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제목은 단단한 영어공부, 내 삶을 위한 외국어 학습의 기본 입니다.
기존에 제가 생각하던 언어학습의 기조와 너무 일치하는 책이라 단숨에 읽었고 애석하게도 그만큼 내용이 빨리 잊혀졌습니다.
그래도 제가 상식으로 알고 있던 부분과 배치되는 두 대목이 있어 그 부분을 기억하려고 이 포스팅을 합니다.
첫째, 저자는 3장에서 인풋 중심의 영어공부가 갖는 한계를 지적하고 다른 방향을 알려줍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크라센이라는 학자가 인풋을 강조할 때, 이해가능한 인풋이 늘어날수록 다음 단계로의 점진적인 도약이 가능하다는 그런 비고츠키적인 배경을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풋 만큼이나 인풋이 발생하는 정서적 측면도 중시한 것 같습니다. 동기 수준이 높고 자신감이 있으며 불안하지 않을 때 인풋을 더 잘 흡수한다는 것이죠(즉 정서적 필터 가설).
그런데 이 두 가지가 간과된 채 무조건 많이 읽고 듣고 쓰고 말하는 것이 능사인양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답습하고 더 많은 인풋을 달성하지 못한 데 따른 불안을 조장하면서 원래 개념과는 동떨어진 방식으로 한국 사회에 인풋가설이 통용되고 있다 합니다.
저도 리스닝 1500시간을 목표로 하여 지난 1년 동안 1/4 정도를 채웠는데, 귀가 뚫리려면 아직 갈 길이 멀기에 늘 조급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루에 50분은 들어야 하는데 그것에 못 미치면 다소 스트레스도 받고요. 들리든 안 들리든 무조건 많이 듣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는 데 이 책의 개인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인풋의 양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님을 알게 됨과 동시에 이 책의 9장에서 말하는 슬로러닝 개념이 와닿았습니다. 사실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많이 읽고 듣기 위해서 그간 스스로를 채찍질한 감이 없지 않은데 저자는 정반대 개념을 제시해서 신선했습니다.
슬로러닝은 단어 하나에서도 세계의 연결성 혹은 우주를 볼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단어나 문장의 의미를 곱씹고 얼굴 근육의 미세한 변화를 느끼며 발음도 해보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천천히 영어를 공부하며 "학습을 모니터링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면을 응시하고 세계와 대면"(246쪽)하는 것이 슬로러닝인 것 같습니다.
실상 아무리 효율적으로 빨리 배운다 한들 영어는 죽을 때까지의 과업이기 때문에 빠르게 간다고 해서 빨리 가는 게 아니죠. 제가 좋아하는 등산으로 보면 영어공부는 정상에 가기 위한 노력이라기보다 둘레길을 산책하며 풍경과 자기자신, 그리고 둘의 만남을 온 몸으로 느끼는 것에 가까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