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송인 Dec 21. 2018

good-enough psychotherapist

사적인 삶과 전문가로서의 삶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다는 것이 상담이라는 직업의 빛이자 그림자인 것 같다.


그림자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예를 들어, 집에 돌아와서도 내담자들로부터 받은 압박감이 지속됨으로써 가족들에게 해를 주게 된다.


"하루 종일 내담자들이 와서 그들의 골칫거리를 떠넘길 때마다 쌓여진 많은 압박감이 집 대문을 통과하는 순간 마침내 해제된다. 만약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가족은 정서적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 상담자가 된다는 것, 104쪽.


지친 몸과 마음이 가족에게 전염되는 것을 간혹 느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내담자의 안녕도 중요하지만 상담자로서의 내 안녕이 더 중요함을 상기한다. 자신을 소진시키면서까지 심리치료를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내담자에게도 좋지 않음이 자명하다.


상담에서 구조화를 비롯한 상담자-내담자 간의 '경계 유지 장치'들이 필요한 것은 내담자의 안녕뿐만 아니라 상담자의 안녕을 보호하고 이를 통해 내담자에게 최선의 도움을 주기 위함일 것이다. 일례로 위기사례가 아닌 경우 내담자에게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는 것이 상담에 도움이 안 됨을 요즘 체감하고 있다. 저녁에 집에서 쉬고 있는데 내담자로부터 연락이 온다면 부담이 되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이런 감정이 쌓이면 상담자-내담자 관계에 당연히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쉽다.


어느 정도는 사적인 삶과 전문가로서의 삶을 분리시켜야 하는 게 맞다고 보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상담이란 것을 재개한 올 한 해 나는 의욕만 넘쳐 이 분리에 실패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루틴하게 돌아가는 집안일을 얼른 마무리짓고 아이가 잠든 이후 상담이나 심리치료 책을 보는데 바빴다. 또한 상담과 상담 사이의 텀이 5~10분이다 보니 상담 내용을 복기해서 적지 못 한 채 다음 내담자를 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 금요일 저녁 정도에 복기를 한다. 상담을 하는 날이 토요일이니 6일이 지나서 복기하는 것인데, 잘 생각이 안 나서 녹음한 것을 1.5배 정도의 속도로 다시 한 번 들어볼 때가 많다. 하루 네 사례인데, 당일 취소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더라도 꽤 시간이 드는 작업이다.


수퍼비전을 3월부터 지금까지 6번 받았다. 검사 수퍼비전도 두 번 받았다. 개인상담 수퍼비전 자료를 만들기 위해 하루 정도 9시에서 10시까지 야근을 했다. 상담 그 자체에 1의 품이 들어간다면 상담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물밑 작업에 2에서 3정도의 품이 더 드는 것 같다. 돈보다도 시간이 참 많이 든다. 그래서 올해는 나의 일상 역시 상담에 상당 부분 잠식당했다. 잠식이라는 표현이 딱 적절한 것 같다. 점차 조금씩 파고들어 지금은 내 머리의 팔할이 상담과 심리치료에 관한 생각이다. self-doubt은 덤이다.


이런 현실적인 측면을 떠나서 당위적인 측면에서도 분리가 쉽지 않다. 무슨 말이냐 하면, 상담의 도구는 바로 상담자 자신의 성격이기 때문에 성격의 역기능적인 측면들을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하며 이런 부분들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당위적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곳은 당신의 위선을 직면해야 하는 불편함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영역이다. 확실히 만족스럽지 못한 당신의 개인적인 삶의 많은 측면이 있다. 이것들은 내담자가 매일 상담에 가져오는 것과 꼭 같은 동일한 문제들이다. 내담자가 이런 문제들을 가져올 때, 당신은 아마도 그들에게 더 깊고 만족스러운 친밀감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더 정직하고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떠한가?" - 같은 책, 86쪽.


내가 해결하지 못 한 내 안의 문제를 내담자에게 발견할 때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정서를 꽤 억제하는 편이다. 어떤 비극적인 일이 눈 앞에 펼쳐져도 정신 차리고 일단 일을 수습할 수 있을 정도로 관념화돼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또한 authority에 대한 반감이 심해 꼰대짓, 갑질하려는 양반들에 대한 혐오감이 크다. 실보단 득이 더 클 것 같은 경우 억제돼 있던 분노를 거의 죽일 듯한 기세로 공격적으로 표출하기도 한다(살아오면서 두세 번 정도 있었다.). 이런 문제를 내담자가 가져올 때, 난 할말이 별로 없을 것이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기 어려울 것이다. 고 이동식 선생님이라고 심리치료에 애를 쏟은 정신과 닥터가 있는데 이 사람이 인도의 구루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도정신치료 입문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이다. "너 자신도 극복 못한 게 무슨 다른 사람을 치료하느냐?" 4년 전에 봤던 책인데, 유독 이 말이 귓가를 맴돌 때가 많다. 자기문제를 들여다보고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없이 제대로 된 심리치료가 이루어질 리 없다.


