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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Nov 16. 2023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닫는 노인의 회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솔직한 고백들.

지브리 세계의 종결. 

정확히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쌓아올린 지브리 세계의 끝을 예고하는 영화.



  은퇴를 번복하고 진짜 찐막최종은퇴라고 선언하며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제목의 공격적인 질문과는 사뭇 다른, 감독의 솔직한 자기회고다. 영화 곳곳에 흩뿌려진 은유와 셀프 오마주를 찾아내는 재미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인 <바람이 분다>의 연장선에 놓여있는, 예술가로서의 삶의 소회를 들여다 보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어온 영화 중 가장 이기적인 작품으로도 읽혀진다.(심지어 역대 가장 많은 제작비를 할애하기도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줄곧 군국주의를 비판해 왔지만 정작 자신은 전쟁의 수혜를 누렸기에, 그런 예술가가 창작한 세계는 순수할 리 없다는 고백은 마치 자신의 창자까지 꺼내 보이는 것처럼 솔직함을 넘어서 일종의 참회처럼 보인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에서 벌어지는 모험은 사실 유년시절 어머니의 상실이 시발점이라는 사실, 그리고 현실의 부조리를 극복하고자 유토피아에 가까운 세계를 창조했다는 의도, 그러나 그런 세계에도 결점이 있다는 점, 그리고 어쩌면 이 모든게 개인의 욕망 해소에 불과했으리라는 고백. 이런 예술가의 태도에는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도피의 끝은 결국 현실로의 귀환이라는 것.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는 늘 그래왔다.




  영화에는 자신의 세계를 이어받을 후계자를 구하지 못했지만, 어쩌면 그게 당연했으리라는 넋두리와 함께, 창조한 세계가 스스로 붕괴를 자초하는 광경은 우연이라기보다는 필연에 가깝다. 그는 예전 인터뷰에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기세로 작품을 만든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의 작품이 현실을 뒤바꾸지 못했다. 그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고, 이 영화 또한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생의 대부분을 쏟아내어 만들어낸 이 세계가 결국 시간에 무너지고 먼지가 쌓여서는 언젠가 잊혀지고야 말리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수십년간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온 감독이 하고자 했던 말은 무엇일까. 붕괴한 세계의 조각을 주인공이 쥐고 있듯, 언젠가 잊혀지겠지만 조금이라도 추억으로 간직하라는 말 뿐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동화를 보고 자란 이들에게, 이제 지브리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끝이라고 말한다. 줄곧 현실의 위기를 우화로 그려왔던 그는 유일하게 이번 작품을 자신의 예술의 마침표로 삼으며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 그의 마지막 고백은 세간의 평가처럼 재미없는 영화, 노인의 정신없는 넋두리에 불과할 수 있다. 허나 유년시절에 잊을 수 없는 동화들을 안겨준 할아버지의 회고를 들어주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심지어 그 넋두리마저도 꿈 속을 거닐다 깬 것처럼 황홀하다면, 그의 허심탄회한 마무리를 지켜볼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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