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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송인 Nov 26. 2018

애도

저는 허리디스크와 척추 측만이 고질병입니다. 살아가는 데 큰 문제는 아직 없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가는 기분입니다. 


이 시한폭탄이 한 번 제대로 터진 적이 있는데, 2016년 봄이었습니다.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제주도를 자전거로 한바퀴 돌고 마지막날 한라산을 올랐습니다.


평소 같으면 등산 배낭을 메고 올랐겠지만 등에 제대로 밀착이 안 되는 나이키 가방에 제 여행짐을 모두 넣은 채 백록담까지 올랐습니다. 내려올 때는 길이 지루하고 화장실도 급해서 단숨에 뛰어내려왔습니다.


이 날 저녁 서울 집에 도착해서 아무 문제없이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 날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힘들만큼 허리의 통증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3월, 4월, 5월까지 고생하고 5월말에 공연장에서 방방 뛴 것이 화근이 돼 한 달을 더 허리 통증 때문에 고생하게 됩니다.


MRI 찍어 보니 척추 한 부분도 아니고 세 부분이 추간판탈출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의사는 당장 시술하자고 했지만, 육백만 원짜리 시술을 실비 보험 처리 되면 자부담 얼마 안 된다면 그렇게 태연하게, 예후나 위험성에 관한 언급도 1도 없이, 환자가 느끼는 고통에 대한 공감도 전혀 없이 얘기하는 것을 보면서 돈에 눈이 먼 돌팔이 같다는 인상이 강하게 들어 시술 받지 않았습니다.  


겪어 보신 분은 알 텐데, 허리 통증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너무 아픕니다.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고 일상생활이 거의 마비될 지경으로 아픕니다.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몰라 두려운 마음에 종종 울기도 했죠. 내가 왜 무리해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을까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고통은 온전히 나의 것이고 자책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으니 할 수 있는 것을 해보자며 하루 종일 천천히 꾸준히 걸었습니다. 아프면 쉬고 쉬었다가 다시 걷고 그러기를 세 달을 하니 통증이 거의 70~80%는 사라지더군요. 물론 대학병원에서 처방해준 소염진통제도 꾸준히 먹었습니다.


지금은 걷고, 뛰고, 일상생활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지만 제 허리에 시한폭탄이 있다고 생각하면 불쾌하고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아무리 운동으로 관리를 잘 해도 나이 먹으면 언젠가 다시 고생하게 될 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에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가올 미래가 어떨지 알 수 없는데 그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현재가 저당 잡히는 것은 더 싫습니다. 그냥 하루하루 간단한 운동을 빼놓지 않으면서 관리를 잘 하고, 체중 증가되지 않게 신경 쓰고, 할 수 있는 최선을 할 뿐입니다.


내게 병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자책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습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그 덜렁거리는 무거운 가방 메고 무리하게 한라산을 오르지 않았겠죠. 인간은 한치 앞도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은 신이 아닌데, 알 수 없는 미래 사건의 책임을 지려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일이 발생해서 슬프고 멍청이 같은 자신에게 화도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병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일 수밖에 없습니다. 병이 재발하지 않게 관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죠. 


지나간 일로 인한 힘든 감정들을 잘 흘려보내고, 두려움과 불안을, 궁극적으로는 내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스스로 관리할 수 있게 하는 것, 심리치료에서 하는 일은 이런 것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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