"자신의 모습을 매일매일 직면해야만 하는 것은 커다란 선물이자 동시에 가장 어려운 짐이다. 각각의 내담자의 이야기에는 우리 자신의 일부분의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고, 우리는 우리의 미해결 과제를 거의 모든 상담회기마다 계속해서 인식하게 된다. 이와 같은 경우 개인상담이나 슈퍼비전을 받는 게 이상적이다. (중략) 그럼에도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는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문제 속에 자신을 묻어 버리는 것을 우리보다 더 잘하는 사람은 없다." - 같은 책, 89쪽.


오지 않는 내담자를 기다릴 때 많이 드는 생각은 '내담자가 오지 않는 게 내 문제 때문일까 내담자의 문제일까'이다. 라포 형성에 실패한 데는 내 책임이 더 크지 않을까. 믿을 만한 상담자라는 인상을 주지 못 했나 보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상담자가 내담자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논문에서는 크게 잡아도 15%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상담자로서의 자신의 영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말자, 뭔가 내가 알지 못 하는 다른 변수들이 영향을 미쳐서 안 오는 것이겠지,라고 마음을 다잡아 봐도..


"한계를 우리 자신에게 확신시키려는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담자의 삶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다. (중략)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고,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없으며, 더 자주 그러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부적절감을 느낀다." - 같은 책, 115쪽.


그렇다. 부적절감이 느껴지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싱글이라면 내 성격에 개인상담을 당장 시작했을 것이지만, 처자식이 딸려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 돈도 문제지만 시간이 더 문제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수퍼비전을 받는 것, 현 상황에서는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하지만 위로가 안 되는 게, 메타인지를 수퍼비전에서 돈 주고 살 순 있어도, 자각하기도 전에 내 성격적 요인이, 가치관과 신념이, 내적인 대상관계 양상이, 기타 등등이 내담자에게 암묵적으로 영향을 미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좋은 상담자라는 것이 존재하고 내가 좋은 상담자가 되고자 한다면, 나는 내 성격을 책임지고 보다 건강한 쪽으로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이론적 지향이 뭐고 가방끈이 얼마나 긴지, 심지어 임상.상담 경험이 얼마나 많은지는(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례를 봤는지 떠벌리는 사람도 있다고 하지만) 상담자의 성격에 비하면 매우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상담자가 되는 것은 우리의 모든 관계를 변화시키며, 친구들과 가족은 뒷전이 될 수 있다. 자신의 가장 가공할 만한 악한 영을 매주 대면할 것이고, 그 대가를 치를 것이다. 제대로 보수를 받지도, 인정받지도 못할 것이다. 최악의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며, 여러분은 최상의 상태를 요구받을 것이다. 그것도 매번." - 같은 책, 141쪽.


최상의 상태, 최상의 성격, 모두 불가능한 얘기다.


"...우리는 집에 돌아와서도 멋지고 활기차야 한다. 왜냐하면 내 친구들과 가족은 내가 밥벌이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으며, 그들은 우리가 초인적인 인내심이 있고, 관대하게 용서하며, 싸움을 걸어올 경우에도 타협적인 태도를 취할 것이라고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점에서 실수하거나 평정을 잃는다면, 어떤 사람들은 우리 앞에서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상담자라면서요?'" - 같은 책, 144쪽.


성숙한 성격.. 좋다. 그런 지향을 두고 언젠가 개인상담도 받고 지금처럼 수퍼비전도 꾸준히 받고, 앞으로 그렇게 살아나갈 것이 확실하다. 나를 믿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고상하지 않고, 너무 관념적이고, 때로는 분노를 행동화하고, 때로는 미숙하게 딸에게 화도 내고, 때로는 와이프에게 무뚝뚝한 임상심리전.문.가.로서의 내 모습도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고 그 상황에서는 그럴 수도 있었음을 위로함이 아닐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없는 상담자가 누굴 위로한단 말인가. 스스로를 잘 위로해서 자기중심적 관심사에서 벗어나 포커스를 가족과 내담자에게 다시 돌릴 수 있는 상담자가 있다면 그런 상담자가 good-enough psychotherapist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애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