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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Jul 11. 2024

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뻔한 방법에 관해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반복에 묘한 위로를 받는 이유

  비관주의자인 내가 바라보는 삶이라는건 '뻔함' 그 자체다. 남은 삶이 불행하다고 여기는 이유는, 앞으로 닥쳐올 미지의 시간이 불확실해서가 아니다. 주어진 환경과 살아온 세월을 토대로 충분히 예측이 가능해서다. 그렇기에 비관주의자에게는 삶 자체가 불안과 불행의 연속이다. 앞으로 내 삶이 크게 나아지지 않고, 극적으로 변화할 리 없겠다는 불안. 아마 남은 삶은 예측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런 면에서 <퍼펙트 데이즈>도 뻔하다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소재, 연출 방식, 의도 등 충분히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이 그렇다.   





  사람들이 배설하는 공간을 청소하는 노동자가 주인공인 점, 그가 일상의 소박한 행복을 감사하면서 산다는 점, 빔 벤더스 감독이 일본 영화계의 거장인 오즈 야스지로를 향한 존경을 영화 곳곳에 특정 장면으로 담아 놓았다는 사실은 소위 영화 좀 봤다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예상이 가능한 지점들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퍼펙트 데이즈>에 관한 영화적인 이야기는 그다지 할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뻔한 지점들, 요컨대 영화가 청소 노동자가 육체노동을 반복하는 와중에도 주어진 삶을 켜켜이 쌓아가는 상황과 쉬는 시간에 머리 위로 쏟아지는 풍광을 담아내는 장면들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한다. 그리고 그런 장면들이 쌓이고 쌓여 끝내 스크린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무엇이든 돈과 결부된 물질주의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챗바퀴를 돌리는 지긋지긋한 반복 속에서 어떻게 새로움을 발견해야 하는가. <퍼펙트 데이즈> 속 청소노동자 히라야마는 사랑마저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다고 투덜대는 젊은 동료의 말에 휩쓸리지 않고, 레트로가 돈이 된다며 카세트 테이프를 팔아버리라는 말을 흘려 들으며 자신만의 일상을 살아간다. 일정한 리듬을 타며 살아가는 청소노동자의 삶은 영화라는 매체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특별한 광경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 사람들의 삶이며, 나 자신의 삶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나온 대사들을 빌려 말해 본다. 순간을 포착하여 박제하고 그것에 영속성을 부여하려는게 예술가의 삶이라고 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하며 주변 자연을 관찰하고 은연중에 마주하는 불규칙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노동자의 삶이다.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대다수가 영화 속 히라야마처럼 순간을 받아들이는 쪽을 택하고 살아가고 있다. 글로써 영화를 되새김질하고 있는 나 또한 그렇다.

  히라야마는 조카인 니코에게 말한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어쩌면 삶이 불행한 이유는 다가오지 않을 미래를 미리 예측하고 재단하느라 정작 살고 있는 현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느끼지 못해서가 아닐까. 



  영화 속 히라야마가 변 사람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전하는 위로는 스크린 너머 반복된 삶을 견뎌내는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우리의 삶이 매번 뜻대로 될 리 없다. 타인과 비교하면 보다 고된 시간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퍼펙트 데이즈>는 그 뻔하디 뻔한 삶의 희노애락, 반복되는 일상에서 찾아내는 소중한 순간에 감사하자는 그 태도를 청소 노동자의 일상을 통해, 그리고 배우 쿠쇼 코지의 희비가 공존하는 얼굴을 통해 재차 말한다. 당신이 그토록 지루하다고 여기는, 혹은 견디고 있다는 지긋지긋한 삶은, 사실 매번 새로운 순간들로 이루어진 완벽한 날이라고. 그 뻔한 말은 비관주의자에게도 하루를 더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전해준다. <퍼펙트 데이즈>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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