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늘 따뜻한 기억이 함께 했던_

by 클링키

짜장면. 실제 표준어로는 자장면이었던.

다 불어버린 면발처럼 흐느적거리는 그 '표준'을 무시하고 짜장면이라고 불리우는 것이 더욱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맞춤법 개정으로 이제는 당당하게 부를 수 있게 된 '짜장면'.

어릴 적 짜장면에 대한 기억은 보통 어떤 '날'과 맞닿아 있었다. 졸업식이라든지 이사날이라든지 어느 화창한 주말 오후의 가족 식사라든지. 그래서인지 짜장면, 하면 떠오르는 기억들은 그 까만 면을 입 안 가득 물고 있는 아이의 퉁퉁하고 까만 입술을 하얀 휴지로 닦아주는 어머니의 모습이나, 20개의 스티커를 모아서 공짜로 받게 된 탕수육이 담긴 그릇을 슬며시 아이 곁으로 밀어 주시던 아버지의 모습 같은 것들이다. 왜 그런 노래도 있지 않은가,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다던. 그만큼 어린 시절에 짜장면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날'에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물론 지금에야 맛있는 음식도 많고, 비싼 음식도 많아져서, 짠돌이 부장님이 직원들에게 한턱 낼 때 시키는 음식으로 전락되어버리긴 했지만. 그나마 블랙 데이라는 짜장면의 날이 지정되었으니 겨우 체면 유지 정도는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왜 하필 짜장면의 날이 솔로의 날이란 말인가. 솔로들이 우르르 모여 앉아 까만 면을 커플인양 씹어 대며, 입가에 까만 국물을 립스틱인 양 마음껏 묻혀도 잘 보여야 할 누군가가 없으니 상관 없다는 듯한 그 모습. 이러한 것들이 꽤나 마음에 들지 않아 블랙데이에 여자들만 우글우글한 학교 앞 'ㅇㅇ성'에서 보란 듯이 우아하게 짬뽕 국물을 들이켰던 기억이 난다.

사실 짜장면이라고 하는 것의 색은 그다지 예쁘지 않다. 붉은 빛깔의 얼큰한 짬뽕이나, 노란 빛깔의 화사한 단무지 같은 주변 친구들에 비해도 딱히 예쁜 모양새는 아니다. 그래서 짜장면도 변신을 시도한 적이 몇 번 있었더랬다. 빨간 짜장면, 노란 짜장면 등 무지개빛 짜장면 까지 출현하는 게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짜장면의 변신이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거무스레하다 못해 까무잡잡하기 까지 한 칙칙한 오리지날의 완승이었지만. 그런 짜장면을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은, 사람들에게 짜장면은, 까맣고 까만 것이 짜장면이라는 공식이 너무도 자연스러웠기 때문이 아닐까.

게다가 그 친숙한 까무잡잡함에 비해 먹는 과정은 그리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일단,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정확히 가르는 것 부터가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중국집에서 좋은 대나무를 갈아 만든 고급 젓가락을 넣어줄리는 없으니, 나무로 만들었는지 조차 의심이 가는 결이 뒤틀린 젓가락을 그저 믿어 보는 수 밖에는 없다. 믿는 젓가락이 잘못 가른 쌍쌍바처럼 기묘한 형상으로 갈라지고 나면 먹기 전부터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만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젓가락을 비통한 심정으로 내려놓고, 랩으로 완벽하게 밀봉된 짜장면에게 바깥 공기를 마시게 해줄 단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 또한 쉽지가 않다. 시속 80km로 달리는 배달원의 오토바이가 구불구불한 골목길과 수많은 고개길을 넘고 넘는 그 과정 속에서도 짜장면만은 철가방 속에서 아기처럼 평화롭게 잠들어 있어야 하기에, 두겹의 랩은 기본이다. 그 랩을 그릇 밑바닥에서부터 조심스레 뜯다 보면 배고픈 손가락이 떨려오고, 급한 나머지 정 가운데를 찢어 그 모습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놀란 짜장면의 재채기로 그 날 따라 입은 하얀 옷에 오늘 먹은 음식을 광고하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무사하게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서 편안한 마음으로 면을 조심조심 섞다 보면 잘못 뜯어졌을지언정 그나마 나무색이었던 젓가락의 반 이상이 까맣게 물들기 일쑤다. 고수들이 나무와의 소통을 통해 결을 살려서 나무젓가락을 정확히 반으로 가르고, 랩에 봉인된 짜장면의 정령을 모시듯 앞뒤좌우로 신명나게 흔들고, 나무젓가락과 그릇의 마찰력을 최대한으로 살려서 랩을 깔끔하게 분리해낸 후 정중히 입으로 짜장면을 모시는 모습을 보면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그래도 뽀얗게 윤기가 흐르는 면발 위에 까무잡잡한 소스가 감싸안듯이 따뜻하게 덮혀 있고, 그 까만 언덕 위 푸릇한 오이가 잔디 처럼 누워있는 그 곳에 연두색 빛의 완두콩 너댓개가 또르르 뒹구는 것을 보고 있자면 따뜻한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채 풀지 못한 박스가 여기 저기 쌓여 있고,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가구가 성큼성큼 들어와 어색하게 서있는, 이제 곧 우리의 집이 될 조금은 낯선 그 곳에서 신문지를 깔아 놓은 채 둘러 앉아 짜장면을 먹던 네 식구의 모습이 보인다. 아이는 철없이 그 퉁퉁한 입술에 까만 짜장을 묻혔을 것이고, 조금은 넓어질 자신의 방에 약간은 설렜을 것이다. 그런 아이 옆에는 아이의 입술을 대신해 곧 까맣게 변해 버릴 하얀 휴지를 건네는 어머니가 있을 것이고,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단무지를 아이가 먹고 싶어 할까봐 젓가락도 대지 못하는 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하얀 추억보다도 까맣고 선명하게 아이의 기억 속에 자리 할 것이다. 아마도 짜장면의 면발처럼 길게 오래오래.