 왔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역사를 배경으로 삼지만 역사의 대안을 상상하며 장르적 쾌감을 일으키는 지점과 유사하다. 하지만 과감한 설정과는 별개로 이 영화는 그간 흥행해왔던 범죄물의 전형성을 지나치게, 착실하게 따라간다. <비공식작전>은 어떨까.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다고는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상 레바논을 한국으로 상정하고 과거의 국가적 폭력을 지적한다. 보호기능을 상실한 지역에서 펼쳐지는 액션과 서스펜스는 준수하고 하정우와 주지훈은 항상 잘 해 왔던 배역을 맡아 안정적인 연기를 펼친다. 익숙하고 안정적이지만, 너무 안전하다. <더 문>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상상력이 요구되는 SF장르에 상상이 없는 기이한 영화다. 오직 CG를 과시하기 위한, 관객의 감정을 요동치기 위한 의도만이 잔존해 있다.


  상상력이 부재하니 새로운걸 만들겠다는 과감함도 사라진다. 그러니 여태껏 통용된 흥행공식을 따라간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관객들은 이제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음식점을 굳이 방문할 이유가 없다. 이미 OTT라는 배달이 있기 때문이다.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던 영화관의 이미지는 이제 사라졌고 그때의 흥행패턴을 반복하는 텐트폴 영화는 더이상 관객들이 반기지 않는다. 제한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는 이상, 텐트폴 영화의 흥행부진은 반복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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