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mmarize]
글쓰기를 통해 불쾌한 느낌이 도드라졌던 상황에서의 감정과 욕구를 연결할 수 있을 때 자기와 타인에 대한 이해를 더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그 모든 순간이 자신이 누구인지 새삼 깨닫는 기회가 된다. 그리고 이렇게 가다듬는 과정을 통해 삶을 긍정하고, 진짜에 더 가깝고, 더 단단한 정체성이 만들어진다. - 아버지의 마지막 골프 레슨 (더 충만하고 의미 있는 삶으로 안내하는 인생수업)
스스로가 매순간 경험하는 감정은 자신에게 중요한 욕구와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정보와도 같습니다.
감정은 그것이 매우 파괴적인 것으로 보일 때조차 자신에게 중요한 무엇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감정을 느끼기 어려운 것은 자신에게 중요한 무엇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몸으로 느끼는 느낌을 인식으로 상징화하고, 반성하고, 설명하는 내러티브를 형성하는 변증법적 과정을 통해 순간순간의 자아를 구성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 정서중심치료 (원서 2판, DeepL 번역)
감정은 일차적으로 몸의 느낌이기 때문에 이를 언어로 표현하고, 이 표현을 더 큰 맥락 안에 위치시키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의미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 욕구와 가치이며, 감정을 욕구 및 가치와 연결시킬 수 있을 때 처음 인용한 문단에서와 같이 자기가 누구인지 더 명확하게 깨닫는 기회가 됩니다.
최근 경험한 개인적인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합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일요일 아침 7시부터 스터디카페에 나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세 시간 정도 일을 했으나 써야 하는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예상한 것보다 시간이 지연되고 있을 때 아내가 아침 먹으러 집에 오라고 이야기합니다. 일을 하다가 중단 후 다시 시작하면 일을 쉬지 않고 했을 때보다 시간이 더 걸릴 때가 많습니다. 일의 전체 맥락과 필요한 정보를 재인출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아침은 스킵하고 일 다 마치고 들어가겠다고 하니 아내가 톡을 딱딱하게 보내며 불편한 심기를 표현합니다. 이미 밥을 다 차려놓은 상태였나 봅니다. 11시에 가족이 다 같이 성당에 갔다가 곧바로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거든요.
일차적인 반응은 저도 화였습니다.하지만 표현하지 않았고, 일을 다 마치고 갈 생각으로 업무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집중이 안 되더군요. 그래서 일단 집으로 간다고 말했습니다. 뒤늦게라도 일단 집으로 가서 아내의 화를 누그러뜨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보다 중요한 것이 건강과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해야 할 업무가 많아서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일하는 상황을 왜 이해하지 못할까 생각하며 아내에게 똑같이 짜증으로 반응할 수도 있었지만, 집으로 걸어가는 10분 동안 나는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제 화는 아내에게 가야 할 무엇이 아니라 시간에 맞게 우선순위를 설정하지 못한 자신을 향한 것임을 자각했습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늘리고 싶은 저의 바람이 좌절된 데 따른 화이기도 했고요.
여기까지 생각이 오니,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그제서야 아내의 입장에 역지사지 할 수 있었습니다. J 성향이 강한 저 역시 예정된 스케줄에 급작스럽게 변동이 생기면 불쾌한 느낌이 커지는데, 아내는 저보다 훨씬 더 철두철미한 J입니다. 이러한 특성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화라는 감정 이면에 시간 활용의 효율을 높여서 생산적으로 살고 싶다는 제 욕구와 예측 가능성 및 가족 간의 유대가 중요한 아내의 욕구가 있음을 자각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하다고도 할 수 있는 에피소드지만 예측 가능성과 유대 욕구가 좌절될 때 아내가 느낄 불쾌감을 생각하면서 앞으로 비슷한 일이 생길 때 일을 나중으로 두는 것이 결혼 생활을 지혜롭게 꾸려나가는 방법이겠다 생각했습니다.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혹은 내러티브를 구성한다는 말은 이처럼 불쾌한 느낌이 도드라졌던 상황을 복기하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을 의미하지 않을까요. 글쓰기를 통해 감정과 욕구, 가치 등을 성찰함으로써 자기와 타인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