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송인 Nov 06. 2018

상담자로서의 용기

"환자가 치료자를 선택할 때, 치료자가 자신의 가혹한 현실 앞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정신분석적 심리치료, 107쪽.


임상심리전문가 수련생 때 정신병 진단을 받은 환자분을 지역사회 정신건강센터에서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10회기까지도 못 가고 드롭아웃됐어요. 상담 그만하겠다고 그 환자분이 제게 말했다는 거죠. 어떤 경험을 제게 말했는데 저는 그 얘기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 주제에 관해 더 얘기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얘기한다면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지 등에 관해 생각하다 보니 멘붕이 왔는데 그걸 보고 저에 대한 신뢰가 깨졌을 테죠. 지금이라면 그 때보다는 조금 더 여유롭게 내담자의 경험 세계에 초점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런 얘기들, 외상처럼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내담자가 경험하는 고통을 어떻게 외면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계속 되는 것 같아요.


고통에 대해 함께 얘기 나눈다는 것이 중요해요. 내담자의 삶이, 그리고 우리네 삶이 힘들어지는 이유 중 하나는 고통을 계속 회피하려 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이가 썩고 있는데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임플란트를 박아야 하는 것과 비슷하죠. 치과에서 신경 치료 해보신 분은 알겠지만 작은 고통 피하려다가 더 큰 고통이 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자는 내담자보다는 조금 더 용기를 내야 해요. 내담자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상담자가 그 고통에 섣불리 다가가는 것은 내담자에게 도움이 안 되죠. 다만 내담자가 그 얘기를 꺼내놓았을 때 상담자는 회피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해요. 근데 그게 어려운 일입니다. 반복되는 상담 경험과 수퍼비전 등을 통해 배워 나가는 중입니다.


안녕하세요. 대학원에서 임상심리를 전공하고 병원에서 수련 3년을 거쳐 2016년 초에 임상심리전문가를 취득했습니다. 이후 정신과 환자에 대한 심리평가뿐만 아니라 아동 심리치료와 청소년 상담을 하며 심리치료 경험을 쌓아나가는 중인 상담사 구름입니다. 이 매거진의 타이틀 Skeleton cupboard는 영국 임상심리학자인 타냐 바이런의 책 『왜 소녀는 다섯 살 난 동생을 죽였을까? 』의 원제입니다. 찬장 속에 있는 해골이란 뜻인데,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기 힘든 자신의 과오를 비유하는 것이기도 하죠.


내담자나 상담에 관한 얘기는 많지만 상담자가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관한 얘기는 적은 것 같습니다. 이 매거진에 실릴 글이 앞으로 상담자가 되고자 하는 분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미 상담자인 분에게 동병상련의 위로나 반면교사로서의 예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상담자 역시 삶이 조금 더 평안해지기를 바라는 상처 입은 위로자일 뿐이죠. 앞으로의 글 기대해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